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준
1. 개요
한성준은 청주 한씨이며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무용가이다. 박순조에게 북을 배우고,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어 한국 고전무용을 전수했으며, 1941년 조선예술상 무용 부문상을 수상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한국 고전무용을 집대성하여 계승·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손녀는 한국무용가 한영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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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고수 -
고수 (판소리)
고수는 판소리 공연에서 소리꾼의 장단을 맞추는 사람을 의미하며,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활동했다. -
일제강점기의 국악인 -
박귀희
박귀희는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으며, 경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
일제강점기의 국악인 -
박록주
박록주는 동편제 판소리 거장들에게 판소리를 전수받아 《흥보가》에 능통했으며, 독특한 창법과 풍부한 성량, 고향 사투리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판소리 세계를 구축하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대한민국의 명창이다. -
일제강점기의 무용가 -
김천흥 (국악인)
김천흥은 해금 연주자이자 전통 무용가, 국악인으로, 종묘제례악과 처용무 예능 보유자였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아악과 궁중무 재현 및 전승에 힘썼고, 1964년 종묘제례악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무용가 -
한영숙 (무용가)
한영숙은 한국 무용의 대가 한성준의 손녀이자 승무와 학무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에 기여하고 한영숙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여러 국제 행사에서 한국 무용을 선보이며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대한민국의 무용가이다.
2. 생애
한성준은 청주를 본관으로 조선 충청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박순조에게 북을 배워 명성을 얻었으며,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통해 검무, 승무 등 한국 고전무용을 가르쳤고, 1940년 '조선무용발표회'를 개최했다. 1941년에는 일본에서 무용 부문상을 수상했으며, 만년에는 학춤에 뛰어났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한국 고전무용을 계승·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2.1. 무용가의 길
청주를 본관으로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박순조에게 북을 배워 명성이 높았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노래와 민속 무용에도 뛰어났다.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고 검무, 승무, 남무(男舞), 한량무 등 한국 고전무용을 후진들에게 전수했다. 1940년 '조선무용발표회'를 열었고, 1941년 일본 '모던 니혼 사'가 제정한 '조선예술상' 중 무용 부문상을 받았다. 만년에는 민속 무용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학춤에 뛰어났다.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흩어져 있거나 사장되어 가는 한국 고전무용을 집대성하여 계승·발전시킨 공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2.2. 업적
청주를 본관으로 하며 조선 충청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박순조의 제자가 되어 북을 배웠고, 북을 잘 쳐서 명성이 높았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노래와 민속 무용에도 뛰어났다.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고 검무, 승무, 남무(男舞), 한량무 등 한국 고전무용을 후진들에게 전수했다. 1940년 '조선무용발표회'를 열었고, 1941년 일본의 '모던 니혼 사'가 제정한 '조선예술상' 중 무용 부문상을 탔다. 만년에는 민속 무용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학춤에 뛰어났다.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흩어져 있거나 사장되어 가는 한국 고전무용을 집대성하여 계승·발전시킨 공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