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국민회의
1. 개요
비상국민회의는 1946년 2월 1일 명동성당에서 결성된 단체로, 미소공동위원회의 신탁통치 논의에 대한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되었다. 이승만과 김구를 공동 회장으로 추대하고, 최고정무위원회를 구성하여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으로 개편되었다. 1947년 2월에는 민족통일총본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통합하여 국민의회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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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의 행정 기관 -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 시기 남한 지역의 입법 기구로, 민주주의 제도 훈련과 법령 초안 작성 등을 목표로 1946년 12월에 개원하여 1948년 5월에 해산되었으며, 33건의 법률안을 심의하여 18건을 가결했다. -
비상국민회의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비상국민회의 -
여운형
여운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독립운동 단체 활동, 임시정부 참여,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 노력으로 알려졌으나 해방 후 암살당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친일 논란과 암살 배후에 대한 논쟁을 낳고 있다. -
1948년 폐지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 직후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목표로 상하이에서 수립되어 일본 제국에 맞서 무장 투쟁과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해방 후 정치적 난관을 겪으며 정통성과 역할에 대한 논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1948년 폐지 -
남조선국방경비대
남조선국방경비대는 1946년 미군정 군사국에 의해 창설되어 조선 국군 창설을 목표로 각 도별 연대를 창설했으며, 이후 조선경비대로 개칭되어 대한민국 육군으로 개편되었다.
2. 역사
1946년 2월 13일 이승만·김구는 비상국민회의로부터 최고정무위원 선임권을 위임받아 28인의 최고정무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비상국민회의는 최고정무위원회와 상임위원회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최고정무위원회가 1946년 2월 14일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으로 개편되었다. 이승만이 의장에, 김구·김규식이 부의장에 추대되었다. 이 개편으로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결성 당일, 조선인민당의 여운형, 개신교의 함태영, 유교의 김창숙·정인보, 조소앙은 결석하였다. 같은 날 조선인민당은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탈퇴 성명을 발표하였다. 임시정부의 우익 편향화를 이유로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비상국민회의)에서 탈퇴했던 세력들은 신탁통치 찬성 진영,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반대 진영, 그리고 좌익 진영인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였다.
1947년 2월 17일 비상국민회의 제2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민족통일총본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비상국민회의를 통합하고 국민의회로 개칭하였다. 단,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해체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하였다.
2.1. 배경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자 조선이 즉각적인 자주독립을 할 수 있도록 해당 선언을 개정할 것을 연합국 측에 요구하였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삼국 외상 회의(3상회의) 결과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미·소·영·중 4개국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를 협의하게 되었고, 1946년 1월 16일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 예비회담이 개최되자 각 정당과 사회단체는 서둘러 반탁진영과 찬탁진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때 임시정부 측은 즉각적인 자주독립을 원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펼쳤다. 한편으로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자주적인 과도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개별 또는 몇몇 정당들과 합작하려 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고, 그 다음 단계로 비상정치회의주비회를 개최하여 전국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소집하였다.
1946년 1월 20일 오전 9시 시내 죽첨정 요인숙소에서 제1차 비상정치회의주비회가 개최되었다.
1946년 1월 21일 비상정치회의주비회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합류시켜 비상국민회의주비회로 개칭하고 이승만·김구를 공동회장으로 추대하였다.
1946년 1월 23일 임시정부 측 혁신계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김약산·성주식, 조선민족해방동맹의 김성숙 등 3명은 '임시정부가 중립을 지키지 않고 반탁에 가담해 우익 편향화하고 있다'면서 비상국민회의주비회 탈퇴성명을 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장건상도 임시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하였다. 또한 공산진영 산하단체도 모두 참가를 거부해왔으므로 비상국민회의주비회는 우익진영만의 집결체가 되었다.
1946년 1월 30일 안재홍, 조소앙, 조완구, 김성수, 유동열, 김병로, 백관수, 김관식, 이운, 유림, 이학송, 엄항섭, 조경한으로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46년 2월 1일 한국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에서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2.2. 비상국민회의 결성 (1946년 2월)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삼국 외상 회의(3상회의) 결과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미·소·영·중 4개국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를 협의하게 되자, 1946년 1월 16일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 예비회담이 개최되면서 각 정당과 사회단체는 서둘러 반탁진영과 찬탁진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때 임시정부 측은 즉각적인 자주독립을 원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펼쳤다. 한편으론 임정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 과도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여 비상정치회의주비회를 개최하여 전국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소집하였다.
1946년 1월 20일 제1차 비상정치회의주비회가 개최되었다. 1월 21일 비상정치회의주비회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합류시켜 비상국민회의주비회로 개칭하고 이승만·김구를 공동회장으로 추대하였다.
1월 23일 임시정부 측 혁신계인 조선민족혁명당의 김약산·성주식, 조선민족해방동맹의 김성숙 등 3명은 '임시정부가 중립을 지키지 않고 반탁에 가담해 우익 편향화하고 있다'면서 비상국민회의주비회 탈퇴성명을 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장건상도 임시정부와의 결별을 고하였다. 또한 공산진영 산하단체도 모두 참가를 거부해왔으므로 비상국민회의주비회는 우익진영만의 집결체가 되었다.
1월 30일 안재홍, 조소앙, 조완구, 김성수, 유동열, 김병로, 백관수, 김관식, 이운, 유림, 이학송, 엄항섭, 조경한으로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46년 2월 1일 한국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명동성당에서 비상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2월 13일 이승만·김구는 비상국민회의로부터 최고정무위원 선임권을 위임 받아 28인으로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 이승만·김구·김규식·조소앙·조완구·김붕준
* 신한민족당: 권동진·김여식(金麗植)·최익환(崔益煥)
* 한국민주당: 원세훈·백남훈·김도연·백관수·김준연
* 국민당: 안재홍·박용희(朴容羲)·이의식(李義植)
* 조선인민당: 여운형·백상규(白象圭)·황진남(黃鎭南)
* 개신교: 함태영
* 천주교: 장면
* 불교: 김법린
* 유교: 김창숙·정인보
* 천도교: 오세창
* 여성계: 황현숙(黃賢淑)·김선(金善)
비상국민회의는 최고정무위원회와 상임위원회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가 1946년 2월 14일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으로 개편되었다. 이승만이 의장에, 김구·김규식이 부의장에 추대되었다. 이러한 개편에 따라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2.3.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으로 개편 (1946년 2월)
1946년 2월 13일 이승만·김구는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 선임권을 위임받아 28인의 최고정무위원을 구성하였다.
1946년 2월 14일,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는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미군정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으로 개편되었다. 이승만은 의장에, 김구·김규식은 부의장에 추대되었다. 이 개편으로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결성 당일, 조선인민당의 여운형, 개신교의 함태영, 유교의 김창숙·정인보, 조소앙은 결석하였다. 같은 날 조선인민당은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탈퇴 성명을 발표하였다. 임시정부의 우익 편향화를 이유로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비상국민회의)에서 탈퇴했던 세력들은 신탁통치 찬성 진영,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반대 진영, 그리고 좌익 진영인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