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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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라반 픽처스는 로저 번바움과 조 로스가 공동 설립한 영화 제작사이다. 1993년 설립되어, 1999년까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에서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담당했다. 조 로스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조나단 글릭만은 인턴으로 시작하여 사장까지 올랐다. 마이클 아이스너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CEO로서 카라반 픽처스의 경영에 깊이 관여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총사》, 《앤지》, 《아이 러브 트러블》, 《네고시에이터》, 《6 데이즈 7 나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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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 픽처스 - [회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회사 이름 | 캐러밴 픽처스 |
영문 회사 이름 | Caravan Pictures, Inc. |
종류 | 자회사 |
설립일 | 1992년 11월 17일 |
폐업일 | 1999년 |
후신 |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 |
본사 위치 |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
산업 | 엔터테인먼트 |
주요 인물 | 로저 번바움 (회장, CEO) 조너선 글릭먼 (사장) |
제품 | 영화 |
직원 수 | 7명 (1997년) |
모회사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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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카라반 픽처스는 1992년 로저 번바움과 조 로스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내 제작사로 설립했다. 당시 디즈니 스튜디오는 연간 50~60편에 달하는 영화 제작 및 배급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카라반 픽처스는 이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카라반 픽처스는 5년 동안 25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계약을 맺었으며, 편당 최대 3000만달러의 제작비 승인 권한과 연간 300만달러의 간접비 예산을 지원받았다. 초기에는 연간 5~7편의 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10]
카라반 픽처스의 설립과 운영에는 여러 주요 인물들이 관여했다. 공동 설립자인 로저 번바움[1][10]과 조 로스[1][10]는 1992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내에서 회사를 시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에는 두 사람이 함께 회사를 이끌었으나, 1994년 조 로스가 디즈니 스튜디오 대표로 자리를 옮기면서 로저 번바움이 회사를 단독으로 운영하게 되었다.[6][14] 이후 조나단 글릭먼은 인턴으로 시작하여 회사 사장까지 승진했으며,[3][12][16] 조 로스의 친구였던 폭스 임원 출신 릴리 캐서린 엘리스도 회사 운영에 참여했다.[4] 또한, 당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는 조 로스의 디즈니 스튜디오 대표 영입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카라반 픽처스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5][15]
1993년 크리스마스에 첫 영화인 ''삼총사''를 개봉했으며, 1994년에는 10편의 영화 개봉을 목표로 하여 계약 기간을 5년에서 2년 반으로 단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다.[1][10] 또한, 이전에 20세기 폭스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제작 검토 단계에 있던 ''앤지, 아이라고 말해''(''Angie, I Says'')의 영화화 권리를 확보하기도 했다.[2][11] 1993년에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피터 스타크 프로그램을 졸업한 조나단 글릭먼이 인턴으로 회사에 합류했다.[3][12] 1994년 초에는 로스의 가까운 동료였던 폭스 임원 출신 릴리 캐서린 엘리스가 합류했다.[4]
그러나 초기에 제작된 영화 중 다수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어진 네 편의 영화 중 세 편이 흥행에 실패했으며, 로스는 ''아이 러브 트러블''의 흥행이 부진할 경우 1500만달러에 달하는 예산 초과분을 개인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영화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5][13]
1994년 8월 24일, 조 로스는 카라반 픽처스를 번바움에게 맡기고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6][14] 이는 당시 디즈니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가 제프리 카젠버그의 후임으로 로스를 강력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스너는 로스의 흥행 실패에 따른 부채를 탕감해주고, 계약상 남아있던 미제작 영화 21편에 대한 보상으로 4000만달러를 지급했다.[5][15]
카라반 픽처스는 1997년 9월(또는 1998년 9월[16]), 제작 편수 확대와 TV 영화 제작 강화를 목표로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조나단 글릭먼이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번바움은 다른 임원들에게도 공식적인 직함을 부여하기 시작했다.[3][16]
1998년 8월, 로저 번바움은 조 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카라반 픽처스를 떠나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를 공동 설립했다.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는 모건 크릭 프로덕션스의 전 부회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게리 바버와 함께 설립되었으며, 디즈니는 이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고 5년간의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디즈니가 연간 영화 제작 편수를 줄이던 상황에서, 로스는 번바움에게 뉴 리젠시 프로덕션스와 같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제작사를 설립할 것을 권유했다. 카라반 픽처스는 남아있던 세 편의 영화를 개봉한 후 활동을 중단했다. 마지막으로 제작한 작품은 1999년에 개봉한 월트 디즈니 픽처스의 영화 ''개구쟁이 형사 가제트''였다. 이후 카라반 픽처스의 영화 프로젝트 목록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초과 비용에 대비한 초기 자금 10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 가량은 디즈니를 통해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로 이전되었다.[7][17]
3. 주요 인물
3. 1. 로저 번바움
로저 번바움은 조 로스와 함께 1992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내 제작사로 카라반 픽처스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1][10] 그는 회사의 초기 운영 및 영화 제작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1994년 8월 24일, 공동 설립자였던 조 로스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책임자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로저 번바움이 카라반 픽처스의 단독 운영을 맡게 되었다.[6][14] 그의 지휘 아래 회사는 1997년 9월, 제작 편수 증대와 TV 영화 분야로의 확장을 목표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조나단 글릭먼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내부적인 변화가 있었다.[3][16]
1998년 8월, 번바움은 카라반 픽처스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는 조 로스의 제안과 당시 디즈니의 연간 영화 제작 편수 감축 정책이라는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7][17] 그는 모건 크릭 프로덕션스의 부회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인 게리 바버와 손잡고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디즈니는 이 신생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고 5년간의 배급 계약을 체결하며 번바움의 새로운 영화 사업을 지원했다.[7][17] 이를 통해 번바움은 카라반 픽처스 이후에도 영화 제작자로서의 입지를 이어갔다.
3. 2. 조 로스
조 로스는 로저 빈바움과 함께 1992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산하 제작사로 카라반 픽처스를 공동 설립했다.[1][10] 설립 목적은 당시 연간 50~60편에 달하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영화 제작 및 배급 물량을 소화하기 위함이었다.[1] 카라반 픽처스는 5년간 25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편당 최대 3000만달러의 제작비 승인 권한과 연간 300만달러의 간접비 예산을 지원받았다.[1]
회사는 1993년 크리스마스에 첫 영화인 삼총사를 개봉했다.[1][10] 또한 이전에 20세기 폭스에서 제작 검토 중이던 ''앤지''의 영화화 권리를 확보하기도 했다.[2][11] 1993년에는 USC의 피터 스타크 프로그램 출신인 조나단 글릭먼이 인턴으로 합류했으며,[3][12] 1994년 초에는 로스의 가까운 친구였던 폭스 임원 릴리 캐서린 엘리스가 회사에 합류했다.[4]
그러나 이후 제작한 네 편의 영화 중 세 편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로스는 영화 ''나는 트러블을 사랑해''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발생한 예산 초과분 1500만달러를 개인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영화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5][13]
1994년 8월 24일, 조 로스는 카라반 픽처스를 떠나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대표직으로 자리를 옮겼고, 빈바움이 카라반 픽처스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6][14] 당시 디즈니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는 제프리 카젠버그의 후임으로 로스를 강력히 원했기 때문에, 로스의 흥행 실패에 따른 부채를 탕감해주고 계약상 남은 미제작 영화 21편에 대한 보상금으로 4000만달러를 지급했다.[5][15]
이후 1998년, 로스는 카라반 픽처스를 떠나 새로운 회사를 구상하던 로저 빈바움에게 뉴 리젠시 프로덕션스와 같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제작사 설립을 권유했고, 이는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 설립으로 이어졌다.[7][17]
3. 3. 조나단 글릭만
1993년 USC의 피터 스타크 프로그램 출신인 조나단 글릭먼은 카라반 픽처스에 인턴으로 합류했다.[3] 이후 1997년 9월, 카라반 픽처스가 제작 편수를 늘리고 TV 영화 제작을 확대하기 위해 구조 조정을 단행했을 때 사장으로 승진했다.[3]
3. 4. 마이클 아이스너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는 카라반 픽처스의 운영 및 인사에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특히 조 로스가 카라반 픽처스를 떠나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대표로 옮기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94년 8월 24일, 조 로스는 카라반 픽처스를 로저 빈바움에게 맡기고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6] 이는 당시 디즈니 CEO였던 아이스너가 기존의 제프리 카젠버그를 로스로 교체하기를 강력히 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아이스너는 로스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로스가 흥행 실패 시 책임지기로 했던 영화 ''나는 트러블을 사랑해''의 제작비 초과분(1500만달러)을 포함한 부채를 탕감해주었다. 또한, 로스에게 카라반 픽처스와의 계약에 따라 제작되지 않은 영화 21편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4000만달러를 지급했다.[5] 이러한 아이스너의 결정은 디즈니 내에서 그의 영향력과 경영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4. 주요 작품 목록
카라반 픽처스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산하에서 총 2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10] 주로 월트 디즈니 픽처스, 할리우드 픽처스, 터치스톤 픽처스 등 디즈니 계열 배급사를 통해 작품을 배급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였다. 첫 작품은 1993년 개봉한 삼총사이고[18], 마지막 작품은 1999년 개봉한 형사 가제트이다.[17] 카라반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들의 상세 목록과 정보(개봉일, 협력 제작사, 제작비, 흥행 수입 등)는 아래 연도별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1. 1993년
카라반 픽처스의 첫 제작 영화는 1993년 11월 12일에 개봉한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eng)이다.[18] 이 영화는 월트 디즈니 픽처스가 배급했으며, 존 아브넷과 조던 케르너의 아브넷-케르너 프로덕션과 공동으로 제작되었다. 제작비는 1700만달러가 투입되었고, 흥행 수입은 5389만달러를 기록했다.4. 2.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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