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익
1. 개요
호림익은 청나라 말기의 무관으로, 태평천국 운동 진압에 기여했다. 1836년 진사가 되었고, 한림원 편수를 거쳐 지방관으로 근무하며 묘족의 봉기와 이원발의 난을 진압했다. 이후 태평천국군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호북순무를 역임했으나, 삼하 전투에서 패배하며 병력을 후퇴해야 했다. 1861년 태평천국군을 구원하려다 무창에서 사망했으며,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과 함께 청나라 중흥의 명신으로 불렸다. 저서로는 《독사병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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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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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청나라 사람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청나라 사람 -
원매 (청나라)
원매는 청나라 중기의 시인이자 미식가, 수필가로 자연의 성정을 중시하는 성령설을 주창하여 새로운 시풍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은거 생활을 하며 수원식단, 자불어, 수원시화 등 다양한 저술을 남기고 여성 문학을 옹호하며 여제자들을 길러내는 등 진보적이면서도 데카당스적인 면모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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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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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생애
1836년 진사가 되고, 1838년 한림원 편수가 되는 등 초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귀주성 안순, 진원의 지부를 거쳐 묘족 봉기 진압에 참여했다. 1854년 귀동도(貴東道)가 되어 태평천국군과 전투를 벌였고, 1856년에는 무창 탈환에 성공하여 호북순무에 임명되었다. 1858년 구강을 함락하고 안경을 포위했으나, 삼하 전투에서 이속빈 부대가 패배하면서 병력을 후퇴시켰다. 1861년, 증국전이 안경을 함락시켰으나, 호림익은 같은 달 무창에서 병사했다.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과 함께 청나라 ‘중흥의 명신’으로 불렸으며,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저서로는 《독사병력》(讀史兵略)이 있다.
2.1. 초기 관직 생활
1836년 진사가 되었고, 1838년 한림원 편수가 되었다. 그 후, 귀주성 안순, 진원의 지부가 되어, 묘족의 봉기와 호남성 이원발의 난을 진압했다. 호남 순무 장량기, 낙병장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귀주에 머물렀다.
2.2. 태평천국 운동 진압
1854년 귀동도(貴東道)가 되어 귀주 향용 천 명을 이끌고 호남성, 강서성에서 태평천국군과 전투를 벌였다. 1855년 호북 포정사에 임명되었으나, 태평천국이 다시 무창을 함락시키자 증국번과 함께 탈환에 나섰다. 1856년 무창 탈환에 성공하여 그 공으로 호북순무에 임명되었다.
1857년 황주에 침입한 진옥성 군을 격파했다. 1858년 구강을 함락하고 안경을 포위했으나, 11월 이속빈 부대가 삼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병력을 후퇴시켰다.
이듬해 증국번과 함께 군사를 나누어 안휘성을 침공했다. 1861년 봄, 태평천국군이 호북으로 진입하자 군대를 이끌고 구원에 나섰고, 그 사이 증국전이 안경을 공격하여 9월에 함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