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라만 해전
1. 개요
쿨라만 해전은 1943년 7월 5일부터 6일까지 솔로몬 제도 쿨라 만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 대전의 해전이다. 연합군은 과달카날 전역 이후 뉴 조지아 섬의 문다 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해 렌도바 섬에 상륙했고, 일본군의 증원을 차단하기 위해 쿨라 만에서 일본 함대와 교전했다. 전투 결과, 미 해군은 경순양함 헬레나를 잃고, 일본군은 구축함 2척을 잃었지만, 일본군은 병력과 물자를 빌라에 상륙시켰다.
| 분쟁 | 태평양 전쟁 / 대동아 전쟁 |
|---|---|
| 명칭 | 쿨라만 해전 |
| 일본어 명칭 | クラ湾夜戦 (쿠라만 야센) |
| 영어 명칭 | Battle of Kula Gulf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시기 | 1943년 7월 6일 |
|---|---|
| 장소 | 솔로몬 제도, 쿨라만 (콜롬방가라 섬과 뉴조지아 섬 사이) |
| 결과 | 일본군의 수송 작전은 일응 성공. 물자 전부의 육양은 실패. 피해로만 보면 무승부이지만, 미군 함대가 전력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에서 보통 일본 함대의 승리로 간주함. |
| 교전국 1 | 일본 제국 |
|---|---|
| 교전국 2 | 미국 |
| 일본 제국 | 아키야마 데루오 소장 |
|---|---|
| 미국 | 월든 L. 에인스워스 소장 |
| 일본 제국 | 구축함 10척 |
|---|---|
| 미국 | 경순양함 3척, 구축함 4척 |
| 미국 | 경순양함 1척 침몰, 168명 이상 사망 |
|---|---|
| 일본 제국 | 구축함 2척 침몰, 구축함 2척 손상, 324명 사망 |
| 전역 | 솔로몬 제도 전역, 뉴조지아 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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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미국 -
타라와 전투
타라와 전투는 1943년 베티오 섬에서 미국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태평양 전쟁의 상륙전으로, 미군은 타라와를 점령했으나 막대한 피해를 입고 상륙 작전 교리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43년 미국 -
제15회 아카데미상
제15회 아카데미상은 1943년에 개최된 영화 시상식으로, 미세스 미니버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최다 수상작이 되었고, 양키 두들 댄디는 남우주연상을 포함하여 3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어빙 벌린은 홀리데이 인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전시 상황으로 인해 석고 트로피가 수여되었다. -
1943년 9월 -
카시빌레 휴전
카시빌레 휴전은 1943년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고 추축국에서 이탈하기 위해 체결된 비밀 휴전 협정이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혼란에 빠지고 독일군에 점령당했으며, 연합군의 이탈리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43년 9월 -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은 1943년 7월 시칠리아 점령 후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하여 이탈리아 왕국을 해방시키고 지중해 전역을 종식시키기 위한 군사 작전으로, 영국군의 칼라브리아 상륙과 미국군의 살레르노 상륙 후 독일군의 저항에 맞서 북진하며 나폴리를 점령했으나 독일군의 구스타프 방어선에 막혔다. -
1943년 일본 -
창씨개명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를 명분으로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천황 중심의 국가 체계에 통합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
1943년 일본 -
대동아회의
2. 배경
1943년 중반, 과달카날 전역 이후, 연합군은 솔로몬 제도에서 공세를 시작하여 6월 30일 렌도바 섬에 병력을 상륙시켰다. 이는 뉴조지아 섬 문다의 일본 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한 예비 단계였다. 미군은 블랑쉬 해협을 건너 뉴 조지아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한 교두보를 구축하고자 렌도바 상륙작전을 실시했다. 렌도바 확보 후, 7월 2일 미군은 본토의 자나나로 이동, 서쪽으로 문다로 진격했다. 이 노력을 지원하고 바이로코에서 문다로 증원오는 일본군을 차단하기 위해, 연합군은 7월 5일 뉴 조지아 북쪽 해안에 병력을 상륙시키기로 결정했다. 한편, 일본군은 문다 지역 강화를 위해 쇼트랜드 제도에서 콜롬방가라 섬을 거쳐 바지선으로 병력과 물자를 이동시켰다.
쿨라 만 해전 전날 밤, 윌든 L. 에인스워스 소장의 기동 부대 36.1(TG 36.1)은 순양함으로 콜롬방가라 섬 빌라와 바이로코를 포격했다. 이는 미국 해병대와 미국 육군 병력이 뉴 조지아 북쪽 해안 라이스 앵커리지에 상륙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해병대 상륙과 함께, 미 해군 구축함 USS 스트롱과 슈발리에는 함포 지원을 위해 바이로코 항에 진입했다. 이른 아침, 93식 어뢰가 스트롱 좌현 후미를 명중시켜 미 해군 병사 46명이 사망했다. 이 어뢰는 4척의 일본 구축함이 발사한 14발 중 하나로, 11nmi 거리를 이동, 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인 장거리 어뢰 공격으로 기록된다. 일본 구축함들은 탐지되지 않고 퇴각했고, 미군 지휘관은 잠수함 공격으로 오인했다.
7월 초, 연합군은 카트휠 작전으로 렌도바 섬과 뉴조지아 섬에 상륙, 뉴조지아 섬 전투가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뉴조지아 섬 옆 콜롬방가라 섬 방어를 강화해야 했다. 일본 해군 남동 방면 함대 사령관 구사카 진이치 중장은 제8함대 사령관 사메지마 구시게 중장에게 대응을 명령했다.
볼든 L. 에인스워스 소장은 경순양함 3척과 구축함 4척으로 연합군 상륙 작전을 엄호했지만, 일본군 수송 함대(도쿄 급행) 접근에 쿨라 만으로 이동했다.
2.1. 연합군의 솔로몬 제도 공세
1943년 중반, 과달카날 전역에서 승리한 연합군은 솔로몬 제도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공세를 시작했다. 6월 30일, 연합군은 뉴조지아 섬의 문다 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한 첫 단계로 렌도바 섬에 상륙했다. 렌도바 섬 점령 후, 미군은 뉴조지아 섬 본토로 진격하여 문다 비행장을 향한 공세를 시작했다.
연합군은 일본군의 증원을 차단하고 문다 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해 뉴조지아 섬 북쪽 해안에 상륙 작전을 계획했다. 7월 5일, 연합군은 뉴조지아 섬 북쪽 해안의 라이스 앵커리지에 상륙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윌든 L. 에인스워스 소장의 기동 부대 36.1(TG 36.1)이 콜롬방가라 섬의 빌라와 바이로코를 포격했다.
2.2. 일본군의 뉴조지아 섬 방어 및 증원
1943년 7월 초, 연합군이 카트휠 작전에 따라 렌도바 섬과 뉴조지아 섬에 상륙하면서 뉴조지아 섬 전투가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뉴조지아 섬 옆 콜롬방가라 섬의 방어를 강화해야 했다. 이에 일본 해군 남동방면함대 사령관 구사카 진이치 중장은 제8함대 사령관 사메지마 구시게 중장에게 증원 부대 파견을 명령했다. 아키야마 테루오 소장이 지휘하는 제3수뢰전대가 증원 부대로 편성되어 콜롬방가라 섬으로 수송 작전을 실시하게 되었다.
일본군은 뉴조지아 섬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속사포, 육군 병력 2,600명, 대발 30척 분량의 물자와 연료 80톤, 해상 트럭 3척 등을 수송하기로 결정했다. 이 수송 작전은 구축함을 이용한 고속 수송 방식인 '도쿄 익스프레스'였다.
2.3. 양측 함대 구성
| 미 해군 제36.1 임무군 | 일본 해군 외남양 부대 증원 부대 |
|---|---|
3. 7월 4일 전초전
1943년 7월 초, 연합군은 카트휠 작전에 따라 렌도바 섬과 뉴 조지아 섬에 상륙했고, 뉴 조지아 섬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에 일본군은 뉴 조지아 섬 옆 콜롬방가라 섬의 방비를 강화해야 했다. 일본 해군 남동 방면 함대는 휘하 외남양 부대에 대응을 명령했고, 외남양 부대 증원 부대는 구축함 10척을 동원해 콜롬방가라 섬으로 수송 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볼든 L. 에인스워스 소장이 이끄는 미 해군 경순양함 3척과 구축함 4척은 연합군 상륙 작전을 엄호 중이었다. 일본군 수송 함대 접근에 따라 쿨라 만에서 양측 간 야간 수상 전투가 벌어졌다. 일본 측은 신게츠 침몰로 제3수뢰전대 사령부가 전멸했고, 나가츠키가 좌초되어 손실을 입었다. 야간 포격전에서도 여러 척이 손상되었다. 연합군 측은 경순양함 헬레나가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일본군 수송 작전은 일단 성공하여 병력 약 1600명을 양륙했지만, 연합군은 뉴 조지아 제도 각지에서 공세를 폈고, 중부 솔로몬 전황은 악화되어 갔다.
4. 쿨라 만 해전 (7월 5-6일)
1943년 7월 5일 오후, 윌리엄 할시 제독으로부터 솔로몬 제도의 "더 슬롯"으로 향하는 일본 해군의 "도쿄 특급" 임무가 있다는 정보를 받은 월든 L. 에인스워스는 경순양함 호놀룰루, 세인트루이스, 헬레나와 4척의 구축함 니콜라스, 오배넌, 래드포드, 젠킨스를 이끌고 일본군을 요격하기 위해 뉴 조지아 섬 북서쪽으로 진격했다.
7월 6일 자정 직후, 미 함선은 뉴 조지아 북서 해안의 비수 비수 포인트를 통과했다. 약 한 시간 후, 에인스워스의 기동 부대는 아키야마 테루오 제독 휘하의 일본 해군 증원 부대와 접촉했다. 일본군은 총 10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되었으며, 지원 부대와 2개의 수송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 일본 함선은 2,600명의 지상군을 수송하고 있었으며, 문다로 증원 병력을 이동하기 위한 중간 기지인 빌라로 향하고 있었다.
일본 지원 부대의 호위함이 처음 교전했다. 미 해군은 레이더로 적 함선을 추적하여 01시 57분에 포격을 시작하여 구축함 니즈키를 빠르게 침몰시키고 아키야마 제독을 사망시켰다. 그러나 헬레나는 무연 화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매번의 일제사격으로 일본 함선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일본 구축함 2척은 롱 랜스 어뢰를 발사하여 헬레나에 명중시켜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최초 접촉 후 빌라에서 벗어난 주력 일본군은 연막 뒤로 물러섰다. 그 과정에서 나가츠키는 콜롬방가라섬의 밤바리 항 근처에 좌초되었고, 하츠유키는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03시 30분경, 에인스워스는 툴라기로 퇴각하기 시작했고, 일본군은 부인을 향했다. 미국 구축함 두 척인 래드포드와 오배넌은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남았다. 05시경, 아마기리와 니콜라스는 어뢰와 포격을 주고받았고, 아마기리는 물러났다. 좌초된 나가츠키는 아침에 승무원에 의해 버려졌고, 나중에 미군 항공기에 의해 폭격되어 파괴되었다.
4.1. 전개
1943년 7월 5일 밤, 테루오 아키야마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해군 증원 부대는 1,600명의 병력과 물자를 싣고 부인 항을 출발하여 쿨라만으로 향했다. 이들은 아키즈키급 구축함 니즈키를 기함으로 하는 지원대와 2개의 수송대로 나뉘어 있었다.
한편, 미군은 월든 L. 에인스워스 제독이 지휘하는 제36.1 임무군으로, 경순양함 헬레나, 세인트루이스, 호놀룰루와 구축함 니콜라스, 오배넌, 래드포드, 젠킨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일본 함대를 요격하기 위해 쿨라 만으로 진입했다.
7월 6일 자정 직후, 미 함선은 뉴 조지아 북서 해안의 비수 비수 포인트를 통과했다. 약 한 시간 후, 에인스워스의 기동 부대는 콜롬방가라 동쪽 해안에서 일본 해군 증원 부대와 접촉했다. 일본군은 총 10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되었으며, 지원 부대와 2개의 수송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
일본 지원 부대의 호위함이 먼저 교전했다. 미 해군은 레이더로 적 함선을 추적하여 01시 57분에 포격을 시작, 구축함 Niizuki를 빠르게 침몰시키고 아키야마 제독을 사망시켰다. 그러나 Helena는 일제사격으로 일본 함선에 자신을 노출시켰고, 일본 구축함 2척이 발사한 어뢰에 맞아 큰 피해를 입었다.
최초 접촉 후 주력 일본군은 연막 뒤로 물러섰다. 그 과정에서 Nagatsuki는 콜롬방가라섬의 밤바리 항 근처에 좌초되었고, Hatsuyuki는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03시 30분경, 에인스워스는 툴라기로 퇴각하기 시작했고, 일본군은 부인을 향했다. 05시경, Amagiri와 Nicholas는 어뢰와 포격을 주고받았고, Amagiri는 물러났다. 좌초된 Nagatsuki는 아침에 승무원에 의해 버려졌고, 나중에 미군 항공기에 의해 파괴되었다.
4.2. 전투
1시 57분, 미 해군은 레이더로 일본 함대를 탐지하고, 아인즈워스 제독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다. 미 경순양함들은 엄청난 속도로 포탄을 쏟아부었고, 일본군 기함 니즈키를 공격하여 아키야마 테루오 소장과 함께 격침시켰다. 그러나 일본 구축함들은 이미 어뢰 발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스즈카제와 타니카제는 어뢰를 발사하고 재빨리 전장을 이탈했다.
2시 4분, 미 경순양함 헬레나에 4발의 어뢰가 명중했다. 이 중 1발은 불발이었지만, 헬레나는 화염에 휩싸여 3분 만에 침몰했다.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되었으나, 2시 35분 아인즈워스 제독은 전투 중지 명령을 내렸다. 3시 30분, 니콜라스와 래드포드가 헬레나의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한편, 나가츠키는 콜롬방가라 섬 밤바리 항 근처에 좌초되었고, 하츠유키는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좌초된 나가츠키는 아침에 승무원들이 배를 버렸고, 이후 미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4.3. 전투 결과
미국 해군은 경순양함 헬레나 1척을 잃었고, 일본 해군은 구축함 니즈키, 나가츠키 2척을 잃었다. 이 해전에서 일본 제3수뢰전대 사령관 아키야마 테루오 소장이 전사했다., 피해 규모는 비슷했으나, 미 해군의 전력이 더 컸고 일본군이 양륙 작업을 성공했다는 점에서 보통 일본군의 승리로 평가된다.
일본군은 1,600명의 병력과 90톤의 물자를 양륙하는 데 성공하여, 수송 작전 자체는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헬레나의 생존자 구조 작전을 펼친 구축함 래드퍼드와 니콜라스는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참고로 이후 커먼스먼트 베이급 호위항공모함 CVE-108에 쿨라 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5. 전투의 영향
쿨라만 해전에서 미 해군은 경순양함 헬레나가 침몰하고 168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구축함 2척(니이즈키, 나가츠키)이 침몰하고 2척(아마기리, 하츠유키)이 손상되어 324명이 사망했다. 일본군 함선별 사상자는 다음과 같다.
| 함선 | 피해 | 사상자 |
|---|---|---|
| 니이즈키 | 침몰 | 사망 300명 |
| 아마기리 | 손상 | 사망 10명 |
| 나가츠키 | 침몰 | 사망 8명, 부상 13명 |
| 하츠유키 | 손상 | 사망 6명 |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빌라에 1,600명의 병력과 90톤의 물자를 성공적으로 상륙시켰지만, 주력함과 지휘관을 잃는 큰 손실을 입었다.
로버트 W. 하일러 함장은 이전 작전과 쿨라만에서 순양함 함대를 이끈 공로로 호놀룰루에서 두 번째 해군 십자 훈장을 받았다. 구축함 래드퍼드와 니콜라스는 헬레나의 생존자 750명 이상을 구조하는 동안 일본군과 세 번이나 교전해야 했고, 구조 작전으로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아마기리는 8월 2일 콜롬방가라 남서쪽 블랙켓 해협에서 존 F. 케네디가 지휘하는 어뢰정을 들이받아 절단냈다.
이 해전 이후에도 일본군은 콜롬방가라 섬으로의 증원 수송을 계속했다. 7월 12일에는 제2수뢰전대 (경순양함 진츠, 사령관 이자키 토시지 소장)와 미 함대 (에인스워스 소장) 사이에 콜롬방가라 섬 해전이 발생했다.
6. 전후 평가 및 분석
쿨라만 해전에서 미군은 경순양함 1척을 잃었고, 일본군은 구축함 2척을 잃었다. 양측의 피해는 비슷했지만, 일본군이 병력과 물자 수송에 일부 성공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승리로 평가되기도 한다.
미 해군은 헬레나 한 척에서만 168명이 사망했다. 일본 해군은 니이즈키에서 300명, 아마기리에서 10명, 나가츠키에서 8명, 하츠유키에서 6명이 사망하는 등 총 324명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1,600명의 병력과 90톤의 물자를 빌라에 상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호놀룰루의 로버트 W. 하일러 함장은 이전 작전에서의 공로와 이번 해전에서의 활약으로 두 번째 해군 십자 훈장을 받았다. 헬레나의 생존자 구조에 큰 역할을 한 래드퍼드와 니콜라스는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이 해전 이후, 일본군은 뉴조지아로 병력을 계속 증원했다. 7월 9일, 1,200명의 병력이 콜롬방가라 섬으로 이동했지만, 7월 12일/13일에 시도한 또 다른 증원은 콜롬방가라 해전으로 이어졌다.
7. 기타
미국 해군은 이 해전을 기념하여 호위항공모함 쿨라 걸프를 취역시켰다.
7.1. 명칭
미국 해군은 이 해전을 기념하여 호위항공모함 쿨라 걸프를 취역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