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블레어 (야구인)
1. 개요
폴 블레어는 "수다쟁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다. 1964년부터 1980년까지 17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통산 타율 0.250, 134홈런, 620타점, 1513안타, 171 도루를 기록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1966년, 1970년, 1971년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으며, 8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했으며, 2013년 유명인 볼링 토너먼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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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Paul L. D. Blair 폴 L. D. 블레어 |
|---|---|
| 포지션 | 중견수 |
| 타석 | 우타 |
| 투구 | 우투 |
| 출생지 |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 |
| 사망지 |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
| 데뷔 | MLB / 1964년 9월 9일 D.C. 스타디움 BAL 대 WSH 전 |
| 마지막 경기 | MLB / 1980년 6월 20일 양키 스타디움 NYY 대 OAK 전 |
| 소속팀 |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4~1976) 뉴욕 양키스 (1977~1979) 신시내티 레즈 (1979) 뉴욕 양키스 (1980) |
|---|
| 올스타 | 2× 올스타 (1969, 1973) |
|---|---|
| 월드 시리즈 우승 | 4× 월드 시리즈 우승 (1966, 1970, 1977, 1978) |
| 골드 글러브 | 8× 골드글러브 (1967, 1969~1975) |
| 명예의 전당 | 볼티모어 오리올스 명예의 전당 헌액 |
| 타율 | .250 |
|---|---|
| 홈런 | 134 |
| 타점 | 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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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출생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1944년 출생 -
펠레티 세벨레
펠레티 세벨레는 통가의 정치인으로,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통가 입법회 의원, 노동상공부 장관, 총리 권한대행 및 총리를 역임했으며,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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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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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신시내티 레즈 선수 -
앤디 밴 헤켄
앤디 밴 헤켄은 미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한국, 대만 프로야구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넥센 히어로즈에서 20승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은퇴 후에는 투구 코치로 활동한다. -
신시내티 레즈 선수 -
애덤 던
애덤 던은 뛰어난 장타력과 높은 삼진율을 동시에 가진 미국 프로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에서 여러 팀을 거치며 14시즌 동안 활약했고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 대표팀으로도 출전했지만 수비에서는 약점을 드러냈다.
2. 선수 경력
폴 블레어는 1961년 뉴욕 메츠와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1962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여 1964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오리올스에서 그는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하는 중견수로 명성을 떨치며 1966년 월드 시리즈와 1970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수비에서는 총 8번의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수비형 외야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1969년에는 타격에서도 개인 최고 성적인 26홈런과 76타점을 기록하고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0년 경기 중 투구에 얼굴을 맞는 심각한 부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오리올스의 1971년 월드 시리즈 진출에도 기여했다. 1977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후에는 주로 경기 후반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 선수로 활약하며 양키스의 1977년 월드 시리즈와 1978년 월드 시리즈 연속 우승에 힘을 보탰다. 1979년 잠시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었으나 1980년 다시 양키스로 복귀했고, 그 해 시즌 중반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 초기 생애 및 아마추어 시절
블레어는 1944년 2월 1일 오클라호마주 쿠싱에서 태어났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하여 매뉴얼 아츠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학생 시절 농구, 야구, 육상 경기를 했고, 특히 높이뛰기 선수로 활동할 만큼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였다. 1961년, 뉴욕 메츠와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하여 처음에는 유격수로 활동했으나, 이후 외야수로 전향했다. 1962년 시즌을 팜 시스템에서 보낸 후, 같은 해 11월 26일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다. 그는 1963년과 1964년을 볼티모어의 마이너 리그 시스템에서 보냈다.
2.2.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4-1976)
1965년에 오리올스 라인업에 합류하여 개막전부터 중견수로 출전했다. 그해 5개의 홈런과 25개의 타점, 타율 0.234를 기록했는데, 타격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뛰어난 수비 실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66년에는 타율 0.277을 기록하며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프랭크 로빈슨이 이끄는 오리올스는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4경기 만에 꺾었다. 블레어는 이 시리즈의 3차전과 4차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3차전에서는 클로드 오스틴을 상대로 약 131.06m짜리 홈런을 쳤고, 4차전에서는 8회에 짐 르페브르의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 동점을 막았다. 또한 시리즈 마지막 아웃 카운트도 루 존슨의 플라이볼을 잡아내며 마무리했다.
1967년, 블레어는 11개의 홈런과 64타점, 그리고 아메리카 리그 최다인 12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개인 통산 최고 타율인 0.293을 기록했다. 이 해에 8개의 골드 글러브상 중 첫 번째를 수상했다. 1968년에는 타율 0.211로 부진했지만, 1969년에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오리올스 라인업에서 돈 부포드 다음인 2번 타자로 주로 출전하며 타율 0.285, 개인 통산 최고인 홈런 26개, 타점 76개, 득점 102개를 기록했다. 특히 26개의 홈런과 20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한 시즌에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최초의 오리올스 선수가 되었다. 이 해 처음으로 올스타 팀에 선발되었고(1973년에도 다시 선정됨), 팀의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0월 6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는 6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한 경기 5안타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오리올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미라클 메츠'에게 패배했다. 블레어는 이 시리즈에서 20타수 2안타에 그쳤는데, 그중 안타 하나는 3차전에서 토미 에이지의 두 차례에 걸친 환상적인 수비에 막히기도 했다. (에이지는 같은 경기 초반 엘로드 헨드릭스의 안타성 타구도 잡아냈다.) 블레어는 에이지의 수비 장면에서 놀란 라이언이 월드 시리즈에서 처음 상대한 타자였으며, 이는 명예의 전당 투수인 라이언이 등판한 유일한 월드 시리즈 경기이기도 했다. 블레어의 2안타 중 하나는 2차전 7회에 제리 코스만의 노히트 노런을 깨는 안타였다.
1970년 5월 31일, 애너하임 스타디움에서 열린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경기 8회에 투수 켄 테이텀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았다. 이 사고로 코뼈, 왼쪽 눈 아래 안와골절, 그리고 광대뼈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테이텀은 바로 앞 타자였던 부그 파웰에게도 몸쪽 공을 던져 유니폼을 스쳤기 때문에, 고의적인 빈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블레어는 부상 후 3주 만에 선발 라인업에 복귀했고, 시즌을 타율 0.267로 마쳤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3타수 1안타로 부진했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타율 .474, 출루율 .524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5경기에서 9안타를 기록하며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한 팀 동료 브룩스 로빈슨과 함께 시리즈 최다 안타 타이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팀 동료였던 투수 짐 파머는 "그가 공에 맞은 이후로, 그는 이전과 같은 타자가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971년, 블레어는 스위치 히터로 전향을 시도했지만, 57타수 11안타(타율 .193)에 그치자 이를 포기했다. 시즌 최종 타율은 0.262였다. 오리올스는 다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게 7경기 접전 끝에 패배했다. 이 시리즈 4차전에서 블레어는 월드 시리즈 야간 경기 사상 첫 타자로 기록되었다. 1회 초 선두 타자로 나와 피츠버그의 투수 루크 워커를 상대로 안타를 쳤다.
블레어는 외야에서 뒤로 물러나는 속도가 매우 빨라, 마치 윌리 메이스처럼 비교적 얕은 위치에서 수비를 시작하고도 깊은 타구를 잡아낼 수 있었다. 오리올스가 3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매년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후 1972년부터 1975년까지 4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더 수상했으며, 1975년에 마지막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을 때, 팀 동료 브룩스 로빈슨 역시 3루수로서 16번째이자 마지막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2.3. 뉴욕 양키스 (1977-1978, 1980)
블레어는 1977년 1월 20일, 엘리엇 매독스와 릭 블래트를 상대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거래는 당시 양키스 단장이었던 게이브 폴이 매독스를 팀에서 내보내고 싶어하면서 성사되었다. 양키스에서 블레어는 주로 경기 후반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 선수로 기용되었다.
1977년 6월 18일,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전국 중계 경기에서 그는 야구 역사상 기이한 장면 중 하나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 양키스 감독 빌리 마틴은 외야수 레지 잭슨이 짐 라이스의 평범한 플라이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집중력 없는 플레이를 보였다고 판단하여 즉시 그를 빼고 블레어를 투입했다. 이 갑작스러운 교체에 격분한 잭슨과 마틴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의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격한 언쟁을 벌였다. 블레어는 1977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릭 로든을 상대로 좌익수 방면 끝내기 안타를 쳐 양키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배우 세스 길리엄은 ESPN 미니시리즈 브롱스 이즈 버닝에서 블레어 역을 연기했다. 이 시리즈는 선수단 내 갈등과 뉴욕시의 혼란 속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1977년 양키스 시즌을 다루었다.
블레어는 1977년과 1978년 양키스 소속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1979년 시즌 초 방출되었다. 방출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신시내티 레즈와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했고, 이후 1980년 5월 다시 양키스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 해 7월 1일, 양키스에서 두 번째로 방출된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선수 시절 주요 기록 및 업적
Motormouth영어라는 별명으로 불린 블레어는 17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194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50, 134홈런, 620타점, 1513안타, 171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한 시즌에 17개 이상의 홈런과 20개 이상의 도루를 세 번 달성했으며, 번트 능력도 뛰어나 선수 생활 동안 네 차례(1969년, 1974-1976년) 10개 이상의 희생번트를 기록했고, 1975년에는 17개를 기록했다.
1966년, 블레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시리즈 3차전에서 클로드 오스틴을 상대로 약 131.06m 홈런을 쳤고, 4차전에서는 8회 짐 르페브르의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며 데이브 맥널리의 1-0 완봉승을 지켰다. 또한 시리즈 마지막 아웃을 루 존슨의 플라이볼 아웃으로 잡아냈다.
1967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타율 0.293과 아메리칸 리그 최다인 3루타 12개를 기록하며 첫 번째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69년은 그의 최고의 시즌 중 하나로, 타율 0.285, 개인 최다인 홈런 26개, 타점 76개, 득점 102개를 기록했다. 이 해 오리올스 선수 최초로 한 시즌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ALCS) 1차전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11회 말 끝내기 번트 안타를 쳐 팀 승리를 이끌었다. 트윈스 감독 빌리 마틴은 경기 후 "완벽한 번트는 이길 방법이 없다"고 평했다. 또한 10월 6일 ALCS 3차전에서는 포스트시즌 한 경기 5안타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뉴욕 메츠에게 패했으며, 블레어는 20타수 2안타에 그쳤다. 그의 안타 중 하나는 2차전 7회 제리 코스만의 노히트 노런을 저지하는 안타였다.
1970년 5월 31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경기 중 투수 켄 테이텀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코뼈, 왼쪽 눈 아래 안와골, 광대뼈 골절상을 입었다. 3주 후 복귀하여 시즌을 타율 0.267로 마쳤고, 월드 시리즈에서는 타율 .474, 출루율 .524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팀 동료 짐 파머는 빈볼 사건 이후 블레어가 이전과 같은 타자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1971년 월드 시리즈 4차전에서는 월드 시리즈 역사상 최초의 야간 경기에 첫 타자로 나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루크 워커를 상대로 안타를 쳐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블레어는 수비력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빠른 발을 이용해 다른 외야수들보다 얕은 위치에서 수비를 시작해 윌리 메이스처럼 타구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는 8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으며(1967, 1969-1975), 아메리칸 리그에서 두 차례 수비 부문 최다 아웃을 기록했다. 그의 통산 수비율은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윌리 메이스나 켄 그리피 주니어보다 높다. 짐 파머는 블레어가 외야에 있으면 수비에서 매 경기 2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고, 감독 얼 위버는 블레어의 뛰어난 위치 선정 덕분에 화려한 수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1977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후, 주로 경기 후반 수비 강화를 위해 기용되었다. 그해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릭 로든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 팀 승리를 이끌었다. 양키스 소속으로 1977년과 1978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월드 시리즈 통산 28경기에서 타율 0.288, 출루율 0.347, 장타율 0.379를 기록했다.
4. 코칭 경력
선수 경력 말년인 1981년 뉴욕 양키스의 외야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8월에는 포드햄 대학교 야구팀의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고, 1983년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끌며 14승 19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외야 코치와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 A 팀인 로체스터 레드 윙스의 3루 코치를 맡아 1985년까지 활동했다.
1995년에는 신생 독립 리그인 노스이스트 리그 소속 욘커스 후트 올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팀은 12승 52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한 시즌 만에 해체되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코핀 주립 대학교 야구팀의 수석 코치를 맡아 지도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팀의 통산 성적은 30승 185패로 좋지 않았다.
5. 은퇴 이후
블레어는 코치에서 은퇴한 후 아내 글로리아와 함께 메릴랜드주 우드스톡에서 거주했다. 은퇴 후에는 종종 유명인 골프 및 볼링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사망하기 전까지 메릴랜드주 엘더스버그의 트라이앵글 피트니스에서 운동하고, 메릴랜드주 리스터스타운의 킹스 포인트 레인에서 볼링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 폴 블레어 3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8년 동안 선수로 활동했다.
2013년 12월 26일, 블레어는 메릴랜드주 파이크스빌에서 열린 유명인 볼링 토너먼트 도중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그는 구급차로 볼티모어의 시나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곳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6. 사망
2013년 12월 26일, 블레어는 메릴랜드주 파이크스빌에서 열린 유명인 볼링 토너먼트 도중 심장마비를 겪고 의식을 잃었다. 그는 구급차로 볼티모어의 시나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7. 기타
블레어는 코치에서 은퇴한 후 아내 글로리아와 함께 메릴랜드주 우드스톡에서 살았다. 은퇴 후 블레어는 종종 유명인 골프 및 볼링 토너먼트에 출연했다. 사망 당시 그는 메릴랜드주 엘더스버그의 트라이앵글 피트니스에서 운동하고 메릴랜드주 리스터스타운의 킹스 포인트 레인에서 볼링을 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 폴 블레어 3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 리그에서 8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2013년 12월 26일, 블레어는 메릴랜드주 파이크스빌에서 열린 유명인 볼링 토너먼트에서 심장마비를 겪고 의식을 잃었다. 그는 구급차로 볼티모어의 시나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