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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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용식은 1931년 황해도 옹진군 출생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비학산 전투에서 활약한 군인이다. 그는 비학산 전투에서 특공대원으로 적진을 기습하여 조선인민군 766유격부대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 1950년 9월 서울 탈환 작전 직후 전사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태극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훈장은 전쟁기념관에 영구 보관되어 있다.

김용식 (1931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국기
이름김용식
현지어 표기金龍植
생애
출생일1931년 2월 8일
출생지일제강점기 황해도 옹진군
사망일1950년 9월 29일
사망지대한민국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백교리
병역
국적대한민국
충성대한민국
복무 기간1950년 5월 ~ 1950년 9월
최종 계급일병
근무제2사단 제17연대 3대대 9중대 3소대
주요 참전 전투/전쟁한국 전쟁
훈장
서훈 내역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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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31년 2월 8일 황해도 옹진군(본적: 경기도 옹진군 부관면 적석리)에서 태어나, 강령공립보통학교와 옹진중학교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자원입대하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등병 신분으로 제2사단 17연대 3대대에 배속,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까지 부산 점령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쳤으나 낙동강 교두보 확보에 실패하였다. 기계지역 탈환을 위한 조선인민군 제12사단은 국군 수도사단의 총공격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채 비학산으로 철수했다.

2.1. 참전과 활약

6.25 전쟁 초기, 김용식 이등병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비학산 전투에서 뛰어난 용맹을 발휘하여 북한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비학산 전투에서 김용식 이등병은 특공대원으로 선발되어 적진을 기습, 북한군 766유격부대를 와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50년 8월, 조선인민군은 경주군 안강읍 기계면 인근 비학산에서 제12사단과 766유격부대를 재편성한 후 새로운 공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제18연대를 투입해 여러 차례 비학산을 빼앗기 위해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해 결국 공격 작전권은 김용식 이병이 속한 제17연대로 넘어왔다. 17연대는 비학산 점령을 위해 먼저 야간기습으로 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던 조선인민군 766유격부대를 습격하기로 결정하고 임무를 수행할 특공대를 선발하였다. 김용식 이병은 훈련소 동기인 홍재근 이병과 함께 제일 먼저 지원하여, 돌격작전의 첨병을 맡았다. 김용식 이병과 홍재근 이병은 대열의 선봉에서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해 적 경계병을 처치하고, 다른 특공대원들과 함께 적 은거지를 기습 공격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766유격부대 은거지는 결국 초토화되어 제12사단에 흡수돼 사라졌다.

비학산 쟁탈전에서 김용식 이등병은 홍재근 이병과 함께 적군의 자동화기 진지를 파괴하고, 북한군 15명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2.2. 전사

1950년 9월 서울탈환작전 직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백교리(현재의 구리시 교문동)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복부를 맞아 전사했다.

3.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용식 이병의 공훈을 기려 1951년 7월 26일 군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12호)을 수여하고, 1954년 10월에는 1계급 특진과 함께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1957년 9월 13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유해가 안장되었다. 그는 훈장을 전달받을 유족이 없어, 대한민국 정부는 호국인물 현양행사와 함께 훈장을 전쟁기념관에 영구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