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론돈
1. 개요
하인츠 론돈은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이다. 1907년 본에서 태어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형 프리츠 론돈과 함께 초전도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1933년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런던 방정식을 개발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영국의 원자 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또한 3He-4He 희석 냉동법의 원리를 발명하여 극저온 냉각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1961년 왕립 학회 회원이 되었으며, 197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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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학회 석학회원 -
제임스 쿡
제임스 쿡은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장교로서, 세 차례의 태평양 탐험을 통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을 탐사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등 지리적 발견에 기여했으며 남극권에 진입하고 하와이 제도를 기록했으나,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충돌로 사망했다. -
왕립학회 석학회원 -
네빌 프랜시스 모트
네빌 프랜시스 모트는 영국의 물리학자로서 기체에서의 충돌, 고체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고 거니-모트 이론을 제시했으며, 197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유대계 독일인 -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언론인, 혁명가이자 공산주의 사상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등을 통해 역사적 유물론, 계급 투쟁, 자본주의 비판 이론을 체계화하여 사회주의 운동과 현대 사회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유대계 독일인 -
펠릭스 멘델스존
펠릭스 멘델스존은 1809년 독일에서 태어난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이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바흐의 음악 부활에 기여했으며,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했다. -
독일의 무신론자 -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알려진 19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도덕, 종교, 형이상학 비판,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 등의 개념 제시로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독일의 무신론자 -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언론인, 혁명가이자 공산주의 사상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등을 통해 역사적 유물론, 계급 투쟁, 자본주의 비판 이론을 체계화하여 사회주의 운동과 현대 사회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907년 본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본 대학교 수학 교수, 어머니는 섬유 제조업자의 딸이었다. 7세 연상의 형 프리츠 론돈 역시 유명한 물리학자였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뮌헨 대학교, 브로츠와프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반유대주의를 피해 형과 함께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형 프리츠 론돈과 함께 초전도체의 마이스너 효과를 연구하였고, 런던 형제는 이를 설명하는 런던 방정식을 발표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에는 영국의 원폭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51년에 3He-4He 희석 냉동법의 원리를 발명하여 10−3K에 도달하는 극저온 영역의 냉각 방법 중 하나를 제시했다.
1959년 사이먼 기념상을 수상했으며, 1961년 왕립 학회 펠로우로 선출되었다. 1970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07년 본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란츠 론돈(Franz London, 1863–1917)은 본 대학교의 수학 교수였고, 어머니 루이제 부르거는 섬유 제조업자의 딸이었다. 7세 연상의 형 프리츠 론돈 역시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었다. 하인츠는 형을 따라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실험 물리학자가 되었고, 저명한 초전도 물리학자 프란시스 사이먼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론돈은 여러 교육 기관에서 공부했다. 1926년/1927년 본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독일 하나우에 있는 헤라우스의 화학 공장에서 6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했다. 1929년 샤를로텐부르크 공과대학(현재 베를린 공과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했고, 1931년까지 뮌헨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33년 말,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저온 물리학자 프란츠 지몬의 지도하에 "초전도체에서 고주파 잔류 저항 발생 가능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반유대주의를 피해 형 프리츠 론돈과 함께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 체르웰 자작 프레데릭 린데만은 1933년 화학 회사 ICI에서 얻은 자금으로 옥스퍼드 대학교 클래런던 연구소에 프란시스 사이먼을 초대했고, 사이먼은 하인츠 론돈을 조수로 데려갔다. 옥스퍼드에서 형 프리츠와 함께 초전도체의 마이스너 효과를 연구하였고, 런던 방정식을 발표하였다.
2.2. 나치 독일 탈출과 영국 망명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반유대주의를 피해 형 프리츠 런던과 함께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 체르웰 자작 프레데릭 린데만은 1933년 화학 회사 ICI에서 얻은 자금으로 프란시스 사이먼을 옥스퍼드 대학교의 클래런던 연구소에 초대했고, 사이먼은 하인츠 론돈을 조수로 데려갔다. 옥스퍼드에서 형과 함께 초전도체의 마이스너 효과를 연구하였고, 런던 형제는 이를 설명하는 런던 방정식을 발표하였다.
1936년 난민 과학자들을 지원했던 자금이 고갈되면서, 하인츠는 브리스톨 대학교에 임명되었다. 1940년 민간인 적대 외국인으로 선언되어 맨 섬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영국 핵 프로그램에 협력하기 위해 석방되었다. 1942년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
2.3. 제2차 세계 대전과 핵 개발 참여
1934년 나치당의 권력 장악에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연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에는 영국의 원폭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40년 민간인 적대 외국인으로 선언되어 맨 섬 수용소에 수감되었지만, 이후 영국 핵 프로그램에 협력하기 위해 석방되었다. 1942년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
2.4. 사망
하인츠는 평생 담배를 많이 피웠고, 1970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무신론자였다.
3. 연구 업적
런던은 형 프리츠 런던과 함께 초전도성에 관해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클래런던 연구소에서 연구하면서 런던 방정식을 발견했다. 그는 또한 액체 헬륨을 사용하는 극저온 장치인 희석 냉장고의 발명가로도 알려져 있다.
3.1. 런던 방정식
형 프리츠 런던과 함께 초전도성에 관해 연구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클래런던 연구소에서 연구하면서 런던 방정식을 발견했다. 이 방정식은 마이스너 효과(그리고 초전도체의 특성)에 대한 최초의 설명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