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우카인
1. 개요
티에우카인은 1370년 쩐 왕조의 예종이 즉위 후 선포한 연호이다. '경사로움을 이어받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혼란을 극복하고 왕조의 번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1370년부터 1372년까지 사용되었으며, 1373년 롱카인으로 개원되었다. 동시대 중국에서는 명나라 홍무 연호가 사용되었고, 일본에서는 남조와 북조에서 각각 다른 연호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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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 연호 제정 배경
2.1. 쩐 왕조의 혼란
2.2. 예종의 즉위와 개혁 시도
1370년 12월 3일(율리우스력), 쩐 왕조의 종친이었던 쩐푸(Trần Phủ, 陳暊)는 즈엉녓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쩐 왕조의 예종이다. 예종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즉위 직후 연호를 티에우카인(紹慶)으로 선포했다. 티에우카인은 '경사로움을 이어받다'라는 뜻으로, 예종이 혼란을 극복하고 왕조의 번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1373년 1월 24일(율리우스력)에 연호를 [[롱카인 (연호)|롱카인]](隆慶)으로 다시 개원하였다.
3. 연대 대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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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시대 연호
4.1.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 1368년~1398년) 시기에 해당한다. 북원에서는 지정(至正, 1341년~1370년) 및 선광(宣光, 1371년~1379년) 연호가 사용되었다. 명하에서는 개희(開熙, 1367년~1371년) 연호가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