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명령 191호
1. 개요
특별명령 191호는 1862년 9월 9일, 로버트 E. 리 장군이 메릴랜드 침공을 위해 작성한 작전 명령이다. 이 명령은 북버지니아군의 이동 계획을 상세히 담고 있으며, 군대를 분할하여 하퍼스 페리 점령, 마틴스버그 점령, 분스보로로의 이동 등 구체적인 임무를 각 부대에 할당했다. 특별명령 191호는 분실되었으나, 북군에 의해 발견되어 앤티텀 전투에 영향을 미쳤으며, 조지 B. 매클렐런 장군이 이 정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이 명령서의 사본은 여러 개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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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862년 9월 9일 |
|---|---|
| 장소 | 미국 남북 전쟁의 메릴랜드주 |
| 결과 | 남부 연합군의 작전 실패 |
| 북군 | 포토맥군 |
|---|---|
| 남군 | 북버지니아군 |
| 북군 | 조지 B. 매클렐런 |
|---|---|
| 남군 | 로버트 E. 리 |
| 북군 | 약 87,000명 |
|---|---|
| 남군 | 약 45,000명 |
| 북군 | 12,469명 (2,010명 사망, 9,416명 부상, 1,043명 실종/포로) |
|---|---|
| 남군 | 10,316명 (1,546명 사망, 7,752명 부상, 1,018명 실종/포로) |
| 다른 명칭 | 잃어버린 명령 잃어버린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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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로버트 E. 리 장군이 1862년에 발행한 명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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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전사학사 -
잃어버린 대의
잃어버린 대의는 남북 전쟁에서 패배한 남부 연합의 주장을 옹호하는 이념으로, 전쟁 원인이 노예제가 아니었으며 남부 연합의 탈퇴는 주 권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남부 연합 지도자를 미화하며 노예 제도의 잔혹성을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
메릴랜드주의 군사 -
엣지우드 생화학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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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문서 -
노예 해방 선언
노예 해방 선언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발표하고 이듬해 발효된 선언으로, 미국 연방에 반란을 일으킨 주에 속한 노예 해방을 목표로 남북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13차 수정안 통과로 미국 전역의 노예제 폐지에 기여했다.
2. 특별명령 191호의 작성과 배경
1862년 9월 9일경, 로버트 E. 리 장군은 메릴랜드주 침공을 계획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담은 특별명령 191호를 작성했다. 이 명령은 북버지니아군의 이동에 대한 세부 사항을 담고 있었는데, 리 장군은 군대를 분할하여 나중에 재결집할 계획을 세웠다.
문서에 따르면 남군 소장(CSA) 스톤월 잭슨은 부대를 마틴스버그로 이동시키고, 맥로우스 부대와 워커 부대는 하퍼스 페리를 점령하려고 시도해야 했다. 소장 제임스 롱스트리트는 부대를 북쪽으로 이동하여 분스보로로, 소장 D. H. 힐의 사단은 프레데릭에서 출발하는 행군의 후위 부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리 장군은 하퍼스 페리 포위에 필요한 경로와 도로, 시간을 명시했고, 부관 로버트 H. 칠턴은 이 편지의 사본을 작성하고 리의 이름으로 서명했다. 참모 장교들은 사본을 여러 남군 장군들에게 배포했고, 잭슨은 다시 이 문서를 그의 부하 중 한 명인 D. H. 힐에게 복사해 주었는데, 힐은 자신이 받은 유일한 사본은 잭슨이 준 것이라고 말했다.
2.1. 작성 배경
1862년 9월 9일경, 로버트 E. 리 장군은 메릴랜드주 침공을 계획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담은 특별명령 191호를 작성했다. 이 명령은 북버지니아군의 이동에 대한 세부 사항을 담고 있었는데, 리 장군은 군대를 분할하여 나중에 재결집할 계획을 세웠다.
문서에 따르면 남군 소장(CSA) 스톤월 잭슨은 부대를 마틴스버그로 이동시키고, 맥로우스 부대와 워커 부대는 하퍼스 페리를 점령하려고 시도해야 했다. 소장 제임스 롱스트리트는 부대를 북쪽으로 이동하여 분스보로로, 소장 D. H. 힐의 사단은 프레데릭에서 출발하는 행군의 후위 부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리 장군은 하퍼스 페리 포위에 필요한 경로와 도로, 시간을 명시했고, 부관 로버트 H. 칠턴은 이 편지의 사본을 작성하고 리의 이름으로 서명했다. 참모 장교들은 사본을 여러 남군 장군들에게 배포했고, 잭슨은 다시 이 문서를 그의 부하 중 한 명인 D. H. 힐에게 복사해 주었는데, 힐은 자신이 받은 유일한 사본은 잭슨이 준 것이라고 말했다.
2.2. 명령의 내용
로버트 E. 리 장군은 북버지니아군을 여러 부대로 분할하여 메릴랜드 침공 작전을 수행하도록 특별 명령 191호를 내렸다. 이 명령은 1862년 9월 9일경 메릴랜드 전역 중에 작성되었다.
스톤월 잭슨 부대는 웨스트버지니아주 마틴스버그를 점령하여 북부 연합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라파예트 맥로스 부대와 존 조지 워커 부대는 하퍼스 페리를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제임스 롱스트리트 부대는 메릴랜드주 분스보로로 이동하고, D. H. 힐 부대는 후위 부대 역할을 수행했다.
부관 로버트 H. 칠턴이 명령서 사본을 작성하고 리 장군이 서명하여 남부 연합군 장군들에게 배포했다. 잭슨은 이 문서를 D. H. 힐에게 복사해 주었는데, 힐은 자신이 받은 유일한 사본은 잭슨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리 장군은 하퍼스 페리 포위에 필요한 경로와 도로, 그리고 시간을 명령서에 명시했다.
3. 분실과 발견
1862년 9월 13일 정오쯤 제27 인디애나 자원병 소속 하사관 바턴 W. 미첼은 제12군단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힐(Hill)이 막 떠난 야영지 풀밭에서 시가 세 개가 들어 있는 종이 봉투를 발견했다. 미첼은 그 문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존 M. 블로스 상사에게 넘겼다. 그들은 대위 피터 코프에게 가서, 코프는 그것을 연대장 대령 실라스 콜그로브에게 보냈고, 콜그로브는 그것을 군단 사령부로 가져갔다. 그곳에서 준장 알페우스 S. 윌리엄스의 보좌관이 명령에 서명한 부 참모총장 R. H. 칠턴의 서명을 알아봤다. 윌리엄스의 보좌관인 대령 새뮤얼 피트만은 칠턴의 서명을 알아봤는데, 피트만이 칠턴이 인근 군사 기지의 급료 지급 담당관이었던 시절에 칠턴의 서명으로 발행된 어음을 자주 지급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이 전보를 포토맥군 사령관인 소장 조지 B. 매클리런에게 전달했다.
매클리런은 계획된 남부 동맹군 부대 이동을 알고 기쁨에 넘쳐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존 기번 준장에게 "이 종이가 있으니, 내가 바비 리를 이길 수 없다면 기꺼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베스트 농장의 언덕은 분실된 명령이 발견된 곳으로, 메릴랜드주, 프레데릭 외곽에 위치해 있으며, 1864년 모노캐시 전투에서 중요한 남부 연합 포병 진지였다. 모노캐시 국립 전적지의 역사 표지판은 메릴랜드 전역 중 특별 명령 191호의 발견을 기념한다.
명령서를 발견한 미첼 병장은 이후 앤티텀 전투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그로 인한 만성 감염으로 1864년에 제대했다. 그는 1868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1. 분실 경위
특별명령 191호 사본 중 하나가 분실되었다. 잭슨은 명령서를 힐에게 전달했으나, 힐은 자신이 받은 유일한 사본이 잭슨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실된 명령이 발견된 곳은 베스트 농장의 언덕으로, 메릴랜드주 프레데릭 외곽에 위치해 있으며, 1864년 모노캐시 전투에서 중요한 남부 연합 포병 진지였다. 모노캐시 국립 전적지의 역사 표지판은 메릴랜드 전역 중 특별 명령 191호의 발견을 기념한다.
명령서를 발견한 미첼 병장은 이후 앤티텀 전투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그로 인한 만성 감염으로 1864년에 제대했다. 그는 1868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2. 북부 연합군의 발견
1862년 9월 13일 정오쯤, 제27 인디애나 자원병 소속 바턴 W. 미첼 하사관은 제12군단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힐이 막 떠난 야영지 풀밭에서 시가 세 개가 들어 있는 종이 봉투를 발견했다. 미첼은 문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존 M. 블로스 상사에게 넘겼고, 이들은 연대장 실라스 콜그로브 대령에게 전달했다. 콜그로브 대령은 군단 사령부로 문서를 가져갔고, 그곳에서 알페우스 S. 윌리엄스 준장의 보좌관이 부 참모총장 R. H. 칠턴의 서명을 확인했다. 윌리엄스의 보좌관인 새뮤얼 피트만 대령은 칠턴의 서명을 알아봤는데, 이는 피트만이 과거 칠턴의 서명으로 발행된 어음을 자주 지급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이 전보를 포토맥군 사령관 조지 B. 매클리런 소장에게 전달했다.
매클렐런은 남부 동맹군 부대 이동 계획을 알고 기뻐하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어!"라고 외쳤다. 그는 존 기번 준장에게 "이 종이가 있으니, 내가 바비 리를 이길 수 없다면 기꺼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4. 특별명령 191호의 영향
국립공원관리청은 리 장군이 1868년 서한에서 이와 반대되는 언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릴랜드 전역이 끝난 후 한참 뒤에야 매클레런이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다. 또한 9월 15일 이전에 두 개의 북부 신문이 연합군 장교가 리의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1862년 9월 15일 아침, 북부 최대 신문인 뉴욕 헤럴드는 1면에 다음과 같은 속보를 우측 란에 게재했다.
워싱턴, 1862년 9월 14일이것이 인쇄되었지만 간과된 이유는 여기서 살펴본다.
오늘 프레데릭을 떠난 장교들의 보고에 따르면, 리 장군의 일반 명령서가 그곳에서 발견되었으며, 반란군 두 개 부대가 미들타운을 경유하여 진격할 것을 지시하고 있으며, 이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빨리 그린캐슬, 펜실베이니아로 향하고, 다른 하나는 윌리엄스포트 또는 셰퍼드스타운을 경유하여 재량껏 하퍼스 페리에 있는 연합군과 교전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sic]
매클레런은 그 후 앤티텀 전투에서 리의 침략을 저지했지만, 많은 군사 역사가들은 그가 (헨리 W. 할렉 소장은 "리 장군이 매클레런과 군대를 워싱턴에서 멀리 유인한 다음,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능한 함정에 대한 우려 또는 리 군대의 규모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정보의 전략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믿고 있다. 이는 남부연합의 리 장군이 북부 버지니아 군을 이끌고 메릴랜드 주를 침공한 작전의 결정적인 정보를 담은 특별명령 191호를 매클레런이 입수하고도,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여 전략적 우위를 상실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4.1. 매클렐런의 인지와 반응
매클렐런은 명령서를 입수하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어!"라며 기뻐했고, "이 종이가 있으니, 내가 바비 리를 이길 수 없다면 기꺼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언급했다. 국립공원관리청은 메릴랜드 전역이 끝난 후 한참 뒤에야 매클렐런이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다. 1862년 9월 15일 아침, 북부 최대 신문인 뉴욕 헤럴드는 1면에 "오늘 프레데릭을 떠난 장교들의 보고에 따르면, 리 장군의 일반 명령서가 그곳에서 발견되었다"라는 속보를 게재했다.
매클렐런은 앤티텀 전투에서 리의 침략을 저지했지만, 많은 군사 역사가들은 그가 정보의 전략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믿고 있다. 이는 가능한 함정에 대한 우려 또는 리 군대의 규모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4.2. 앤티텀 전투에 미친 영향
매클렐런은 앤티텀 전투에서 리의 침략을 저지했지만, 많은 군사 역사가들은 그가 정보의 전략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로는 가능한 함정에 대한 우려 또는 리 군대의 규모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국립공원관리청은 리 장군이 1868년 서한에서 이와 반대되는 언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릴랜드 전역이 끝난 후 한참 뒤에야 매클레런이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다. 또한 9월 15일 이전에 두 개의 북부 신문이 연합군 장교가 리의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1862년 9월 15일 아침, 북부 최대 신문인 뉴욕 헤럴드는 1면에 다음과 같은 속보를 게재했다.
워싱턴, 1862년 9월 14일
오늘 프레데릭을 떠난 장교들의 보고에 따르면, 리 장군의 일반 명령서가 그곳에서 발견되었으며, 반란군 두 개 부대가 미들타운을 경유하여 진격할 것을 지시하고 있으며, 이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빨리 그린캐슬, 펜실베이니아로 향하고, 다른 하나는 윌리엄스포트 또는 셰퍼드스타운을 경유하여 재량껏 하퍼스 페리에 있는 연합군과 교전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sic]
4.3. 리 장군의 인지 시점 논란
5. 현존하는 특별명령 191호 사본
현재까지 존재하는 1862년 9월 발행된 특별명령 191호의 원본 사본으로 추정되는 문서는 최소 3개 이상이다. 해당 사본들은 다음과 같다.
* 국립 문서 보관소에 보관된 북부 버지니아 군 특별 명령 문서에 기록된 전체 명령서. (또한 국립 문서 보관소의 별도 파일로 추출된 페이지 포함)
* 조지 B. 매클렐런 장군이 소유했던 명령서 일부(즉, "분실된" 버전) 사본으로, 의회 도서관에 보관된 매클렐런의 개인 문서에 포함되어 있다.
* D. H. 힐 장군이 소유했던 명령서 일부 사본(스톤월 잭슨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으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