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하
1. 개요
홍성하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제학자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한국민주당에서 활동하며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을 지냈다.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민주국민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후 민주당과의 갈등으로 탈당했으며, 재무부 자문기관인 재정금융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78년 사망했다.
-
일제강점기의 축구 감독 -
현정주
-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축구 감독 -
조민국
조민국은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럭키금성 황소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2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지도자로서 현대미포조선 감독, 울산 현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축구 감독 -
김성남 (축구인)
-
군정기 -
이범승
이범승은 충청남도 연기군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교토 제국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도서관 설립 운동을 펼쳤으며 해방 후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과 참의원을 지냈으나, 2002년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군정기 -
김대우 (1900년)
김대우는 일제강점기 관료이며 해방 및 정부 수립 이후의 활동 기록은 미상이다.
2. 생애
2.1. 생애 초반 (1898년 ~ 1945년)
1898년 1월 15일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주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20년경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럭비부, 축구부, 농구부 감독을 맡는 등 체육 활동을 장려했다.
1929년 1월 1일부터 2월 9일까지 조선일보에 '구미경제십년사(歐米經濟十年史)'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세계 경제 상황을 분석했다. 1929년 10월 중등교축구대회 본부위원을 맡았다. 1933년 조선농구협회 창립 이사로 선출되었다.
2.2. 광복 이후 정치 활동 (1945년 ~ 1978년)
1945년 12월 30일 평소 친분이 있었던 송진우가 암살되자, 그의 장의위원을 지냈다. 1946년경 한국민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 한국민주당 소속으로 전라남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광산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같은 해 이승만 당시 국회의장이 대통령에 선출되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서울 동대문구 갑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9년 1월 1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1949년 2월 10일 민주국민당 창당에 참여했다.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대통령 관저에서 개최된 전시경제(戰時經濟)에 관한 좌담회에 참석, 정부 요인들과 경제 정책을 논의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관여했으나, 1957년 8월 민주당과의 갈등으로 탈당했다.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59년 재무부 자문기관인 재정금융위원에 선임되었다.
1978년 4월 30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3. 약력
일본 주오 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재단법인 보성전문학교 평의원, 경성제일프린트사 경영, 한국민주당 중앙집행위원, 중앙상무위원, 한국민주당 노농부장, 청년부장, 중앙노무조정위원, 비상국민회의 대의원,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특별경제전문위원, 민족통일총본부 선전부장,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전남 광산)에 낙선하였으나, 1948년 10월 30일 제헌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갑) 보궐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