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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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소는 후한 말기의 인물로, 동탁을 질책하고 이각, 곽사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하진이 동탁을 소환했을 때 동탁의 진군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동탁이 헌제를 옹립한 후 시중이 되었지만 좌천되어 외지로 쫓겨났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마등, 한수 등과 함께 이각과 곽사를 공격했으나 패하여 전사했다.

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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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종벌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고, 영제 중평 말기에 간의대부를 지냈다.

189년 (중평 6년), 대장군 하진환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병주 동탁을 불렀을 때, 충소는 하진의 명으로 동탁을 막으려 했으나 동탁은 듣지 않았다. 충소는 군대를 동원해 위협하는 동탁에게 호통을 치며 질책하여 결국 동탁이 물러서게 만들었다.

이후 하진이 환관에게 살해되고 동탁이 낙양에 들어와 정권을 장악한 뒤 헌제를 옹립하자, 충소는 시중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동탁의 미움을 사 의랑으로 좌천되었고, 곧 익주자사 겸 양주자사(다른 기록에는 익량 이주 자사)로 발령되어 외지로 쫓겨나게 되었다.

192년 (초평 3년), 아버지 충불(종벌)이 이각곽사가 일으킨 난 때 살해되자, 충소는 임지로 부임하지 않고 관직을 사퇴한 뒤 상을 치렀다. 상을 마친 후 조정에서 소부대홍려에 임명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전에는 벼슬을 할 수 없다며 모두 거절하였다.

충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마등, 한수, 좌중랑장 유범, 시중 마우(馬宇), 중랑장 두품(杜稟) 등과 힘을 합쳐 이각곽사를 공격하였다. 194년 (흥평 원년) 3월, 장안 근교의 장평관(長平觀) 아래에서 곽사의 군대와 싸웠으나 패배하여 전사하였다.

2.1. 동탁과의 대립

189년 (중평 6년), 대장군 하진환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병주 동탁을 낙양으로 불렀다. 동탁이 군대를 이끌고 민지(澠池)에 이르렀을 때, 하진은 그의 세력을 경계하여 충소를 보내 돌아가라는 조서를 전달하게 했다. 그러나 동탁은 조서를 따르지 않고 하남까지 진군했다. 충소는 동탁을 막아서며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했지만, 동탁은 오히려 군사력을 과시하며 충소를 위협했다. 이에 충소는 크게 노하여 동탁의 행동을 질책했고, 동탁은 결국 사과하고 군대를 하남 서쪽의 석양정(夕陽亭)으로 물렸다.

이후 하진환관에게 살해되고 원소 등이 환관을 숙청하는 혼란 속에서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여 헌제를 새로 옹립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충소는 시중(侍中)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의 강직한 성품은 동탁의 미움을 샀다. 결국 충소는 의랑(議郞)으로 좌천되었고, 곧 익주자사 겸 양주자사(다른 기록에는 익량 이주 자사)로 발령되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로 쫓겨나게 되었다.

2.2. 동탁 집권기

중평 말기에 간의대부를 지냈다. 189년 (중평 6년), 대장군 하진이 환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병주동탁을 수도 낙양으로 불렀다. 동탁이 군대를 이끌고 면지(澠池)까지 이르자, 하진은 그의 세력을 경계하여 충소에게 조서를 주어 동탁을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나 동탁은 조서를 무시하고 하남까지 진군했다. 충소는 동탁을 맞이하여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했으나, 동탁은 병력을 과시하며 위협했다. 이에 충소는 크게 분노하여 조서를 읽고 동탁을 엄하게 꾸짖었다. 결국 동탁은 사과하고 군대를 하남성 서쪽의 석양정(夕陽亭)으로 물렸다.

이후 하진이 환관에게 살해되고 원소 등이 환관을 숙청하는 혼란 속에서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헌제를 황제로 세웠다. 충소는 부름을 받아 시중이 되었으나, 강직한 성품 때문에 동탁의 미움을 사 의랑으로 좌천되었다. 곧이어 익주자사 겸 양주자사로 임명되어 사실상 외지로 쫓겨나게 되었다.

192년 (초평 3년), 이각곽사장안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 충불(종벌)이 살해되었다. 이 때문에 충소는 익주 자사로 부임하지 않고 관직을 사퇴한 뒤 아버지의 상을 치렀다. 상을 마친 후 조정에서는 그를 소부대홍려에 임명하려 했으나, 충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전에는 조정에 나아가 섬길 수 없다며 모두 거절했다.

충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마등, 한수, 좌중랑장 유범, 시중 마우(馬宇), 중랑장 두품(杜稟) 등과 힘을 합쳐 이각곽사를 토벌하고자 했다. 194년 (흥평 원년) 3월, 장평관(長平觀) 아래에서 곽사의 군대와 싸웠으나 마등한수의 군대가 패배하면서 충소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마등한수는 살아남아 양주로 돌아갔다.

2.3. 이각, 곽사와의 전투

192년 (초평 3년), 이각곽사장안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 충불(종벌)이 이 난에 휘말려 전사하였다. 이 때문에 익주와 양주의 자사로 발령받았던 충소는 부임하지 않고 관직을 사퇴한 뒤 아버지의 상을 치렀다.

상을 마친 후 조정에서는 충소를 소부대홍려로 임명하려 했으나, 충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전에는 조정에 나아가 주군을 섬길 수 없다며 모두 굳게 사양하였다. 이후 충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마등, 한수, 좌중랑장(左中郞將) 유범, 시중(侍中) 마우(馬宇), 중랑장 두품(杜稟) 등과 힘을 합쳐 이각과 곽사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194년 (흥평 원년) 3월, 충소는 마등, 한수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장안 근처의 장평관(長平觀) 아래에서 곽사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마등과 한수의 군대가 패배하였고, 충소 역시 전사하였다. 마등과 한수는 목숨을 건져 양주로 돌아갔다.

3. 출전

* 범엽, 《후한서》 권56 장왕충진열전
* 《후한서》 권56 열전 제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