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선
1. 개요
팽선은 장우에게 《역경》을 배우고 전한 시대에 관료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우부풍, 정위, 대사농, 광록훈, 우장군, 좌장군 등을 역임했으며, 애제의 외척 견제, 왕망의 집권 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쳤다. 결국 대사공에 봉해지고 장평후에 책봉되었으나, 왕망에게 미움을 받아 은퇴 시 금과 수레를 받지 못했다. 원시 4년(4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경(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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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사망 -
혁거세 거서간
혁거세 거서간은 신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기원전 69년 알에서 태어나 13세에 왕으로 추대되어 서라벌을 다스리다가 승천했으며, 현대 박씨의 시조로 여겨진다. -
4년 사망 -
가이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손자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일원이었으나, 후계자 후보로 기대를 받던 중 아르메니아 원정에서 부상으로 사망하여 로마 제국의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쳤다. -
전한의 관내후 -
병창
병창은 전한 시대에 관내후를 계승하고 중랑장, 박양후, 태상을 지냈으나 동군태수로 좌천되어 사망한 인물로, 그의 행적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전한의 관내후 -
이저
이저는 전한 시대 경제를 섬긴 인물로, 무제 시기 강노장군으로서 흉노 정벌에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여러 전투에서 흉노를 무찌르고 좌풍익을 지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생애
장우에게서 《역경》을 배웠고, 조정의 부름을 받아 박사가 되고 동평태부가 되었다. 훗날 성제의 초빙을 받은 장우의 천거로 우부풍으로 기용되었고, 이듬해에 정위가 되었으나, 제후국 출신은 장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태원태수로 좌천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다시 부름을 받아 대사농·광록훈을 역임하였고, 애제 즉위 후 우장군·좌장군을 역임하였으나 면직되었다. 이는 애제가 외척 정(丁)씨·부(傅)씨를 고관에 앉히고자 하여 벌어진 일로, 애제는 팽선의 아들이 회양왕의 딸과 혼인한 것을 이유로 팽선을 면직시키고, 금과 수레·말을 내려주고 관내후에 봉하여 집으로 보냈다.
이후 간대부(諫大夫) 포선의 천거로 원수 원년(기원전 2년)에 광록대부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사공에 봉해지고 장평후(長平侯)에 봉해졌다.
같은 해, 애제가 붕어하고 왕망이 대사마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니, 팽선은 연로함을 이유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왕망은 자신이 권력을 잡자마자 은퇴하는 팽선을 미워하여, 으레 은퇴할 때 주었던 금과 수레를 주지 않았다.
원시 4년(4년)에 죽으니 시호를 경(頃)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팽성이 이었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진출
장우에게서 《역경》을 배웠고, 조정의 부름을 받아 박사가 되었으며, 동평왕 유우의 태부가 되었다. 훗날 성제의 스승으로 존경받게 된 장우는 "팽선은 정치를 맡길 만하다"라고 추천하여 영시 3년(기원전 14년)에 우부풍이 되었고, 영시 4년(기원전 13년)에는 정위로 옮겨졌다. 그러나 원연 2년(기원전 11년)에 제후왕국의 사람은 장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태원태수로 좌천되었다.
2.2. 중앙 정계 복귀와 파란
장우에게서 《역경》을 배웠고, 조정의 부름을 받아 박사가 되었으며, 동평 태부가 되었다. 이후 성제의 초빙을 받은 장우의 천거로 우부풍으로 기용되었고, 이듬해에 정위가 되었으나, 제후국 출신은 장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태원 태수로 좌천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다시 부름을 받아 대사농·광록훈을 역임하였고, 애제 즉위 후 우장군·좌장군을 역임하였으나 면직되었다. 이는 애제가 외척 정(丁)씨·부(傅)씨를 고관에 앉히고자 하여 벌어진 일로, 애제는 팽선의 아들이 회양왕의 딸과 혼인한 것을 이유로 팽선을 면직시키고, 금과 수레·말을 내려주고 관내후에 봉하여 집으로 보냈다.
이후 간대부(諫大夫) 포선의 천거로 원수 원년(기원전 2년)에 광록대부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사공에 봉해지고 장평후(長平侯)에 봉해졌다.
같은 해, 애제가 붕어하고 왕망이 대사마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니, 팽선은 연로함을 이유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왕망은 자신이 권력을 잡자마자 은퇴하는 팽선을 미워하여, 으레 은퇴할 때 주었던 금과 수레를 주지 않았다.
2.3. 왕망 집권과 은퇴, 그리고 죽음
장우에게서 《역경》을 배웠고, 조정의 부름을 받아 박사가 되고 동평태부가 되었다. 훗날 성제의 초빙을 받은 장우의 천거로 우부풍으로 기용되었고, 이듬해에 정위가 되었으나, 제후국 출신은 장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태원태수로 좌천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 다시 부름을 받아 대사농·광록훈을 역임하였고, 애제 즉위 후 우장군·좌장군을 역임하였으나 면직되었다. 이는 애제가 외척 정(丁)씨·부(傅)씨를 고관에 앉히고자 하여 벌어진 일로, 애제는 팽선의 아들이 회양왕의 딸과 혼인한 것을 이유로 팽선을 면직시키고, 금과 수레·말을 내려주고 관내후에 봉하여 집으로 보냈다.
이후 간대부(諫大夫) 포선의 천거로 원수 원년(기원전 2년)에 광록대부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사공에 봉해지고 장평후(長平侯)에 봉해졌다.
같은 해, 애제가 붕어하고 왕망이 대사마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니, 팽선은 연로함을 이유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왕망은 자신이 권력을 잡자마자 은퇴하는 팽선을 미워하여, 으레 은퇴할 때 주었던 금과 수레를 주지 않았다.
원시 4년(4년)에 죽으니 시호를 경(頃)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팽성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