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힐분
1. 개요
탁발힐분은 위서와 신당서에 기록된 인물로, 탁발씨 부족의 지도자였다. 위서에 따르면 탁발린의 명을 받아 부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흉노의 옛 거주지에 정착했으며, 천녀와의 사이에서 탁발역미를 낳았다. 신당서에는 탁발힐분에게 탁발역미 외에 독발필고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탁발힐분 사후 독발필고가 독발선비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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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힐분 (詰汾, gil bun) |
|---|---|
| 묘호 | 성무제(聖武帝, Seongmuje) |
| 시호 | 선목황제(宣穆皇帝, Seongmuje) |
| 생몰 | ? ~ ? |
| 재위 기간 | ? ~ ? |
| 부친 | 헌제 탁발린(獻帝 拓跋鄰, Heonje Takbalr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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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 사문제 탁발의로(思文帝 拓跋猗盧, Samunje Takbalui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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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추존황제 -
탁발십익건
탁발십익건은 오호십육국 시대 대나라의 군주로서, 국가 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으로 대나라의 세력을 크게 일으켰으나, 말년에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했으며, 사후 소성황제로 추존되었다. -
북위의 추존황제 -
탁발울률
탁발울률은 탁발부의 수령 탁발의로의 아들로, 316년 대나라의 대왕으로 옹립되어 유능한 군사 지도자로서 세력을 확장했지만, 321년 백모 유씨에게 살해당했다. -
선비의 군주 -
단석괴
단석괴는 후한 시대 선비족을 통합하여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넓은 영역을 지배하며 후한을 위협한 지도자로, 그의 통치는 이후 선비족 발흥의 기반이 되었다. -
선비의 군주 -
모용준
모용준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연의 2대 군주이자 초대 황제로, 아버지 모용황의 뒤를 이어 연왕에 즉위한 후 후조의 혼란을 틈타 중원 진출을 본격화하여 황제를 칭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전진, 동진과 대립했고 수도를 업으로 옮겼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위서》에 따르면, 탁발힐분은 탁발린의 명을 받아 부족민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신수(神獸)의 인도로 흉노의 옛 거주지에 정착했다.
수렵 중 하늘의 명을 받았다는 천녀(天女)를 만나 하룻밤을 보냈고, 1년 후 천녀에게서 아들 탁발역미를 얻었다. 탁발힐분 사후 탁발역미가 그 뒤를 이었다.
2.1. 위서 기록
《위서》에 따르면 탁발힐분은 탁발린의 명으로 부족민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신수(神獸)의 인도를 받아 흉노의 옛 거주지에 정착하였다.
탁발힐분은 수렵 중 만난 천녀(天女)와 하룻밤을 보냈다. 1년 후, 천녀는 탁발힐분에게 아들 탁발역미를 주었고, 탁발역미는 탁발힐분의 뒤를 이어 탁발부의 수령이 되었다.
2.2. 신당서 기록
《신당서(新唐書)》에 따르면 탁발힐분에게는 탁발역미 외에 독발필고라는 아들이 있었다. 탁발힐분 사후, 탁발역미가 수령 자리를 계승하자 독발필고는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독발선비의 시조가 되었다. '독발(禿髮)'과 '탁발(拓跋)'은 본래 같은 음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표기가 갈라지면서 부족도 분리되었다.
3. 가계
탁발힐분에게는 탁발역미와 독발필고 두 아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