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
1. 개요
한음은 위만조선 시기 정치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위만조선이 전한의 공격을 받자 노인, 왕협 등과 함께 우거왕을 버리고 전한에 항복했다. 한음은 낙랑 한씨 출신으로, 위만조선 지역의 유력 가문이었으며 연에서 이주해 온 한족으로 추정된다. 전한에 투항한 후 척저후에 봉해졌으나 자손 없이 사망했다. 그의 투항은 배신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 한글 | 한음 |
|---|---|
| 한자 | 韓陰 |
| 로마자 표기 | Han Eum |
| 기타 이름 | 한도 |
| 다른 한글 표기 | 한도 |
| 다른 한자 표기 | 韓陶 |
| 설명 | 한음(韓陰) 또는 한도(韓陶)는 고조선의 대신이다. |
|---|
| 활동 시기 | 우거왕 재위 기간 |
|---|---|
| 주요 활동 | 조선상 역임 |
| 말년 | 기원전 89년에 사망 |
| 본관 (추정) | 낙랑 |
|---|---|
| 기타 | 적자(荻苴)라는 인물이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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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재상 -
노인 (고조선)
노인은 고조선 말기 조선상의 직위에 있었던 인물로, 고조선-한 전쟁 중 전한에 투항하려다 사망했으며, 일각에서는 그의 성씨를 근거로 중국계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
고조선의 재상 -
역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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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귀족 -
양반
양반은 고려와 조선 시대의 지배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문반과 무반에서 유래하여 조선 시대에는 사족과 유사한 의미로 확대되었으며, 관료뿐 아니라 그 가족과 후손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유교적 가치관과 특권을 누렸으나, 갑오개혁으로 법적 특권은 소멸되었고 현대에는 사회적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
한국의 귀족 -
반복해
반복해는 고려 우왕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렸지만 역모를 꾀하다 처형당하고 재산이 몰수된 인물이다. -
기원전 89년 사망 -
유주 (학후)
유주는 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무고의 난에 연루되어 요참형에 처해진 학후로, 그의 죽음은 학의 폐지를 가져왔으며 한나라 시대 정치적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
기원전 89년 사망 -
유광 (노안왕)
유광은 전한 시대 제효왕의 아들로, 노왕을 40년간 지내며 젊은 시절에는 음악과 수레 타기를 즐겼으나 만년에는 재물을 탐하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2. 위만조선에서의 활동
한음은 위만조선의 정치를 담당했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버리고 항복했다.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와 무사를 분담했던 것으로 보았다. 또한 왕·한 두 성씨가 보이는데, 이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성씨인 한을 근거로,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
2.1. 위만조선의 정치 참여
한나라가 조선을 점령하는데 협조한 한음(韓陰) 혹은 한도(韓陶)는 발해 지역에 봉해져 적저후(荻苴侯)가 되었다. 우거왕의 아들 장항(長降)은 기후(幾侯)에, 왕협(王唊)은 평주후(平州侯)에, 이계상(尼谿相) 삼(參)은 홰청후(澅淸侯)에,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는 온양후(溫陽侯) 또는 날양후(涅陽侯)에 봉해졌다. 한도는 적지후에 봉해진 지 19년 후에 죽었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文事)와 무사(武事)를 분담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 왕·한 두 성씨가 보인다. 그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한"이라는 성씨로부터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하고 있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 전한이 위만조선을 토벌하기 위해 공격해오자,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남겨둔 채 항복했다.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이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
2.2. 한나라와의 전쟁과 투항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한음은 노인, 왕협 등과 함께 우거왕을 버리고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한음은 투항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19년 만에 자손 없이 사망했다.
3. 한나라 투항 이후
한음은 위만조선의 정치를 담당했던 인물로,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에 걸쳐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떠나 항복했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으로 각각 문무를 분담했으며, 이들 중 왕·한 두 성씨는 유력한 망명자 또는 그와 관련된 인물로 보았다.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성씨가 "한"인 점을 들어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자,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었다.
3.1. 한나라의 위만조선 점령 협조
한음은 우거왕의 아들 장항과 함께 한나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한나라의 위만조선 점령에 협조하여 발해 지역에 봉해져 적저후(荻苴侯)가 되었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 오자, 한음은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떠나 항복하였다.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
우거왕의 아들 장항은 기후(幾侯)에, 한음(韓陰) 혹은 한도(韓陶)는 적저후(荻苴侯)에, 왕협은 평주후(平州侯)에, 이계상 삼(參)은 홰청후(澅淸侯)에,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는 온양후(溫陽侯) 또는 날양후(涅陽侯)에 봉해졌다.
3.2. 적저후로서의 생애
한음은 우거왕의 아들 장항과 함께 한나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한나라는 한음이 조선 점령에 협조한 대가로 발해 지역에 봉분을 주고 적저후(荻苴侯)로 봉했다. 한음은 적저후에 봉해진 지 19년 만에 사망하였다. 후사가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
4. 출신 배경과 정체성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으로 각각 문무(文武)를 담당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왕·한 두 성씨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추정했다.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이 한씨라는 점을 들어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로 보았다. 한음은 위만조선에서 정치를 담당했다.
4.1. 중국계 망명자 후손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文事)와 무사(武事)를 분담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 왕·한 두 성씨가 보인다. 그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미카미 시즈오도 한음의 "한"이라는 성씨를 통해,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하고 있다。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
4.2. 낙랑 한씨(樂浪 韓氏)
韓陰중국어은 위만조선 지역의 유력 가문인 낙랑 한씨 출신이다. 낙랑 한씨는 연나라에서 이민해 온 한인으로, 위만조선 지역에서 대성(大姓)으로 불리며 호족, 대가(大家)로 성장하였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文事)와 무사(武事)를 분담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 왕, 한 두 성씨가 보이며, 이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된다고 언급했다. 미카미 시즈오도 한음의 '한'이라는 성씨로부터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
5. 평가
한음의 투항은 동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협력했다는 비판과, 당시 위만조선의 상황과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했을 때, 한음은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떠나 항복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망명해 온 인물이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로 추정된다. 항복 후 한음은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각각 문사와 무사를 담당했으며, 이들이 유력한 망명자이거나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했다.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한'이라는 성씨를 통해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
5.1. 배신과 협력의 엇갈린 시선
한음의 투항은 동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협력한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지만, 당시 위만조선의 상황과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한음은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남겨둔 채 항복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망명해 온 인물이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로 추정된다. 항복 후, 한음은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으로 각각 문사와 무사를 담당했으며, 그중 왕·한 두 성씨가 보이는데, 이들은 유력한 망명자이거나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했다.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한'이라는 성씨를 통해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