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 (팔금면)
1. 개요
화도(花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에 속하는 섬이다. 증도의 우전리 남동쪽 1km 간석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0.2km²이다. 김과 대하 양식이 활발하고 갯바위 및 선상 낚시터로 이용되며, 18세기 중엽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선화공주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며, 1963년 '꽃섬'에서 '화도'로 개칭되었다. 지형 경관이 우수하고 멸종위기종이 자생하여 특정도서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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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지리에 관한 -
부산민주공원
부산민주공원은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공원 내에 위치하며 부마민주항쟁 20주년 기념으로 1999년에 개관한 공원으로,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산광역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며, 부산광역시 조례에 따라 관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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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
한강공원은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공원 시스템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의 한강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조성되었으며,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문화, 예술, 레저 공간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제공하며 생태계 보전에도 기여한다. -
신안군의 지리 -
다라도
다라도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가마우지, 바다제비 서식지로 인해 특정도서로 지정되어 생태계 보전을 위한 다양한 행위가 제한되는 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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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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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
거금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속하며 과거 절이도로 불렸고, 이순신이 절이도 해전에서 승리한 곳이며, 현재는 금장교회, 거금대교 전망대, 김일 기념관 등의 관광 시설이 있는 섬이다.
2. 지리
증도 남동쪽 약 1km 간석지에 있으며, 주변에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갈매섬 등 여러 섬들이 있다. 북쪽으로 좁고 길쭉한 곶이 뻗어 나가면서 왼쪽의 짧은 곶과 함께 만을 이루고, 남서쪽과 남동쪽에도 지느러미 모양의 돌출부가 있다. 면적은 0.2km2이며, 2001년 기준 인구는 63명, 23가구였다.
2.1. 위치
증도 우전리 남동쪽 1km 간석지에 있다. 동쪽에는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가 있고, 남쪽에는 갈매섬 등이 있다. 북쪽으로 좁고 길쭉한 곶이 뻗어 나가면서 왼쪽의 짧은 곶과 함께 만을 이루고, 남서쪽과 남동쪽에도 지느러미 모양의 돌출부가 있다.
2.2. 지형
증도(曾島) 우전리(羽田里) 남동쪽 1km 간석지에 있다. 동쪽에는 병풍도(屛風島), 대·소기점도(大小奇點島), 소악도(小岳島), 남쪽에 갈매섬 등이 있다. 북쪽으로 좁고 길쭉한 곶(串)이 뻗어 나가면서 왼쪽의 짧은 곶과 함께 만(灣)을 이루고, 남서쪽과 남동쪽에도 지느러미 모양의 돌출부가 있다. 면적은 0.2km2이다.
2.3. 인구 및 산업
화도는 증도 우전리 남동쪽 1km 간석지에 있으며, 면적은 0.2km2이다. 2001년 기준으로 인구는 63명, 23가구이다.
주민들은 주로 김과 대하 양식을 하며, 특히 김은 연간 5만 섬이 생산되어 주민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갯바위와 선상 낚시도 활발하며, 주 어종은 농어와 도미이다. 섬 내 낮고 평평한 경작지에서는 농업도 이루어진다.
3. 역사
18세기 중엽 한양 조씨가 처음으로 이 섬에 들어왔고, 이후 순흥 안씨가 들어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위가 5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섬은 원래 삭막하고 풀도 나지 않는 바위섬이었으나, 선화공주가 이 섬에 귀양살이하며 애원한 결과 기름진 땅으로 변하여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꾼 꽃이 온 섬에 가득 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선화공주의 꽃밭이었다는 터가 남아있다.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섬의 모양이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고, 마을에 해당화가 많아 '꽃섬'이라 불렸다. 이후 1963년에 현재의 이름인 '화도'로 바뀌었다. 2001년 2월 신안군 '50호 미만 도서 불밝히기 사업'의 일환으로 해저케이블을 통해 전기가 연결되었다.
3.2. 섬 이름 유래
섬 이름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18세기 중엽 한양 조씨가 처음 섬에 들어왔고, 뒤에 순흥 안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위가 5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원래 삭막한 바위섬이었으나, 선화공주가 귀양살이를 하며 애원한 결과 기름진 땅으로 변했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꾼 꽃이 온 섬에 가득 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선화공주의 꽃밭이었다는 터가 남아있다.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섬의 모양이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고, 마을에 해당화가 많아 '꽃섬'이라 불렸다. 이후 1963년에 현재의 이름인 '화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