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야마 야스오
1. 개요
하루야마 야스오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1927년과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1927년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필리핀을 상대로 일본 대표팀의 국제 A매치 첫 승리를 이끌었다. 도쿄 대학을 졸업했으며, 은퇴 후 닛칸 스포츠에 입사했다. 1987년 위장관 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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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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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1906년 출생 -
이효상
이효상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시인, 교육자로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계와 언론계에서 활동하다 4·19 혁명 후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3선 개헌 강행 처리와 유신 체제 지지 등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
1906년 출생 -
호아킨 발라게르
호아킨 발라게르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작가로서, 라파엘 트루히요 정권에서 요직을 거쳐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장기간 집권하며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나 권위주의적인 통치와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고,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2. 선수 경력
하루야마 야스오는 도쿄고등사범학교 부속 중학교(현 쓰쿠바대학 부속 중학교·고등학교)와 구제 미토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했다. 미토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27년 제8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센터 포워드로 선발되어, 8월 27일 중화민국 대표와의 경기에서 첫 출전했다.
도쿄 제국대학 축구부에 입부하여 다케코시 시게마루, 다케우치 데이조, 테시마 시로 등과 함께 도쿄대 황금 시대를 구축했다. 1930년 5월 제9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왼쪽 윙으로 총 2경기에 출전했다.
2.1. 클럽 경력
하루야마 야스오는 1906년 4월 4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고등사범학교 부속 중학교(현 쓰쿠바대학 부속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구제 미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하여 축구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도쿄 제국 대학 LB 소속으로, 다케코시 시게마루, 다케우치 데이조, 테시마 시로 등과 함께 도쿄대 황금 시대를 구축했다. 1931년에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하루야마 야스오는 미토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27년 상하이에서 열린 제8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국가대표팀 센터 포워드로 선발되었다. 와세다 WMW를 모체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에 곤도 다이고로와 함께 '관계자'로서 국내 예선부터 참가했다.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이던 1930년 5월에는 제9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 왼쪽 윙으로 선발되어 총 2경기에 출전했다.
2.2.1. 국가대표팀 통계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전 | 골 |
| 1927 | 2 | 0 |
| 1928 | 0 | 0 |
| 1929 | 0 | 0 |
| 1930 | 2 | 0 |
| |4||0 |
하루야마 야스오는 미토 고등학교 학생 신분이던 1927년 8월, 상하이에서 열린 1927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8월 27일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8월 29일에는 필리핀을 상대로 국제 A매치 첫 승리를 거두었다.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 (도쿄)에도 출전하여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1930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모두 4경기에 출전했다.
2.2.2.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골 |
| 1927 | 2 | 0 |
| 1928 | 0 | 0 |
| 1929 | 0 | 0 |
| 1930 | 2 | 0 |
| | 4 || 0 |
하루야마는 미토 고등학교 학생 신분이던 1927년 8월, 상하이에서 열린 1927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8월 27일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8월 29일에는 필리핀을 상대로 경기를 치렀고, 일본은 이 경기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국제 A매치 첫 승리였다.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하여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1930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4경기에 출전했다.
3. 은퇴 후
1946년 닛칸 스포츠에 입사했다. 편집국 차장, 편집국장 대리를 거쳐 1952년 11월에 닛칸 스포츠 이사(겸 편집국장)로 취임했다. 그 후 판매 담당, 업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닛칸 스포츠 출판사의 대표 이사도 맡았다.
1987년 6월 17일, 도쿄도 도시마구에서 위장관 출혈(소화관 출혈)로 사망했다.
4. 기타
도쿄고등사범학교 부속 중학교(현 쓰쿠바대학 부속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구제 미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제8회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8월 27일 중화민국 대표와의 경기에서 첫 출전했다.
도쿄 제국대학 축구부에서 다케코시 시게마루, 다케우치 데이조, 테시마 시로 등과 함께 도쿄대 황금 시대를 구축했다. 1930년 5월 제9회 극동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총 2경기에 출전했다. 1931년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46년 닛칸 스포츠 신문사에 입사하여 편집국 차장, 편집국장 대리를 거쳐 1952년 11월 이사(겸 편집국장)로 취임했다. 이후 판매 담당, 업무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닛칸 스포츠 출판사 대표 이사도 맡았다.
1987년6월 17일 도쿄도도요시마구에서 소화관 출혈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