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촌면
1. 개요
퇴촌면은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의 면으로, 1912년 6월 20일에 설치되었다. 지명은 조선 태종의 총애를 받은 조영무가 은퇴 후 머물며 자신의 호를 딴 설과 고려 말 두 상서가 이곳에서 물러나 살았다는 설에서 유래했다. 현재 광동리 등 10개의 법정리와 여러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토마토, 오이, 표고버섯 등의 특산물이 생산된다. 도수초등학교, 광수중학교, 분원초등학교가 있으며, 신흠 묘역 및 신도비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퇴촌 공설운동장이 위치해 있으며, 광주시민운동장, 오포공설운동장, 실촌공설운동장도 인근에 있다.
| 이름 | 퇴촌면 |
|---|---|
| 한자 표기 | 退村面 |
| 영문 표기 | Toechon-myeon |
| 광역시/도 | 경기도 |
| 시/군/구 | 광주시 |
| 면적 | 60.75 |
| 세대 | 6,385 (2018년 9월 30일 기준) |
| 인구 | 14,213 (2018년 9월 30일 기준) |
| 법정리 | 광동리, 관음리, 우산리, 영동리, 도수리, 오리, 도마리, 무수리, 원당리, 정지리 |
| 행정리 | 19 |
| 반 | 54 |
| 면사무소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탑골길 6 |
| 홈페이지 | 퇴촌면 행정복지센터 |
-
광주시의 행정 구역 -
광주시 (경기도)
-
광주시의 행정 구역 -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면은 경기도 광주시의 면으로,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가 깊이 간직된 지역이며, 산성리, 엄미리, 광지원리 등 8개의 법정리와 11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고, 남한산성과 남한산성 행궁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와 포도, 느타리버섯, 아욱 등의 특산물이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중구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중구는 부산의 중심지로, 과거 왜관이 위치했으며 부산부청과 부산시청이 있었고 현재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한남동
한남동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며 성동구, 이태원동, 보광동과 접하고 한강과 마주하며, 한남대로를 통해 강남과 연결되고 능터골 전설이 전해지며, 한남역, 한강진역과 한남대교, 한남대로, 소월로 등의 교통 요충지이며, 서울한남초등학교, 리움미술관, 백범김구기념관 등 교육 및 문화 시설이 위치한 지역이다. -
경기도의 읍·면 -
화도읍
화도읍은 1914년 상도면과 하도면을 합쳐 명명된 남양주시의 읍으로, 1991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다양한 기관과 학교, 의료 시설, 주거 시설, 문화재, 명소 등이 위치하고, 경춘선, 서울양양고속도로 등 교통이 편리하다. -
경기도의 읍·면 -
팽성읍
2. 연혁
* 1912년 6월 20일: 퇴촌면 관내 이석리(현 남종면)의 개인 집에서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광동리 204번지로 이전했다.
*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면 청사가 유실되자, 면민들의 기부금으로 광동리 307번지에 청사를 새로 지었다.
* 1950년 10월: 한국전쟁 중 1.4 후퇴 때 청사가 크게 파손되어 개보수 후 사용했다.
* 1959년 12월 25일: 국비 지원을 받아 광동리 327번지에 청사를 새로 지었다.
* 1959년 12월: 면사무소 부지에 복지회관을 건립했다. (1993년 철거)
*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사리, 삼성리, 이석리가 남종면으로 편입되었다.
* 1991년 4월 27일: 현재 사용 중인 청사를 신축했다.
* 1995년: 오리 73-1번지에 퇴촌문화복지회관을 신축했다.
3. 지명 유래
퇴촌면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조선시대 초기 개국공신 조영무가 노년에 정계를 은퇴하고 광동리에서 살면서 자신의 호(號)인 '퇴촌(退村)'을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기록된 것으로, 고려 말 왕(王)씨와 백(白)씨 성을 가진 두 상서(尙書)가 함께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퇴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3.1. 조영무 관련 설
조선시대 초기의 개국공신이자 조선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한산군(漢山君) 조영무가 노년에 정계를 은퇴하고 광주의 동쪽 마을인 광동리에서 말년을 보냈다. 이때 자신의 호(號)를 '퇴촌(退村)'이라 지었는데, 이것이 지명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3.2. 고려 말 상서 관련 설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기록된 또 다른 설에 따르면, 고려 말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왕(王)씨와 백(白)씨 성을 가진 두 상서(尙書)가 함께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살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붕을 맞대고 이웃하여 살면서 살구나무 수백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마을은 '상서동(尙書洞)' 또는 '행방(杏坊)'이라 불렸는데, 두 상서가 관직에서 물러나(퇴촌, 退村) 살았다는 데서 '퇴촌'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4. 법정리 및 자연마을
7. 문화재
* 신흠 묘역 및 신도비 - 영동리 소재, 경기도 기념물 제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