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폰 알텐
1. 개요
카를 폰 알텐은 1770년생으로, 하노버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12세에 선제후 시종으로 시작하여, 하노버 군대 해산 후 왕의 독일군단에 합류하여 경보병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반도 전쟁에 참여하여 알부이라 전투에서 지휘 능력을 보여주었고, 1812년 경보병사단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살라망카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제3보병사단을 지휘하며 공을 세워 알텐 백작으로 승급했다. 왕의 독일군단 해산 후 하노버 육군원수, 국방부 장관,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840년 사망하여 하노버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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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카를 아우구스트 폰 알텐 |
|---|---|
| 출생 | 1764년 10월 21일 |
| 출생지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 부르크베델 |
| 사망 | 1840년 4월 20일 |
| 사망지 | 티롤 백국 볼차노 (현재 이탈리아 볼차노) |
| 별칭 | 빅토어 알텐 |
| 소속 | 하노버 왕국 영국 |
| 복무 기간 | 1781년–1840년 |
| 최종 계급 | 육군 원수 |
| 지휘 | 경보병사단 왕의 독일군단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프랑스 혁명 전쟁 플랑드르 전역 나폴레옹 전쟁 코펜하겐 전투 알부이라 전투 살라망카 전투 비토리아 전투 피레네 산맥 전투 니벨레 강 전투 니브 강 전투 콰트라바스 전투 워털루 전투 |
| 서훈 | 바스 훈장 로열 구엘프 훈장 |
| 기타 이력 | 하노버의 국방부 및 외교부 장관 |
| 독일어 표기 | Carl August von Alten |
|---|---|
| 영어 표기 | Charles, Count Alten |
| 참고 문헌 | Robert Burnham과 Ron McGuigan의 "Wellington's Brigade Commanders: Peninsula and Waterloo"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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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장군 -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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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장군 -
빌헬름 카를 폰 우라흐 공작
빌헬름 카를 폰 우라흐 공작은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우라흐 공작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라흐 공작이 되었고, 알바니아와 리투아니아 왕위 후보에 거론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는 독일군 장군으로 참전했다. -
1764년 출생 -
서유구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장가인 서유구는 『임원경제지』 저술과 고구마 재배 장려 등 농정 개혁에 힘썼으며, 숙부의 역모 사건 연루 후 집필한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농촌 사회의 생활 전반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
1764년 출생 -
로랑 드 구비옹 생시르
로랑 드 구비옹 생시르는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뛰어난 군사 전략과 공화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나폴레옹 전쟁 중 포로가 되기도 했으며, 부르봉 왕정 복고 후에는 전쟁 및 해군 장관을 역임했고 화가와 음악가로도 활동했다. -
바스 훈장 대십자 기사 -
마르티 아티사리
마르티 아티사리는 핀란드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핀란드 대통령을 역임하며 핀란드의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했고, 퇴임 후에는 국제 분쟁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200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
바스 훈장 대십자 기사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하노버)
조지 3세의 아들이자 영국 왕족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는 하노버 국왕으로 즉위하여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며 논란을 일으켰지만, 하노버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초기 경력
카를 폰 알텐은 12세의 나이로 선제후의 시종이 되었다. 1781년 하노버 보위대에 임관했으며, 1793~1795년 플랑드르 전역에 대위로서 참전하여 리스에서 경보병 지휘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803년 하노버 선제후국이 멸망하고 하노버 군대가 해산되자, 알텐은 왕의 독일군단에 합류하여 복무하였다. 그는 왕의 독일군단의 경보병 지휘관으로서 1805년 캐스카트 경과 함께 하노버 원정에 참여했고, 1807년 코펜하겐 전투에도 참전했다.
3. 반도 전쟁
알텐은 존 무어와 함께 스웨덴 및 스페인에서 복무했다. 반도 전쟁에서 제2측면여단을 지휘했지만 코루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1809년 여름에는 재앙적인 발체렌 원정에 참여했다. 이후 반도 전쟁으로 돌아와 알부이라 전투에서 왕의 독일군단(KGL) 독립여단을 지휘했는데, 이 전투에서 보인 알텐의 행동은 그의 능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1812년 4월, 아서 웰즐리는 알텐을 경보병 사단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알텐은 살라망카 전투, 비토리아 전투, 피레네 산맥 전투, 니벨레 강 전투, 니브 강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이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입증했다. 그의 장교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랐고, 웰링턴은 알텐을 "최고의 하노버인"이라고 칭찬했다.
4. 워털루 전투와 그 이후
1815년 알텐은 웰링턴의 제3보병사단을 지휘했다. 제3보병사단은 제5영국여단, 왕의 독일군단 제2여단, 제1하노버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부대들 중 일부는 콰트라 바스 전투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워털루 전투에서 제3사단은 하루 종일 전선을 유지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알텐은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이러한 공로로 알텐 백작 작위를 받았다.
킹스 저먼 군단이 해산된 후, 알텐은 프랑스에 주둔한 하노버군의 지휘를 맡았다. 1818년 하노버로 돌아온 그는 원수가 되었고, 곧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영국 육군에 찰스 알텐 경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으며, 바스 훈장을 받았다. 그는 1840년 티롤 백국에서 사망했고, 하노버에는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는 노이슈테터 교회에 안치되었다.
5. 평가
존 무어와 함께 스페인에서 복무한 알텐은 웰링턴에게 "가장 훌륭한 하노버인"으로 불렸다. 찰스 오만은 알텐을 로버트 크로퍼드와 비교하며, 웰링턴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려 노력했지만 독자적인 판단력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5.1. 군사적 능력
알텐은 존 무어와 함께 스웨덴과 스페인에서 복무했다. 그는 무어의 작전에서 제2 측면 여단을 지휘했지만, 코루냐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1812년 4월 아서 웰즐리, 웰링턴 자작은 그를 경보병 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했는데, 이 부대는 제1/43 보병 연대, 제1/52 경보병 연대, 제95 소총 연대, 그리고 제1, 제3 포르투갈 카사도레스 부대로 구성되었다. 알텐은 이 직책을 맡아 살라망카 전투, 비토리아 전투, 피레네 전투, 니벨 전투, 니브 전투, 오르테즈 전투 및 툴루즈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의 부하 장교들은 그에게 존경의 표시로 명예의 칼을 선물했다.
웰링턴은 알텐을 "가장 훌륭한 하노버인"이라고 불렀다. 찰스 오만은 알텐을 로버트 크로퍼드와 비교하며, 웰링턴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려 노력했지만 독자적인 판단력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