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자
1. 개요
현송자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의 딸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사교계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아버지 현영운은 개화파 관료였고, 어머니 배정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로 알려진 배정자이다. 현송자는 윤치오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이후 이철과 재혼하여 이철의 음악 사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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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출생 -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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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출생 -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의 대장성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총리대신 재임 시절 '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하여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미일 관계 강화와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등 외교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
일제강점기 사람 -
서명원
서명원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종손으로, 교육학자이자 대학교수, 교육행정 관료로서 서울대학교 교수, 문교부 차관, 여러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문교부 장관, 학술회 회원,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 사람 -
임화수
임화수는 이정재와 함께 동대문파의 2인자이자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영화계 대부로 활동하며 반공예술인단을 조직하여 자유당 정권의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정치 테러에 개입했으나 4.19 혁명 이후 몰락하여 5.16 군사정변 이후 사형당한 정치 깡패이자 영화 제작자이다. -
연주 현씨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연주 현씨 -
현오석
현오석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재정경제부, 세계은행, 대통령비서실, 한국개발연구원, 기획재정부 등 주요 기관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 정책 수립에 기여한 경제관료이자 학자이며, 녹조근정훈장을 수훈받았으나 개인정보 유출 관련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생애
2.1. 출생과 가정 배경
아버지 현영운은 1883년에 일본 게이오의숙에 입학하여 일찍 개화 문명을 접했다. 귀국하여 1885년에 신문을 발행하는 근대 기관인 박문국 주사에 임명된 이래, 일본과 가까운 개화파 관료로 활동하였다.
이후 능통한 일본어 실력을 기반으로 외아문 주사와 법부 법률기초위원, 궁내부 참여관, 시종원 시종, 궁내부 번역관과 지방의 군수, 대한제국 육군 참장을 지냈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로 알려진 여성 밀정 배정자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대한제국 고종의 총애를 받은 순헌황귀비 엄씨의 후원을 받았으며, 이토의 권력을 업은 부인 배정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초고속 승진을 했다. 1908년의 한 언론 보도에서는 현영운을 가리켜 배정자의 위세로 "혁혁하던 세력가"라고 표현했다. 아버지 현영운과 어머니 배정자는 1895년에 결혼했으나 곧 이혼하였다.
2.2. 학창 시절
현송자는 경성에서 심상소학교를 졸업하고 제일고등여학교를 진학했다. 20세에 제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메지로여자대학(目自女大)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그녀는 당시 여성 중 인텔리로, 당시 기사에 의하면 "이와 가티 그의 학창시대는 비교적 순조로 그리고 녀자로서 배울만한 공부를 최고학부까지 마쳤다." 한다.
2.3. 윤치오와의 결혼과 이혼
이철은 연희전문학교 입학 직전에 같은 교회 신도로 현송자를 처음 만났다. 현송자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의 딸이자, 순종의 황후를 배출한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윤씨 일족의 부인이었고, 빼어난 미모와 일본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당시 사교계 유명 인사이기도 했다.
4년 연상에 남편까지 있는 현송자와 이철이 서로 이성으로 느끼게 된 과정은 세세히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은 1930년 들어 결국 세간에 알려지고 말았다. 이철과 현송자는 모두 교회와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현송자는 트로이카 라는 술집을 운영하다가 이철과 재혼한다. 이후 새 남편이 된 이철의 음악 사업을 적극 도왔다. 현송자는 이철이 그동안 쌓아온 음악 관련 경력을 고려해, 일본 유학 시절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그가 음반회사 지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주선했고, 그 결과 이철의 오케레코드가 1933년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2.4. 이철과의 만남과 재혼
이철은 연희전문학교 입학 직전에 같은 교회 신도로 현송자를 처음 만났다. 현송자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의 딸이자, 순종의 황후를 배출한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윤씨 일족의 부인이었고, 빼어난 미모와 일본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당시 사교계 유명 인사이기도 했다.
4년 연상에 남편까지 있는 현송자와 이철이 서로 이성으로 느끼게 된 과정은 세세히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은 1930년 들어 결국 세간에 알려지고 말았다. 이철과 현송자는 모두 교회와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후 현송자는 트로이카 라는 술집을 운영하다가 이철과 재혼한다. 새 남편이 된 이철의 음악 사업을 적극 도왔는데, 현송자는 이철이 그동안 쌓아온 음악 관련 경력을 고려해, 일본 유학 시절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그가 음반회사 지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주선했고, 그 결과 이철의 오케레코드가 1933년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3. 가족 관계
현송자의 아버지는 현영운(1868년 음력 6월 11일 ~ ?)이고, 어머니는 배정자(1870년 2월 23일 ~ 1952년 2월 27일)이다. 언니가 1명 있었고, 계모는 이씨(李氏)이다. 첫 남편은 윤치오(1869년 8월 5일 ~ 1949년 12월 2일)이며, 윤치오와의 사이에서 아들 윤영선(1922년 11월 11일 - ), 아들 윤대선(1929년 2월 23일 - 1939년 11월 30일), 딸 윤효선(1925년 4월 7일 - )을 두었다. 두번째 남편은 이철(1903년 6월 9일 ~ 1944년)이며, 이철과의 사이에서는 아들 이영호와 딸 1명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