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힐리
1. 개요
펠릭스 힐리는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슬라이고 로버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디스틸러리, 핀 하프스, 포트 베일, 콜레인을 거쳐 데리 시티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데리 시티에서 리그 오브 아일랜드, FAI컵, 리그 오브 아일랜드 컵을 우승하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1982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콜레인, 데리 시티, 핀 하프스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데리 시티를 리그와 FAI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 이름 | 펠릭스 힐리 |
|---|---|
| 전체 이름 | Patrick Joseph Healy |
| 출생일 | 1956년 9월 27일 |
| 출생지 | 데리 (북아일랜드) |
| 포지션 | 은퇴 (과거 미드필더 / 공격수) |
| 키 | 1.78m |
| 클럽 연도 | 1974–1976 1976–1977 1977–1978 1978–1980 1980–1987 1987–1991 1991–1992 |
|---|---|
| 클럽 | 슬라이고 로버스 디스틸러리 핀 하프스 포트 베일 콜레인 데리 시티 콜레인 |
| 출장수 (골) | 24 (2) 33 (5) 41 (2) 114 (23) 26 (1) |
| 국가대표팀 연도 | 1982 1982–1986 1989 |
|---|---|
| 국가대표팀 | 북아일랜드 아이리시 리그 대표 리그 오브 아일랜드 대표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4 (0) 3 (1) 1 (1) |
| 감독 연도 | 1993–1994 1994–1998 2004–2005 |
|---|---|
| 감독 클럽 | 콜레인 데리 시티 핀 하프스 |
-
아일랜드에 거주한 북아일랜드인 -
마틴 오닐
마틴 오닐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경험하고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지도자로서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맡아 셀틱 감독 시절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회 우승을 달성하고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다. -
축구 단장 -
빌리 빙엄
빌리 빙엄은 북아일랜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우측 공격수로 활약하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에서 56경기 10골을 기록했고, 감독으로서는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및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우승 등의 업적을 달성했다. -
축구 단장 -
파비오 파라티치
파비오 파라티치는 이탈리아의 축구 경영인으로, 선수 시절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UC 삼프도리아와 유벤투스 FC를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의 축구 전무 이사를 역임했으나 자본 이득 위반 혐의로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
콜레인 FC의 축구 선수 -
짐 플랫
짐 플랫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들즈브러에서 활약하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로도 뛰었고, 은퇴 후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으며, 현재는 미들즈브러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콜레인 FC의 축구 선수 -
마이클 오닐 (축구인)
마이클 오닐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여러 팀에서 활약했으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31경기에 출전했고, 감독으로서 섐록 로버스를 이끌고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UEFA 유로 2016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2. 클럽 경력
힐리는 십대에 슬라이고 로버스에서 1군 신고식을 치르고, 1976년에 디스틸러리로 이적했다. 구단은 구장이 없는 애로사항이 있었고, 힐리는 1시즌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1977년 3월, 그는 핀 하프스로 둥지를 옮겨 리그 오브 아일랜드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하프스 소속으로 일취월장했다.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리그 오브 아일랜드와 타일러 전아일랜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78년 10월, 잉글랜드의 포트 베일은 그를 영입하려 £8,000을 들였다. 그는 4부 리그에서 2년을 보내고 아일랜드 해를 다시 건너 빅터 헌터 감독이 이끄는 콜레인으로 1980년 7월에 이적했다.
그는 "밴 해안인" 소속으로 1981-82 시즌에 아일랜드 리그와 컵 2관왕 근처까지 갔지만, 둘 다 모두 린필드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얼스터 올해의 축구 선수와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차출로 위로받았다. 그는 이후에도 콜레인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힐리는 얼스터컵 우승과 아이리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페널티 킥으로 골을 넣고도 1986년 결승전에서 글렌토런에 1-2로 패했다.
콜레인 시절, 그는 8번의 유럽 대회 경기에 출전했는데, UEFA컵 2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는데, 1983년 9월과 1986년 9월에 스파르타 로테르담과 슈탈 브란덴부르크를 상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1987년, 힐리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데리 시티로 이적해 리그 오브 아일랜드, FAI컵(결승전에서 1-0 결승골 득점), 그리고 리그 오브 아일랜드 컵을 1988-89 시즌에 우승해 국내 3관왕을 달성했다. 데리 시티는 아이리시 리그를 우승한 지 20년 넘는 세월 만에 첫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1987년 9월 20일에 데리의 프리미어 디비전 1호골 주인공도 되었다. 그는 고향 구단 소속으로 162번의 경기에 출전해 38골을 기록했다.
2.1. 초기 경력
힐리는 십대에 슬라이고 로버스에서 1군 신고식을 치르고, 1976년에 디스틸러리로 이적했다. 구단은 구장이 없는 애로사항이 있었고, 힐리는 1시즌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1977년 3월, 그는 핀 하프스로 둥지를 옮겨 리그 오브 아일랜드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하프스 소속으로 일취월장했다.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리그 오브 아일랜드와 타일러 전아일랜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78년 10월, 잉글랜드의 포트 베일은 그를 영입하려 £8,000을 들였다. 그는 4부 리그에서 2년을 보내고 아일랜드 해를 다시 건너 빅터 헌터 감독이 이끄는 콜레인으로 1980년 7월에 이적했다. 그는 "밴 해안인" 소속으로 1981-82 시즌에 아일랜드 리그와 컵 2관왕 근처까지 갔지만, 둘 다 모두 린필드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얼스터 올해의 축구 선수와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차출로 위로받았다. 그는 이후에도 콜레인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힐리는 얼스터컵 우승과 아이리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페널티 킥으로 골을 넣고도 1986년 결승전에서 글렌토런에 1-2로 패했다.
콜레인 시절, 그는 8번의 유럽 대회 경기에 출전했는데, UEFA컵 2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는데, 1983년 9월과 1986년 9월에 스파르타 로테르담과 슈탈 브란덴부르크를 상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1987년, 힐리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데리 시티로 이적해 리그 오브 아일랜드, FAI컵(결승전에서 1-0 결승골 득점), 그리고 리그 오브 아일랜드 컵을 1988-89 시즌에 우승해 국내 3관왕을 달성했다. 데리 시티는 아이리시 리그를 우승한 지 20년 넘는 세월 만에 첫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1987년 9월 20일에 데리의 프리미어 디비전 1호골 주인공도 되었다. 그는 고향 구단 소속으로 162번의 경기에 출전해 38골을 기록했다.
2.2. 포트 베일 FC
힐리는 십대에 슬라이고 로버스에서 1군 신고식을 치르고, 1976년에 디스틸러리로 이적했다. 구단은 구장이 없는 애로사항이 있었고, 힐리는 1시즌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1977년 3월, 그는 핀 하프스로 둥지를 옮겨 리그 오브 아일랜드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하프스 소속으로 일취월장했다.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리그 오브 아일랜드와 타일러 전아일랜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78년 10월, 잉글랜드의 포트 베일은 그를 영입하려 £8,000을 들였다. 그는 4부 리그에서 2년을 보냈다.
2.3. 콜레인 FC
힐리는 십대에 슬라이고 로버스에서 1군 신고식을 치르고, 1976년에 디스틸러리로 이적했다. 구단은 구장이 없는 애로사항이 있었고, 힐리는 1시즌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1977년 3월, 그는 핀 하프스로 둥지를 옮겨 리그 오브 아일랜드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하프스 소속으로 일취월장했다.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리그 오브 아일랜드와 타일러 전아일랜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78년 10월, 잉글랜드의 포트 베일은 그를 영입하려 £8,000을 들였다. 그는 4부 리그에서 2년을 보내고 아일랜드 해를 다시 건너 빅터 헌터 감독이 이끄는 콜레인으로 1980년 7월에 이적했다. 그는 "밴 해안인" 소속으로 1981-82 시즌에 아일랜드 리그와 컵 2관왕 근처까지 갔지만, 둘 다 모두 린필드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얼스터 올해의 축구 선수와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차출로 위로받았다. 그는 이후에도 콜레인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힐리는 얼스터컵 우승과 아이리시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페널티 킥으로 골을 넣고도 1986년 결승전에서 글렌토런에 1-2로 패했다.
콜레인 시절, 그는 8번의 유럽 대회 경기에 출전했는데, UEFA컵 2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는데, 1983년 9월과 1986년 9월에 스파르타 로테르담과 슈탈 브란덴부르크를 상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1987년, 힐리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데리 시티로 이적해 리그 오브 아일랜드, FAI컵(결승전에서 1-0 결승골 득점), 그리고 리그 오브 아일랜드 컵을 1988-89 시즌에 우승해 국내 3관왕을 달성했다. 데리 시티는 아이리시 리그를 우승한 지 20년 넘는 세월 만에 첫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1987년 9월 20일에 데리의 프리미어 디비전 1호골 주인공도 되었다. 그는 고향 구단 소속으로 162번의 경기에 출전해 38골을 기록했다.
2.4. 데리 시티 FC
힐리는 고향을 연고로 하는 데리 시티로 1987년에 이적하여 1988-89 시즌에 리그 오브 아일랜드, FAI컵(결승전에서 1-0 결승골 득점), 그리고 리그 오브 아일랜드 컵을 우승하며 국내 3관왕을 달성했다. 데리 시티는 아이리시 리그를 우승한 지 20년이 넘는 세월 만에 첫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1987년 9월 20일에 데리의 프리미어 디비전 1호골 주인공이 되었다. 힐리는 고향 구단 소속으로 162번의 경기에 출전해 38골을 기록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힐리는 스코틀랜드와의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경기에서 실험적인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려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이후, 웨일스와의 월드컵 최악의 연습 경기에서 0-3으로 패할 당시 2번째 경기를 출전했다. 힐리는 빌리 빙엄 감독의 기대를 어느정도 충족시키며, 스페인에서 열린 1982년 월드컵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1경기를 출전했는데, 1-1로 비긴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마틴 오닐과 교체로 투입되었다. 그는 월드컵 본선 경기에 출전한 최초이자 2022년 기준으로 유일한 아이리시 리그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는 월드컵 이후 치른 첫 경기인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4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아이리시 리그 대표팀의 주전이었다. 그는 3경기에 출전했는데, 3-3으로 비긴 베오그라드전(유고슬라비아 리그 대표), 그리고 리그 오브 아일랜드 대표와의 2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중 1경기는 1984년에 4-0으로 이겼고(그도 득점했다), 1986년에는 1-2로 패했다.
4. 감독 경력
1993년 10월, 힐리는 콜레인에 선수 겸 감독으로 복귀해 윌리 맥폴의 바통을 이어받았고, 이후 1994년 12월에 데리의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는 4년 동안 브랜디웰 경기장에 머물렀고, 데리를 리그와 FAI컵 우승으로 이끌고 1998년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힐리는 2004년 5월에 핀 하프스의 감독으로 깜짝 취임하기 전까지 야인으로 남았다. 침체기에 빠진 구단을 추스린 그는 핀 파크 연고 구단에서 우승으로 1부 리그 승격을 이룩했다. 그러나, 구단은 프리미어십에서 고전하면서 그는 2005년 7월에 해임되었다.
5. 기타 활동
힐리는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활동 시절, 정육점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클럽 가수로 활동하며 수입을 얻었다. 드라이브105.3FM의 방송 관리자로 일하면서 세탄타 스포츠의 축구 평론가로 출연했고, 지역 방송사인 채널 9의 스포츠 기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데리에서 클럽 가수로 활동하며 그리스의 지역 공연에서 여러 곡을 불렀다.
6. 사생활
힐리는 슬하에 앨런, 조지나, 그리고 패트릭, 총 3명의 자식을 두었다. 패트릭은 1989년 FAI컵 결승전에서 펠릭스 힐리가 결승골을 득점할 당시에 마스코트였다.
7. 경력 통계
wikitable
| 구단 | 시즌 | 리그명 | 리그 | 컵 | 기타 | 합계 |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슬라이고 로버스 | 1974–75 | 리그 오브 아일랜드 | 20 | 1 | ||||||
| 1975–76 | 4 | 1 | ||||||||
| 합계 | 24 | 1 | ||||||||
| 핀 하프스 | 1978–79 | 리그 오브 아일랜드 | 4 | 0 | ||||||
| 포트 베일 | 1978–79 | 4부 리그 | 23 | 2 | 1 | 0 | 0 | 0 | 24 | 2 |
| 1979–80 | 18 | 0 | 0 | 0 | 2 | 0 | 20 | 0 | ||
| 합계 | 41 | 2 | 1 | 0 | 2 | 0 | 44 | 2 | ||
| 데리 시티 | 1987–88 | 리그 오브 아일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 29 | 3 | ||||||
| 1988–89 | ||||||||||
| 1989–90 | ||||||||||
| 1990–91 | 25 | 4 | ||||||||
| 콜레인 | 1991–92 | 아이리시 리그 | 26 | 1 | ||||||
7.1. 선수 경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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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단 | 시즌 | 리그명 | 리그 | 컵 | 기타 | 합계 |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슬라이고 로버스 | 1974–75 | 리그 오브 아일랜드 | 20 | 1 | ||||||
| 1975–76 | 4 | 1 | ||||||||
| 합계 | 24 | 1 | ||||||||
| 핀 하프스 | 1978–79 | 리그 오브 아일랜드 | 4 | 0 | ||||||
| 포트 베일 | 1978–79 | 4부 리그 | 23 | 2 | 1 | 0 | 0 | 0 | 24 | 2 |
| 1979–80 | 18 | 0 | 0 | 0 | 2 | 0 | 20 | 0 | ||
| 합계 | 41 | 2 | 1 | 0 | 2 | 0 | 44 | 2 | ||
| 데리 시티 | 1987–88 | 리그 오브 아일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 29 | 3 | ||||||
| 1988–89 | ||||||||||
| 1989–90 | ||||||||||
| 1990–91 | 25 | 4 | ||||||||
| 콜레인 | 1991–92 | 아이리시 리그 | 26 | 1 | ||||||
8. 수상 내역
8.1. 선수
펠릭스 힐리는 개인 자격으로 북아일랜드 축구 기자 올해의 선수 (1981–82) 및 얼스터 올해의 축구 선수 (1981–82)에 선정되었다. 콜레인 소속으로 얼스터컵 (1986, 1987)을 우승했고, 아이리시컵 준우승 (1982, 1986)을 차지했다. 데리 시티 소속으로는 리그 오브 아일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1988–89), FAI컵 (1989) 우승을 달성했고, 리그 오브 아일랜드 컵은 우승 (1989, 1991)과 준우승 (1990) 기록을 가지고 있다.
8.2. 감독
데리 시티
* 리그 오브 아일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1996–97
* FAI컵: 1995
핀 하프스
* 리그 오브 아일랜드 퍼스트 디비전: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