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샌더스 (야구인)
1. 개요
켄 샌더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1964년부터 1976년까지 활동한 야구 선수이다. 1960년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보스턴 레드삭스, 밀워키 브루어스, 미네소타 트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뉴욕 메츠,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주로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으며 1971년에는 메이저 리그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부동산 업계에서 일했다.
| 선수명 | 켄 샌더스 |
|---|---|
| 원어명 | Ken Sanders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Kenneth George Sanders (케네스 조지 샌더스) |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941년 7월 8일 |
| 출생지 |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
| 신장 | 180cm |
| 체중 | 76kg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수비 위치 | 투수 |
| 출신 학교 |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고등학교 |
| 프로 입단 연도 | 1960년 |
| 첫 출장 | MLB / 1964년 8월 6일뮤니시펄 스타디움KC 대 NYY 전 |
| 마지막 경기 | MLB / 1976년 9월 27일오클랜드–알라메다 카운티 콜리시엄KC 대 OAK 전 |
| 선수 경력 |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1964) 보스턴 레드삭스 (1966) 캔자스시티/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6, 1968) 밀워키 브루어스 (1970~1972) 미네소타 트윈스 (197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73~1974)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4) 뉴욕 메츠 (1975~1976) 캔자스시티 로열스 (1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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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획득 타이틀 | AL 세이브 1위 (1971) 밀워키 브루어스 명예의 벽 헌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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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네수엘라 진출 야구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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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네수엘라 진출 야구 선수 -
그레이그 네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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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주 출신 야구 선수 -
데니스 탱커슬리
데니스 탱커슬리는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로, 여러 팀에서 활동했으며 2001년 퓨처스 게임 올스타로 선정되었고, 메이저 리그 통산 3시즌 동안 1승 10패를 기록했다. -
미주리주 출신 야구 선수 -
데이비드 콘
데이비드 콘은 1936년 출생하여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뉴욕 양키스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고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을 수상했으며, 은퇴 후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한다. -
1941년 출생 -
신영복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사회운동가, 대학교수, 저술가로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 생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출소 후 관계론을 중심으로 사상을 발전시키며 독특한 서체로 민중과 소통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
1941년 출생 -
도정일
도정일은 영문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경희대학교 교수, 도서관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2016년 학력 위조 논란 이후 이를 인정했고, 저서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등이 있다.
2. 어린 시절과 선수 경력 초반
샌더스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축구, 미식축구, 야구에 재능을 보였다. 1960년, 세인트루이스 대학교를 다닌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었다.
프로 첫 시즌을 클래스 D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의 샌퍼드 그레이하운즈에서 선발투수로 소화하며 19승 10패, 3.2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선발과 구원을 번갈아가며 뛰다가 1964년 버밍햄 배런스에서 전업 구원 투수로 자리잡았다. 그해 시즌 후반인 8월 6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가졌는데, 1⅔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다. 1964년 메이저 리그에서의 시즌 성적은 무승 2패, 평균자책점 3.67, 1세이브를 기록했다.
1965년은 트리플 A에서만 뛰었고 이후 1965년 룰 5 드래프트를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으며, 1966년에 보스턴에서 3승 6패, 2세이브, 3.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시즌 중 보스턴의 샌더스, 짐 고스거, 귀도 그릴리와 캔자스시티의 롤리 셸던, 호세 타르타불 존 와이어트를 맞교환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샌더스는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해 8월 27일에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을 했는데,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로 4이닝 동안 1실점한 후 교체되었다.
1968년 시즌에 한 달 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고, 1967년부터 3년간 마이너 리그에 머물렀다. 1970년 스프링 트레이닝을 앞두고 오클랜드의 샌더스, 마이크 허시버거, 루 크라우스 주니어, 필 루프가 밀워키 브루어스의 돈 민처, 론 클라크와 맞교환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2.1. 유년 시절과 아마추어 경력
켄 샌더스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축구, 미식축구, 야구에 재능을 보였다. 1960년, 세인트루이스 대학교를 다닌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었다.
2.2. 프로 입단과 마이너 리그
켄 샌더스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축구, 미식축구, 야구에 재능을 보였다. 1960년, 세인트루이스 대학교를 다닌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을 맺었다.
프로 첫 시즌을 클래스 D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의 샌퍼드 그레이하운즈에서 선발투수로 소화하며 19승 10패, 3.2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선발과 구원을 번갈아가며 뛰다가 1964년 버밍햄 배런스에서 전업 구원 투수로 자리잡았다. 1965년은 트리플 A에서만 뛰었고 이후 1965년 룰 5 드래프트를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1966년에 보스턴에서 3승 6패, 2세이브, 3.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시즌 중 보스턴의 샌더스, 짐 고스거, 귀도 그릴리와 캔자스시티의 롤리 셸던, 호세 타르타불 존 와이어트를 맞교환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샌더스는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1968년 시즌에 한 달 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고, 1967년부터 3년간 마이너 리그에 머물렀다. 1970년 스프링 트레이닝을 앞두고 오클랜드의 샌더스, 마이크 허시버거, 루 크라우스 주니어, 필 루프가 밀워키 브루어스의 돈 민처, 론 클라크와 맞교환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2.3. 메이저 리그 데뷔와 초기 경력
샌더스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를 다닌 지 한 달 만인 1960년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했다. 프로 첫 시즌을 클래스 D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의 샌퍼드 그레이하운즈에서 선발투수로 뛰며 19승 10패, 3.2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선발과 구원을 번갈아 뛰다가 1964년 버밍햄 배런스에서 전업 구원 투수로 자리 잡았다. 1964년 8월 6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다. 1964년 메이저 리그 시즌 성적은 무승 2패, 평균자책점 3.67, 1세이브였다.
1965년은 트리플 A에서만 뛰었고, 이후 1965년 룰 5 드래프트를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1966년 보스턴에서 3승 6패, 2세이브, 3.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시즌 중 보스턴의 샌더스, 짐 고스거, 귀도 그릴리와 캔자스시티의 롤리 셸던, 호세 타르타불, 존 와이어트를 맞교환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샌더스는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그해 8월 27일에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4이닝 동안 1실점한 후 교체되었다.
1968년 시즌에 한 달 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고, 1967년부터 3년간 마이너 리그에 머물렀다.
3.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
시애틀에서 시애틀 파일럿츠라는 이름으로 한 시즌을 보낸 뒤, 연고지를 밀워키로 이전하고 치른 첫 시즌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는 97패를 당했다. 하지만 팀에 있어 긍정적인 점 중 하나는 샌더스가 팀의 확실한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샌더스는 1970년에 13세이브를 거두며 구단 시즌 최다 세이브를 거두는 동시에 5승 2패, 1.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그해 시즌 최다인 83회 등판(샌더스의 경쟁자인 신시내티 레즈 마무리 투수 웨인 그레인저는 70회)해 77번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우는 등 더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또한 31세이브로 이 부문 메이저 리그 1위에 올랐고 시즌 7승을 포함, 소속팀 밀워키의 69승 중 38경기에 관여했다.
1972년에도 팀의 마무리 투수로 나서 시즌 개막과 함께 18⅔이닝에서 4세이브를 거두며 무실점 행진을 벌인 후 시즌 첫 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다소 부진하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1승 7패, 13세이브, 3.4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델 크랜달 밀워키 감독의 신임을 잃으면서 남은 시즌 동안 4개의 세이브밖에 추가하지 못했다. 시즌이 마무리된 후에는 32일의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의 트레이드에 포함되었다. 첫 번째로 10월 31일, 밀워키의 샌더스, 짐 론보그, 켄 브렛, 얼 스티븐슨과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돈 머니, 존 부코비치, 빌 챔피언이 맞교환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 12월 1일에는 필라델피아의 샌더스, 켄 레이놀즈, 조 리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세사르 토바르가 맞교환되는 트레이드가 이어졌다.
3.1. 이적과 마무리 투수로의 정착 (1970)
시애틀에서 시애틀 파일럿츠라는 이름으로 한 시즌을 보낸 뒤, 연고지를 밀워키로 이전하고 치른 첫 시즌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는 97패를 당했다. 하지만 팀에 있어 긍정적인 점 중 하나는 샌더스가 팀의 확실한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샌더스는 1970년에 13세이브를 거두며 구단 시즌 최다 세이브를 거두는 동시에 5승 2패, 1.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3.2. 메이저 리그 최다 세이브 (1971)
밀워키로 연고지를 이전한 첫 시즌에 97패를 당했지만, 샌더스는 팀의 확실한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았다. 1970년에 13세이브를 거두며 구단 시즌 최다 세이브를 거두는 동시에 5승 2패, 1.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71년에는 83경기에 등판하여(경쟁자인 신시내티 레즈 마무리 투수 웨인 그레인저는 70회) 77번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다. 또한 31세이브를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올랐고, 시즌 7승을 포함하여 소속팀 밀워키의 69승 중 38경기에 관여했다.
3.3. 1972 시즌과 트레이드
밀워키 브루어스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켄 샌더스는 1971년에 83회 등판하여 77번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고, 31세이브로 메이저 리그 1위에 올랐다. 1972년에도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하여 이닝 동안 4세이브를 기록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으나, 이후 부진과 델 크랜달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1승 7패, 13세이브, 3.4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입지가 좁아졌다.
시즌 후, 샌더스는 32일 동안 두 번의 트레이드를 겪었다. 10월 31일에는 짐 론보그, 켄 브렛, 얼 스티븐슨과 함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돈 머니, 존 부코비치, 빌 챔피언과 맞트레이드되었다. 이어 12월 1일에는 켄 레이놀즈, 조 리스와 함께 미네소타 트윈스의 세사르 토바르와 맞트레이드되었다.
4. 저니맨 생활
1973년 시즌,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의 샌더스는 5월까지 5.6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8세이브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레이 코빈에게 마무리 투수 자리를 넘겨주고 웨이버 공시되었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그를 영입했다. 샌더스는 그해 클리블랜드에서 5승 1패, 1.6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74년 시즌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의 부진의 여파로 6월 17일에 팀에서 방출되었다.
1974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 A에서 19경기를 소화한 후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여 9경기에 출전해 1세이브를 기록했다. 1975년 시즌 전, 포수 아이크 햄프턴과의 트레이드로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
1975년 뉴욕 메츠는 내셔널 리그 동부 3위로 시즌을 마쳤는데, 밥 아포다카, 스킵 록우드 등과 함께 강력한 불펜진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샌더스는 그 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2.30, 5세이브를 기록했다.
1976년 시즌 막판인 9월 17일에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샌더스를 영입했으나 몇 달 되지 않아 그를 방출했다. 샌더스는 1977년 시즌을 앞두고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해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시즌을 보낸 후 은퇴했고, 이후 부동산 업계에서 일했다.
4.1. 미네소타 트윈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73-1974)
1973년 시즌,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의 샌더스는 5월까지 5.6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8세이브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레이 코빈에게 마무리 투수 자리를 넘겨주고 웨이버 공시되었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그를 영입했다. 샌더스는 그해 클리블랜드에서 5승 1패, 1.6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74년 시즌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의 부진의 여파로 6월 17일에 팀에서 방출되었다.
4.2.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뉴욕 메츠 (1974-1976)
1974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 A에서 19경기를 소화한 후 메이저 리그로 복귀하여 9경기에 출전해 1세이브를 기록했다. 1975년 시즌 전, 포수 아이크 햄프턴과의 트레이드로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
1975년 뉴욕 메츠는 내셔널 리그 동부 3위로 시즌을 마쳤는데, 밥 아포다카, 스킵 록우드 등과 함께 강력한 불펜진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샌더스는 그 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2.30, 5세이브를 기록했다.
4.3.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은퇴 (1976-1977)
1976년 시즌 막판인 9월 17일에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샌더스를 영입했으나 몇 달 되지 않아 그를 방출했다. 샌더스는 1977년 시즌을 앞두고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해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시즌을 보낸 후 은퇴했고, 이후 부동산 업계에서 일했다.
5. 은퇴 이후
켄 샌더스는 197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후 부동산 업계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