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호조사
1. 개요
한중호조사는 1921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 내에서 결성된 단체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중국 국민당 광둥 정부와의 협력을 위해, 중국인들에게 한국 독립운동을 알리고 지지를 얻고자 한중호조사를 조직했다. 1921년 3월 창사에서 시작되어 상하이, 청두, 한커우 등지로 확대되었으며, 각 지역의 한중호조사는 선전, 통신, 경제, 교육, 영업 등의 부서를 두고 활동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한중호조총사가 상하이에 설립되어 각 지역 조직을 통합, 운영했으며, 9월에는 광둥 정부 주도로 한중협회가 조직되었다. 한중호조사와 한중협회는 한·중 친선, 상호 독립 협력, 한국 청년 유학 지원 등을 목표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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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 -
신간회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 민족 대단결을 목표로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을 지원하며 일제에 저항하다가 1931년 해산되었다. -
결사 -
청년학우회
청년학우회는 1909년 신민회 주도로 조직된 청년 계몽 단체로, 표면적으로는 수양 단체를 표방하며 개인의 역량 강화에 힘썼으나 실제로는 국권 회복을 위한 구국청년운동을 전개하다 1910년 한일 병합 후 해산되었다. -
1925년 폐지 -
파스큘라
파스큘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신경향파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사회주의 문학 단체로, "인생을 위한 예술"과 "현실과 투쟁하는 문학"을 표방하며 카프 결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한국 프로 문학 운동의 초기 형태를 제시했다. -
1925년 폐지 -
제2기 잉만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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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설립 -
애들레이드 공항
애들레이드 공항은 오스트레일리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에 위치한 국제 공항으로, 1921년 비행장으로 시작하여 시설 확장을 거쳐 국제선, 국내선, 화물 노선을 운영하며 노선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
1921년 설립 -
경복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는 1921년 개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중등교육기관 중 하나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고등학교이다.
2. 한중호조사의 설립 배경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중국 국민당의 광둥 정부와 북양군벌의 베이징 정부 모두와 외교 관계를 맺어야 했다. 특히 둥베이(만주) 지역 동포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베이징 군벌 정부와도 협력해야 했다.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광둥 정부와 공화제 정치 노선을 공유했지만, 공식적인 협력 이전에 민간 차원의 우호 관계를 먼저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21년 3월부터 8월까지 황영희, 조중구 등이 중국 남부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한국 독립운동을 홍보했다. 이는 광둥 정부와의 공식 협력에 앞서 민간 차원의 협력 관계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었다.
3. 각 지역 한중호조사의 결성과 활동
1921년 3월 17일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이우민, 황영희 등이 중국인 쥐페이지(具培基), 허민판(賀民範), 초우수오위(仇數魚), 타오이(陶毅) 등과 함께 한·중 양 국민의 친선을 위한 한중호조사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어 4월 상하이에서 신익희, 이유필과 중국인 저우첸추(周劒秋), 우산(吳山), 셴중준(沈仲俊) 등이, 청두에서 이기창 등을 중심으로 호조사가 결성되었고 한커우에서도 만들어졌다.
이들 지역조직은 대개 선전부, 통신부, 경제부, 교육부, 영업부를 두었고, 주요 활동은 그 지역의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독립운동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얻어 항일연합전선을 만드는 것이었다. 회원으로는 한국인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 혹은 일반 독립운동가들이었고, 중국 측은 학교 교원들이 많았다.
4. 한중호조총사의 설립과 의의
1921년 8월, 각 지역 한중호조사를 연합한 한중호조총사가 상하이에 설립되었다. 총사는 한·중 양측에서 각각 10명씩 평의원을 선출하여 운영하였다. 한국 측 평의원으로는 김홍서, 김규식, 이탁, 여운형, 조동호, 김문숙, 한진교, 윤현진, 서병호, 김철 등이 참여했다.
한중호조총사는 민간 차원에서 한중 연대를 강화하고, 중국 내 항일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활동은 중국 국민당 광둥 정부가 한중호조운동을 수용하여 9월 27일 한중협회(韓中協會)가 조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중호조총사의 주요 활동은 한·중 친선, 한·중 간의 상호 독립을 위한 협조, 한국 청년의 중국 일대와 구미 유학을 위한 여권 주선 등이었다.
5. 한중협회로의 발전
1921년 3월부터 8월까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황영희와 조중구를 외무부 선전원으로 중국 남부 주요 도시들에 파견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홍보하고 중국인들의 이해를 구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는 국민당 광둥 정부의 공식적인 협력을 얻기 전에 민간 차원의 협력 관계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21년 9월 27일 국민당 광둥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중협회(韓中協會)가 조직되었다. 한중협회는 한중 양국 간의 친선 도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상호 독립 지원, 한국 청년들의 중국 및 구미 유학을 위한 여권 주선 등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