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성산산성
1. 개요
함안 성산산성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한 산성으로, 가야 시대와 신라 시대에 걸쳐 사용되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가야고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라가야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발굴 조사 결과 신라 시대의 유물인 기와, 토기 조각, 목제품 등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동문터 안쪽에서 발견된 245점의 목간은 신라 시대의 사회상과 행정 체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산성 아래 가야 무덤들이 발견되어 가야와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성산산성은 신라 시대의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발굴된 유물을 통해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이름 | 함안 성산산성 |
|---|---|
| 로마자 표기 | Haman Seongsansanseong Fortress |
| 유형 | 사적 |
| 지정 번호 | 67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번지 |
| 시대 | 삼국시대 |
| 면적 | 227,821m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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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은 고려 시대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던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석성으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제1차 진주성 전투와 많은 민관군이 순절한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지니며 현재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등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을 포함하여 관리되고 있다.
2. 역사
함안 성산산성은 함안의 서북쪽에 있는 성산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둘레는 약 1.4km이다. 조남산성(造南山城)이라고도 불린다.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산성의 형식은 삼국시대 유형을 따르고 있다. 성산은 북쪽에서 보면 독립된 구릉처럼 보이며,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지맥을 제외하면 나머지 3면은 모두 경사가 급하다. 성 안은 약간 오목한 평탄 지형으로,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동쪽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성 밖에서 작은 계곡을 이루며, 이 부근에 문터가 있다. 서쪽 성벽에도 문터로 보이는 곳이 남아 있고, 그 밖의 뚜렷한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2.1. 가야 시대
『함안읍지』에 따르면 이 산성은 가야국의 옛터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성의 형식은 삼국시대 유형을 따르고 있다. 산 아래 북쪽 낮은 언덕에는 가야의 무덤들이 있어, 무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가야 유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2.2. 신라 시대
발굴 조사 결과, 함안 성산산성에서는 신라 시대의 기와, 토기 조각, 목제품, 과일 씨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동문터 안쪽에서 출토된 245점의 목간은 신라 시대의 지명, 관등, 물품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과 행정 체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 목간들은 길이 6.5-23.7cm, 너비 1.6-4.4cm의 나무쪽에 먹으로 씌어졌으며, 신라 시대의 지명이나 관등과 함께 피(稗)와 소금(鹽)과 같은 물건 이름도 보인다. 이 목간의 성격을 두고 성을 지키던 신라인의 신분 표시로 보는 견해와 다른 곳에서 성산산성으로 반입된 물건의 꼬리표로 보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지만, 문자기록이 부족한 우리 고대사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발굴 결과는 성산산성이 신라 시대에도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음을 시사한다.
3. 구조
성산산성은 성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약 1.4km이다. 함안읍지에 의하면 이 산성은 가야국의 옛터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성의 형식이 삼국시대 유형을 따르고 있다. 산 아래 북쪽 낮은 언덕에는 가야의 무덤들이 있어 무덤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야 유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성산은 북쪽에서 보면 독립된 구릉처럼 보이며, 서남쪽으로 계속되는 구릉지맥을 빼면 나머지 3면이 모두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성 안의 형태는 약간 오목하게 생긴 평탄한 지형인데,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동쪽 제일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이 성 밖으로 작은 계곡을 만들고 있다. 이 부근에 문터가 있고 서쪽 성벽에도 문터로 보이는 곳이 남아 있으며 그 밖에 뚜렷한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4.1. 신라 시대 유물
여지도서(與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에는 가야고성(加倻古城)으로 기록되었으나, 발굴조사에서는 주로 신라 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 기와, 토기 조각, 목제품, 과일 씨 등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동문터 안쪽에서 출토된 245점의 목간은 산성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목간은 길이 6.5cm-23.7cm, 너비 1.6cm-4.4cm의 나무쪽에 먹으로 쓰였으며, 신라 시대의 지명, 관등, 물품명(피(稗), 소금(鹽) 등)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