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리네 폰 바덴 대공녀
1. 개요
카롤리네 폰 바덴 대공녀는 1776년 바덴 변경백 카를 루드비히와 아말리에 폰 헤센-다름슈타트의 장녀로 태어났다. 1797년 팔츠-츠바이브뤼켄 공작 막시밀리안과 결혼하여 1806년 바이에른 왕비가 되었으며, 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개신교 신앙을 유지하며 바이에른 궁정에서 존경받았으나, 1841년 사망 당시 가톨릭 교회의 배려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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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프리데리케 카롤리네 빌헬미네 |
|---|---|
| 출생일 | 1776년 7월 13일 |
| 출생지 | 카를스루에, 바덴 변경백국 |
| 사망일 | 1841년 11월 13일 |
| 사망지 | 뮌헨, 바이에른 왕국 |
| 매장지 | 테아티나 교회 |
| 가문 | 바덴 가문 |
| 배우자 |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
|---|---|
| 결혼 | 1797년 - 1825년 (사망) |
| 자녀 | 엘리자베트 루도비카, 프로이센 왕비 아말리에 아우구스테, 작센 왕비 마리아 안나, 작센 왕비 조피, 오스트리아 대공비 루도비카, 바이에른 여공작 막시밀리아나 공주 |
| 바이에른 왕비 | reign: 1806년 1월 1일 – 1825년 10월 13일 succession: 바이에른 왕비 |
|---|---|
| 바이에른 선제후비 | reign1: 1799년 2월 16일 – 1806년 1월 1일 succession1: 바이에른 선제후비 |
| 아버지 | 카를 루트비히 폰 바덴 |
|---|---|
| 어머니 | 아말리에 폰 헤센-다름슈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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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링겐가 -
베르톨트 5세 폰 체링겐 공작
베르톨트 5세는 1186년 체링겐 공작이 되어 부르고뉴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베른을 건설하여 팽창 정책을 추진했지만, 울리헨 전투에서 패배하고 1218년 사망하며 체링겐 가문의 남계는 단절되었다. -
체링겐가 -
바덴의 빅토리아
바덴의 빅토리아는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 1세와 프로이센의 루이제 공주의 장녀로 태어나 스웨덴 왕세자 구스타프와 결혼하여 스웨덴 왕비가 되었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친독일 성향으로 논란이 되었다. -
바덴가 -
루트비히 빌헬름 폰 바덴바덴 변경백
루트비히 빌헬름 폰 바덴바덴 변경백은 "투르크인 루트비히" 또는 "제국의 방패"라고도 불린 신성 로마 제국의 장군이자 바덴-바덴 변경백으로, 오이겐 폰 사보이엔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는 데 기여했으며 대터키 전쟁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활약했고 슬란카멘 전투에서 승리했다. -
바덴가 -
바덴의 빅토리아
바덴의 빅토리아는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 1세와 프로이센의 루이제 공주의 장녀로 태어나 스웨덴 왕세자 구스타프와 결혼하여 스웨덴 왕비가 되었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친독일 성향으로 논란이 되었다. -
1776년 출생 -
김건순
김건순은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이며 정약종과 함께 《성교전서》를 저술하던 중 황사영에 의해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
1776년 출생 -
소피 제르맹
소피 제르맹은 13세에 수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하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기여했으며 소피 제르맹 소수와 소피 제르맹 정리를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2. 생애
카롤리네는 1776년 7월 13일 바덴 변경백의 백자 카를 루드비히와 그의 비 아말리에의 장녀로 카를스루에에서 태어났다. 쌍둥이 자매인 카타리나 아말리에가 있었으며, 동복 여동생으로는 러시아 황후 엘리자베타, 스웨덴 왕비 프리데리케가 있었다.
앙기앵 공작루이 앙투안 드 부르봉-콩데의 결혼 상대로 여겨졌지만, 프랑스 공화국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1797년 3월 9일 카를스루에에서 어머니의 사촌인 팔츠-츠바이브뤼켄 공작막시밀리안과 결혼했다. 1806년에 신성 로마 제국이 소멸되면서 바이에른의 선제후는 국왕으로 승격되었고, 카롤리네도 바이에른 왕비가 되었다. 남편과의 사이에는 두 쌍둥이를 포함한 7명의 자녀를 낳았다.
카롤리네는 가톨릭 국가인 바이에른의 왕비였지만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유지하고 전속 프로테스탄트 목사를 두는 것이 허용되었다. 바이에른 궁정의 위엄 있는 왕비이자 안주인으로, 자녀들에게 강한 의무감을 가지고 키웠다고 평가받았다.
1825년 남편 막시밀리안이 사망하고 16년 1개월 후인 1841년 11월 13일에 사망했다. 카롤리네의 프로테스탄트 신앙 때문에 장례식은 왕가의 존엄성이 느껴지지 않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2.1. 초기 생애
카롤리네는 1776년 7월 13일 바덴의 카를 루드비히 세습 대공과 그의 아내인 헤센-다름슈타트의 아말리에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카타리나 아말리에 크리스티아네 루이제와 쌍둥이 자매였다.
앙기앵 공작 루이 앙투안 앙리 드 부르봉의 신붓감으로 고려되었지만, 프랑스의 반대에 직면할 것을 우려한 그녀의 가족은 망설였다. 결국 앙기앵 공작과의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2.2. 결혼 생활
1797년 3월 9일, 카롤리네는 카를스루에에서 막시밀리안과 결혼했다. 막시밀리안은 2년 후 팔츠-츠바이브뤼켄 공작이자 바이에른 선제후국의 상속자가 되었다. 막시밀리안의 첫 번째 부인인 아우구스테 빌헬미네는 1796년에 사망했었다.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선제후의 지위는 폐지되었고, 바이에른의 통치자는 왕의 지위로 승격되었다. 그 결과 카롤리네는 바이에른의 왕비가 되었다. 카롤리네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는 두 쌍의 쌍둥이가 있었다. 카롤리네 자신이 쌍둥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흥미로운 일이다.
카롤리네는 개신교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고, 바이에른 왕비로서는 드물게 자신만의 개신교 목사를 두었다. 그녀는 매우 위엄 있는 배우자이자 바이에른 궁정의 안주인으로 묘사되었으며, 딸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갖도록 교육했다.
2.3. 사망
카롤리네 폰 바덴 대공녀는 남편보다 16년 1개월 더 오래 산 후인 1841년 11월 13일에 사망했다. 그녀의 개신교 신앙 때문에 그녀의 장례식은 왕실의 존엄성이 거의 없이 거행되어 대중의 항의를 받았다. 뮌헨의 가톨릭 대주교 로타어 안젤름 폰 게브자텔의 명령에 따라, 참여한 모든 가톨릭 성직자들은 교회 예복 대신 일반 옷을 입었다. 개신교 성직자들은 교회 문 앞에서 제지당하여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고, 루드비히 프리드리히 슈미트가 그 자리에서 장례 설교를 했다. 이후 장례 행렬은 흩어졌고, 관은 의례 없이 묘소에 안치되었다. 이와 같은 의붓어머니에 대한 처우는 그 전까지 개신교 공주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의 테레제와의 결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였던 카롤리네의 의붓아들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의 태도를 영구적으로 부드럽게 만들었다.
3.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아들 | 1799년 9월 5일 | 1799년 9월 5일 | 사산 |
| 막시밀리안 요제프 카를 | 1800년 10월 28일 | 1803년 2월 12일 | 어린 나이에 사망 |
| 엘리자베트 루이제 | 1801년 11월 13일 | 1873년 12월 14일 |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 1823년 결혼, 자녀 없음 |
| 아말리에 아우구스테 | 1801년 11월 13일 | 1877년 11월 8일 | 작센 국왕 요한과 1822년 결혼, 자녀 있음 |
| 마리 안네 레오폴디네 | 1805년 1월 27일 | 1877년 9월 13일 | 작센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2세와 1833년 결혼, 자녀 없음 |
| 조피 프레데리카 | 1805년 1월 27일 | 1872년 5월 28일 |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카를과 1824년 결혼, 자녀 있음 |
| 루이제 빌헬미나 | 1808년 8월 30일 | 1892년 1월 25일 |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1828년 결혼, 자녀 있음 |
| 막시밀리아나 요제파 카롤리네 | 1810년 7월 21일 | 1821년 2월 4일 | 어린 나이에 사망 |
막시밀리안 1세와의 사이에서 2쌍의 쌍둥이를 포함해 8명의 자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