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울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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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탁발울률은 탁발부의 수령 탁발의로의 아들로, 316년 대나라의 대왕으로 옹립되었다. 그는 유능한 군사 지도자로서, 310년에는 유곤을 도와 선비 백부와 흉노 철불부를 격파하고, 318년에는 유호의 침략을 물리쳤다. 탁발울률은 서쪽으로 오손의 옛 땅을, 동쪽으로 물길 이서 지역을 병합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321년, 백모 유씨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이후 그의 아들 탁발하륵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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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의로는 서진의 유곤과 협력하여 흉노족 유연에 대항하고 세력을 확장하다 315년 대왕에 봉해졌으나, 아들에게 살해당한 후 북위 건국 후 목황제로 추존된 대나라의 초대 대왕이다. - 북위의 추존황제 - 탁발십익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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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실록은 277년 탁발부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서진의 이간계로 인한 혼란을 겪고 286년에 사망하여 동생 탁발착이 뒤를 이었다.
탁발울률 | |
---|---|
기본 정보 | |
칭호 | 대나라 왕 |
재위 기간 | 316년–321년 |
이전 | Unnamed son의 아들 |
다음 | 탁발혁려 |
시호 | 평문황제 (平文皇帝, 북위에서 추존) |
묘호 | 태조 (太祖, 북위에서 추존) |
성 | 탁발 (拓跋) |
이름 | 율률 (鬱律) |
사망 | 321년 |
가계 | |
아버지 | 탁발불 |
배우자 | 왕씨 |
기타 정보 | |
중국어 간체 | 拓跋郁律 |
2. 생애
탁발울률은 탁발불의 아들로, 용모가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모략에 뛰어났다. 310년부터 321년까지 대나라의 왕위에 있으면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확장하여 대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321년, 백모 유씨(탁발의타의 아내)가 자신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탁발울률과 여러 대신들을 살해했다. 이로 인해 사망자는 수십 명에 달했으며, 탁발울률 사후에는 유씨의 아들 탁발하력이 즉위했다. 북위 도무제 탁발규는 제를 칭하면서 울률을 평문황제로 추숭하고, 묘호를 태조로 하였다.
2. 1. 초기 활동과 즉위
310년, 탁발의로가 부족을 통치하던 시기에 백부 대인이 반란을 일으켜 서하군에 들어갔다. 이에 호응한 철불부의 유호가 안문군에서 거병하여, 유곤이 지키는 신흥군·안문 2군을 공격했다. 유곤과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탁발의로는 탁발울률에게 장기 2만 명을 주어 유곤을 돕게 했다. 탁발울률은 백부를 대파하고 그 부족을 도륙했으며, 유호를 격파하고 그 진영을 함락시켰다. 유호는 서쪽으로 도망쳐 삭방군으로 달아났다.316년, 탁발의로·탁발보근 및 그 아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대나라 사람들은 탁발울률을 대왕으로 옹립했다.
2. 2. 군사적 업적과 영토 확장
310년, 울률은 대왕 탁발의로(拓跋猗盧) 재위 시에 진나라 장군 유곤을 도와 선비백부와 흉노 철불부 유호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다.318년에는 유호의 침략을 다시 격파하고, 서쪽으로는 오손국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쪽으로는 물길(길림성)을 병합하였다. 탁발부의 병력은 강성하여 기마 사격이 가능한 장수가 백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지며, 대나라는 북방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같은 해, 전조의 유요가 진 황제 사마업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탁발울률은 중원을 구원할 뜻을 내비쳤으나, 유요의 화친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319년, 석륵이 스스로 조(後趙) 왕을 칭하며 대나라와 화친을 맺고 형제가 되기를 청했으나, 탁발울률은 사자를 참수하고 국교를 단절했다.
320년, 량주 자사 장무가 대나라에 조공했다.
321년, 동진의 원제가 대나라에 사자를 보내 작위를 주었지만, 탁발울률은 이를 거절하고 남방을 평정하려는 뜻을 밝혔다.
2. 3. 외교 관계
310년, 백부 대인이 반란을 일으켜 서하군에 들어갔을 때, 철불부의 유호가 안문군에서 거병하여 유곤이 지키는 신흥군·안문 2군을 공격했다. 탁발의로는 유곤과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탁발울률에게 장기 2만 명을 주어 유곤을 돕게 했다. 탁발울률은 백부를 대파하고 그 부족을 도륙했으며, 유호를 격파하고 그 진영을 함락시켰다. 유호는 서쪽으로 도망쳐 삭방군으로 달아났다.318년 6월, 유호가 황하를 건너 다시 대나라 서부에 침공해 오자, 7월에 탁발울률은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워 대파했다. 유호는 단기로 포위를 뚫고 도주했으며, 그의 사촌 동생 유로고는 부락을 이끌고 귀순해 왔다. 탁발울률은 유로고에게 딸을 주었다.
그 후, 탁발울률은 서쪽으로 오손의 옛 땅을 공략하고, 동쪽으로 물길 이서의 지역을 병합했다. 탁발부의 병마는 강성하여 기마 사격이 가능한 장수는 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나라는 북방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같은 해, 전조의 유요가 진 황제 사마업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탁발울률은 "지금 중원은 혼란스럽고 지배자가 없다. 하늘이 우리에게 구원하라고 말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유요는 대나라에 사자를 파견하여 화친을 꾀했지만, 탁발울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319년, 석륵은 스스로 조(後趙) 왕을 칭하며, 대나라와 화친을 맺고 형제가 되기를 청했다. 그러나 탁발울률은 사자를 참수하고 국교를 단절했다.
320년, 량주 자사 장무의 사자가 대나라에 조공했다.
321년, 동진의 원제가 대나라에 사자를 보내 작위를 주었지만, 탁발울률은 이를 거절했다. 탁발울률은 남방을 평정하려는 뜻이 있었다.
2. 4. 최후
백모 유씨(탁발의타의 아내)는 탁발울률이 부족의 마음을 얻고 그 세력이 강대해져서, 자신의 아들이 후계자로 세워지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탁발울률과 여러 대신들을 살해했으며,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수십 명에 달했다. 탁발울률이 죽은 후 유씨의 아들 탁발하륵이 즉위했다.3. 가계
이름 | 비고 |
---|---|
탁발예괴 | 탁발울률의 장남 |
탁발십익건 | 탁발울률의 차남 |
탁발굴 | 탁발울률의 3남 |
탁발고 | 탁발울률의 4남 |
탁발씨 | 유로고의 처 |
탁발씨 | 하란흘의 처 |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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