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근
1. 개요
홍재근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비학산 전투 등에서 활약하다 전사한 군인이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발발 직전에 자원 입대하여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되었다. 비학산 전투에서 특공대 선봉으로 활약하여 15명의 적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자교리 전투에서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희생을 기려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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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출생 -
프란체스코 코시가
프란체스코 코시가는 이탈리아의 내무부 장관, 총리,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비밀 조직 글라디오 등의 논란을 거치며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중요한 논쟁을 남긴 인물이다. -
1928년 출생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7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
대구광역시 출신 -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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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출신 -
백낙청
백낙청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로서, 《창작과비평》 창간, D. H. 로런스 연구, 유신 정권 비판, 남북 화해와 통일 운동 참여, 민족 문학론과 분단 극복론 주창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1950년 사망 -
김영랑
김영랑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활동한 시인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서정시와 민족주의적 저항 의식을 담은 시를 동시에 선보였으며, 1935년에 시집 『영랑시집』을 발간했다. -
1950년 사망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2. 생애
홍재근은 1928년 12월 10일 경상북도 대구부 비산동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에 자원입대하여, 육군 제2사단 17연대 3대대에 배속되었고, 9중대 3소대의 소총수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되었다.
2.1. 한국 전쟁 참전
홍재근은 1928년 12월 10일 경상북도 대구부 비산동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에 자원입대하여, 육군 제2사단 17연대 3대대에 배속되었고, 9중대 3소대의 소총수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되었다.
2.1.1. 낙동강 방어선 전투
1950년 5월, 홍재근은 6.25 전쟁 발발 직전 자원입대하여, 제주도 신병훈련소를 거쳐 이등병 신분으로 제2사단 17연대 3대대에 배속되었다. 그는 9중대 3소대의 소총수로서 낙동강 방어선 전장의 최일선에 투입되었다.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까지 부산 점령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쳤으나, 낙동강 교두보 확보에 실패하였다. 기계지역 탈환을 위해 공격해 오던 조선인민군 제12사단은 국군 수도사단의 총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고 비학산으로 철수했다.
1950년 8월, 조선인민군은 경주군 안강읍 기계면 인근 비학산에서 제12사단과 766유격부대를 재편성하고 새로운 공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수도사단 제18연대가 여러 차례 비학산을 빼앗기 위해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공격 작전권은 홍재근 이병이 속한 제17연대로 넘어왔다. 17연대는 야간기습으로 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던 조선인민군 766유격부대를 먼저 습격하기로 하고 특공대를 선발하였다. 홍재근 이병은 훈련소 동기인 김용식 이병과 함께 제일 먼저 지원하여, 돌격작전의 첨병을 맡았다. 홍재근 이병과 김용식 이병은 대열의 선봉에서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해 적 경계병을 처치하고, 다른 특공대원들과 함께 적 은거지를 기습 공격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766유격부대 은거지는 결국 초토화되어 제12사단에 흡수돼 사라졌다.
1950년 8월 24일 비학산 쟁탈전에서 이들은 다시 공격대열의 선봉에 섰다. 김용식 이등병은 군관을 덮치며 허벅지를 찌르고, 홍재근 이등병은 경기관총 사수와 부사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등 분전하여 15명의 적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거뒀다. 비학산 전투 이후 홍재근 이병은 자교리 전투에서 조선인민군과 백병전을 전개해 5명을 처치했으나, 결국 적의 대검에 찔려 전사했다.
2.1.2. 비학산 전투
1950년 8월, 조선인민군은 경주군 안강읍 기계면 인근 비학산에서 정예부대인 제12사단과 766유격부대를 재편성한 후 새로운 공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 수도사단은 제18연대를 투입해 여러 차례 비학산을 빼앗기 위해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고, 결국 공격 작전권은 홍재근 이병이 속한 제17연대로 넘어왔다. 17연대는 비학산 점령을 위해 야간기습으로 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던 조선인민군 766유격부대를 습격하기로 결정하고 특공대를 선발하였다. 홍재근 이병은 훈련소 동기인 김용식 이병과 함께 제일 먼저 지원하여, 돌격작전의 첨병을 맡았다. 이들은 대열 선봉에서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해 적 경계병을 처치하고, 다른 특공대원들과 함께 적 은거지를 기습 공격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766유격부대 은거지는 결국 초토화되어 제12사단에 흡수되었다.
1950년 8월 24일 비학산 쟁탈전에서 이들은 다시 공격대열 선봉에 섰다. 김용식 이등병은 군관을 덮치며 허벅지를 찌르고, 홍재근 이등병은 경기관총 사수와 부사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등 분전하여 15명의 적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거뒀다. 비학산 전투 이후 홍재근 이등병은 자교리 전투에서 조선인민군과 백병전을 전개해 5명을 처치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적의 대검에 무수히 찔려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