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1931년)
1. 개요
김용식은 1931년 황해도 옹진군 출생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비학산 전투에서 활약한 군인이다. 그는 비학산 전투에서 특공대원으로 적진을 기습하여 조선인민군 766유격부대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 1950년 9월 서울 탈환 작전 직후 전사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태극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훈장은 전쟁기념관에 영구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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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노
이광노는 대한민국 육군 중장 예편 후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조사에 참여하고 정계 은퇴 후 보수 성향 단체에서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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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동양 평화를 주장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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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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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생애
1931년 2월 8일 황해도 옹진군(본적: 경기도 옹진군 부관면 적석리)에서 태어나, 강령공립보통학교와 옹진중학교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자원입대하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등병 신분으로 제2사단 17연대 3대대에 배속,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까지 부산 점령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쳤으나 낙동강 교두보 확보에 실패하였다. 기계지역 탈환을 위한 조선인민군 제12사단은 국군 수도사단의 총공격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채 비학산으로 철수했다.
2.1. 참전과 활약
6.25 전쟁 초기, 김용식 이등병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비학산 전투에서 뛰어난 용맹을 발휘하여 북한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비학산 전투에서 김용식 이등병은 특공대원으로 선발되어 적진을 기습, 북한군 766유격부대를 와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50년 8월, 조선인민군은 경주군 안강읍 기계면 인근 비학산에서 제12사단과 766유격부대를 재편성한 후 새로운 공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제18연대를 투입해 여러 차례 비학산을 빼앗기 위해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해 결국 공격 작전권은 김용식 이병이 속한 제17연대로 넘어왔다. 17연대는 비학산 점령을 위해 먼저 야간기습으로 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던 조선인민군 766유격부대를 습격하기로 결정하고 임무를 수행할 특공대를 선발하였다. 김용식 이병은 훈련소 동기인 홍재근 이병과 함께 제일 먼저 지원하여, 돌격작전의 첨병을 맡았다. 김용식 이병과 홍재근 이병은 대열의 선봉에서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해 적 경계병을 처치하고, 다른 특공대원들과 함께 적 은거지를 기습 공격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766유격부대 은거지는 결국 초토화되어 제12사단에 흡수돼 사라졌다.
비학산 쟁탈전에서 김용식 이등병은 홍재근 이병과 함께 적군의 자동화기 진지를 파괴하고, 북한군 15명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