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픽처스는 1984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로 설립되어 1990년대 다양한 영화를 제작, 배급했다. 초기에는 저예산 코미디 영화를 주로 제작했으나, 흥행 부진을 겪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였으며, 특히 1999년 개봉한 식스 센스의 성공으로 주목받았다. 2000년대 들어 저예산 장르 영화를 제작했으나, 2007년 디즈니의 사업 재편으로 영화 제작 및 배급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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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픽처스 - [회사]에 관한 문서
회사 정보
회사명
할리우드 픽처스
영문 명칭
Hollywood Pictures
유형
레이블
설립일
1989년 2월 1일
해산일
2007년 4월 27일
설립자
마이클 아이스너 제프리 카젠버그
본사 위치
캘리포니아주 버뱅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산업
영화
주요 인물
해당 정보 없음
제품
영화
직원 수
해당 정보 없음
모기업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자회사
할리우드 픽처스 홈 엔터테인먼트
각주
해당 정보 없음
2. 역사
할리우드 픽처스는 1984년 3월 30일에 설립되어[2] 1989년 2월 1일에 운영을 시작했다. 초대 사장은 메스트레스로, 터치스톤 픽처스에서 이 부서로 이동해 왔다. 설립 목적은 신진 경영진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장편 영화 제작 편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당시 영화 산업계는 MGM/UA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폐쇄, 로리마-텔레픽처스와 드 로렌티스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재정 문제 등으로 축소되는 상황이었고, 할리우드 픽처스는 이러한 틈새를 메우고자 했다. 터치스톤 픽처스와 할리우드 픽처스는 마케팅 및 배급팀을 공유했으며,[3] 1991년까지 연간 12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실버 스크린 파트너스 IV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계획이었다.[4] 첫 작품은 1990년 7월 18일에 개봉한 ''아라크노포비아''였다.[1]
1990년 10월 23일,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터치우드 퍼시픽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실버 스크린 파트너스를 대체하는 영화 스튜디오의 주요 자금 조달원으로 삼았다.[5]
1991년 1월 18일,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와의 계약이 해지된 후, 자신들의 제작사를 할리우드 픽처스로 이전했다.[6]
초기 6년 동안 할리우드 픽처스는 주로 저예산 코미디 영화를 제작했다. ''홀리 매트리모니'', ''애스펜 익스트림(Aspen Extreme)'',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7] ''스윙 키즈'', ''블레임 잇 온 더 벨보이(Blame It on the Bellboy)'', ''보른 예스터데이'', ''길티 애즈 신(Guilty as Sin)'' 등은 흥행에 실패했다. ''요람을 흔드는 손''만이 유일한 흥행 성공작이었고, ''조이 럭 클럽''은 비평적으로는 성공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결국 1994년 4월 26일, 메스트레스는 실적 부진으로 사임하고, 스튜디오와 장기간 제작 계약을 맺었다.[8]
1994년 6월 27일, 마이클 라인톤이 하이페리온 북스를 포함한 디즈니 출판 그룹을 감독하던 자리에서 물러나 할리우드 픽처스의 새 사장으로 임명되었다.[9] 메스트레스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 사라 제시카 파커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마이애미 랩소디(Miami Rhapsody)'', 미셸 파이퍼 주연의 ''위험한 마음(Dangerous Minds)'' 등 잠재적 흥행작들을 라인톤에게 넘겨주었다.[7] 1997년, 라인톤은 펭귄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10]
라인톤의 이직 후, 할리우드 픽처스는 잠시 제작을 중단하고 카라반 픽처스, 시너지 픽처스 등 제삼자 영화 배급을 담당했다. 제작 라인은 터치스톤 픽처스로 이관되었지만, 월트 디즈니 픽처스 사장이었던 데이비드 포겔이 다시 영화 제작을 맡았다.[11] 1998년에는 할리우드 픽처스를 포함한 세 부서(터치스톤 픽처스, 월트 디즈니 픽처스)가 부에나 비스타 모션 픽처 그룹으로 통합되었고, ''바이센테니얼 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 할리우드 픽처스의 개발 프로젝트들은 터치스톤으로 이관되었다.[12] 2001년까지 할리우드 픽처스는 80편의 영화를 제작했지만, 운영은 단계적으로 축소되었고 경영진은 월트 디즈니 픽처스와 통합되었다.[1]
5년간의 휴면기 이후, 할리우드 픽처스는 저예산 장르 영화 제작을 위해 재가동되었다.[1] ''스테이 얼라이브(Stay Alive)''(2006년 3월 24일 개봉),[1] ''프라이멀''(2007년 1월 12일 개봉), ''인비저블''(2007년 4월 27일 개봉) 등 두 편의 공포 영화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배급했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 개봉 후, 디즈니는 할리우드 픽처스 레이블을 통한 영화 제작 및 배급을 중단하고, 디즈니, 터치스톤 픽처스, ABC, ESPN, 픽사 등 핵심 브랜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3]
2. 1. 설립 배경 (1984-1989)
할리우드 픽처스는 1984년 3월 30일에 설립[2]되어 1989년 2월 1일에 운영을 시작했다. 초대 사장은 Ricardo Mestres였으며, 그는 The Walt Disney Company의 Touchstone Pictures에서 자리를 옮겨 왔다. 이 부서는 떠오르는 임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디즈니의 장편 영화 제작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는 MGM/UA의 United Artists 폐쇄 및 Lorimar-Telepictures, De Laurentiis Entertainment Group의 재정 문제 등 업계의 축소로 인해 발생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터치스톤과 할리우드 픽처스는 같은 마케팅 및 배급팀을 공유했다.[3] 할리우드 픽처스는 1991년까지 연간 12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Silver Screen Partners IV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4] 이 회사의 첫 번째 작품은 1990년 7월 18일에 개봉한 ''아라크노포비아''였다.[1]
1990년 10월 23일, Walt Disney Company는 영화 스튜디오의 주요 자금 조달원으로 Silver Screen Partners 시리즈를 대체하기 위해 Touchwood Pacific Partners를 설립했다.[5]
할리우드 픽처스는 1989년 2월 1일에 운영을 시작했으며, 메스트레스가 초대 사장으로 임명되었다.[2] 이 부서는 신진 임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디즈니의 장편 영화 제작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설립되었다.[3] 할리우드 픽처스는 터치스톤 픽처스와 마케팅 및 배급팀을 공유했다.[3] 1991년까지 연간 12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실버 스크린 파트너스 IV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4] 이 회사의 첫 번째 작품은 1990년 7월 18일에 개봉한 ''아라크노포비아''였다.[1]
1990년 10월 23일,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터치우드 퍼시픽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실버 스크린 파트너십 시리즈를 대체했다.[5]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와의 계약이 해지된 후, 1991년 1월 18일 자신의 제작사를 할리우드 픽처스로 이전했다.[6]
이 부서는 처음 6년 동안 주로 저예산 코미디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중에는 ''홀리 매트리모니'', ''애스펜 익스트림(Aspen Extreme)'',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7] ''스윙 키즈'', ''블레임 잇 온 더 벨보이(Blame It on the Bellboy)'', ''보른 예스터데이'', ''길티 애즈 신(Guilty as Sin)'' 등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도 있었다. ''요람을 흔드는 손'' 하나의 흥행 성공작과, 흥행 기록은 저조했지만 비평적으로 성공한 ''조이 럭 클럽''을 제작했을 뿐, 전반적으로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1994년 4월 26일, 메스트레스는 부서의 부진한 성과로 인해 사임하게 되었고, 스튜디오와 장기간 제작 계약을 맺었다.[8]
2. 3. 메스트레스 사임과 변화 (1994-1997)
1994년 4월 26일, 리카르도 메스트레스는 할리우드 픽처스의 부진한 실적 때문에 사임했다. 그는 스튜디오와 장기간 제작 계약을 맺었다.[8]
1994년 6월 27일, 마이클 라인톤(Michael Lynton)이 새로운 부서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디즈니 출판 그룹의 수석 부사장으로 하이페리온 북스를 포함한 국내 출판 부서를 감독했었다.[9] 메스트레스는 라인톤에게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 사라 제시카 파커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출연한 코미디 ''마이애미 랩소디(Miami Rhapsody)'', 그리고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위험한 마음(Dangerous Minds)'' 등 몇몇 잠재적인 흥행작을 남겼다.[7]
1990년 10월 23일,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영화 스튜디오의 주요 자금 조달원이었던 실버 스크린 파트너십 시리즈를 대체하기 위해 터치우드 퍼시픽 파트너스(Touchwood Pacific Partners)를 설립했다.[5]
파라마운트 픽처스와의 계약이 해지된 후, 돈 심슨(Don Simpson)과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는 1991년 1월 18일 자신의 제작사를 할리우드 픽처스로 이전했다.[6]
이 부서는 처음 6년 동안 주로 저예산 코미디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중에는 ''홀리 매트리모니'', ''애스펜 익스트림(Aspen Extreme)'',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7] ''스윙 키즈'', ''블레임 잇 온 더 벨보이(Blame It on the Bellboy)'', ''보른 예스터데이'', ''길티 애즈 신(Guilty as Sin)'' 등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도 있었다. 이 부서는 ''요람을 흔드는 손'' 하나의 흥행 성공작과, 흥행 기록은 저조했지만 비평적으로 성공한 ''조이 럭 클럽''을 제작했을 뿐, 전반적으로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1994년 4월 26일, 메스트레스는 부서의 부진한 성과로 인해 사임했고, 스튜디오와 장기간 제작 계약을 맺었다.[8]
1994년 6월 27일, 디즈니 출판 그룹의 수석 부사장으로 국내 출판 부서(하이페리온 북스 포함)를 감독했던 마이클 라인톤(Michael Lynton)이 새로운 부서 사장으로 임명되었다.[9] 메스트레스는 라인톤에게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 사라 제시카 파커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출연한 코미디 ''마이애미 랩소디(Miami Rhapsody)'', 그리고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위험한 마음(Dangerous Minds)'' 등 몇몇 잠재적인 히트작을 남겼다.[7] 1997년, 라인톤은 펭귄 그룹(Penguin Group)으로 자리를 옮겼다.[10]
라인톤이 떠난 후, 할리우드 픽처스는 잠시 제작 대신 배급만 담당하는 기업으로 전환되어 제삼자의 영화와 카라반 픽처스, 시너지 픽처스의 영화를 배급했다. 제작 라인은 터치스톤 픽처스로 이관되었지만, 월트 디즈니 픽처스 사장이었던 데이비드 포겔이 다시 영화 제작을 맡았다.[11] 1998년, 이 세 부서는 부에나 비스타 모션 픽처 그룹으로 이관되었고, ''바이센테니얼 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 할리우드 픽처스의 개발 프로젝트들은 터치스톤으로 이관되었다.[12] 2001년까지 할리우드 픽처스는 80편의 영화를 제작했지만, 운영이 단계적으로 축소되었고, 경영진은 주력 스튜디오인 월트 디즈니 픽처스와 통합되었다.[1]
5년간 휴면 상태였던 이 브랜드는 저예산 장르 영화를 위해 재가동되었다.[1] 재개발된 할리우드 픽처스가 배급한 영화는 ''스테이 얼라이브(Stay Alive)''(2006년 3월 24일 개봉),[1] ''프라이멀''(2007년 1월 12일 개봉), 그리고 ''인비저블''(2007년 4월 27일 개봉) 등 두 편의 공포 영화와 한 편의 스릴러 영화였다. 마지막 작품 개봉 후, 디즈니는 회사의 핵심 브랜드인 디즈니, 터치스톤, ABC, ESPN, 픽사에 집중한다고 발표하면서 할리우드 픽처스 레이블로 영화 제작 및 배급을 중단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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