최인 (1911년)
1. 개요
최인(1911년)은 일제강점기, 중일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서 복무했으며, 조선 의용대와 조선 의용군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 의용군 제1지대 부지대장, 동북민주연군 이홍광 지대장, 독립 제4사 사단장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제2군단 참모장, 제12사단장, 제2군단장을 지냈으며, 이후 조선인민군 후방사령부 참모장, 총사령부 부총참모장, 기계화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했다. 전쟁 이후 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체육지도부장과 내각 정보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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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장군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인민군 장군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
조선의용대 -
김학철 (1916년)
김학철은 1916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항일 투쟁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이며,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여 문학 활동을 펼쳤다. -
조선의용대 -
김두봉
김두봉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 언어학자, 정치인으로, 주시경의 제자로서 한글 연구와 교육에 힘썼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조선독립동맹 결성,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으나 김일성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숙청되었다. -
평안북도 출신 -
양세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양세봉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융링제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일본군 밀정의 계략으로 암살당했고 남북한 모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평안북도 출신 -
김계관
김계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의 고위 외교관으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여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등을 역임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참여, 외무성 부상 및 제1부상 등을 거치며 북한 외교 정책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2. 경력
중앙육군군관학교 졸업 후 중국군 복무 및 조선 의용대, 조선 의용군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에는 중국 동북민주연군을 거쳐 1948년 북한으로 귀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조선인민군 간부로 활동했다. 한국 전쟁 참전 후 당 및 정부 기관에서 활동했으며, 주요 경력은 아래와 같다.
| 시기 | 소속/직책 | 비고 |
|---|---|---|
|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기 졸업 | 난징 소재, 제1총대 보병대대 제4대 | ||
| 중국군 복무 | | ||
| 조선 의용대 제2구대 대원 | 항일 운동 참여 | ||
|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 제3대장 | 순덕 일대 활동 | ||
| 조선 의용군 화북지대 제3대장 | 진기로예변구 활동 | ||
| 조선 혁명군정학교 제2구대장 | | ||
| 조선 의용군 제1지대 부지대장 | 중국 동북 진출 | ||
| 동북민주연군 이홍광 지대 부지대장, 지대장 | 김웅 귀국 후 지대장 승계 | ||
| 독립 제4사 사단장 | 이홍광 지대 개편 | ||
|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 북한 귀국 | ||
| 민족보위성 부총참모장 (소장) | | ||
| 조선인민군 제2군단 참모장 또는 제7사단장 | 한국 전쟁 발발, 춘천 공략 실패로 소환 | ||
| 조선인민군 제12사단장, 제2군단장, 후방사령부 참모장 | 최춘국 전사 후 12사단장 임명 | ||
| 총사령부 부총참모장 | | ||
| 기계화사령부 참모장 | | ||
| 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체육지도부장 | | ||
| 내각 정보국장 | |
2.1. 일제 강점기 활동
1911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를 졸업한 후, 1934년 8월 말 경 난징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기에 입학했다. 1936년 6월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서 복무했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항일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조선 의용대에 가입하여 제2구대 대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 봄,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 제3대장으로 임명되어 순덕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1942년 조선 의용대가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되자 화북지대 제3대장으로서 진기로예변구에서 항일 운동을 지속했다. 1945년 2월에는 조선 혁명군정학교 제2구대장을 맡았다.
2.2. 광복 이후 ~ 한국전쟁 이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조선 의용군 대원들을 이끌고 중국 동북 지방으로 이동하여 조선 의용군 제1지대 부지대장이 되었다.
1946년 2월에는 동북민주연군 이홍광 지대의 부지대장을 맡았다. 당시 지대장이었던 김웅이 북한으로 귀국하자, 후임으로 지대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12월, 이홍광 지대가 독립 제4사로 개편되면서 사단장에 임명되었다.
1948년 개인 자격으로 38선 이북 지역으로 귀국하여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민족보위성 부총참모장(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