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궁주
1. 개요
화순궁주는 고려 의종과 장경왕후의 셋째 딸로, 고려 명종, 신종의 조카이자 희종, 강종 등과는 친사촌간이다. 1157년 궁주에 책봉되었으며, 종실 광릉공 왕면과 혼인하였다. 화순궁주는 광릉공과 혼인 후의 삶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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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녀 -
정녕원비
정녕원비는 고려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1274년 정녕궁주에 책봉되었고 종실 제안공 왕숙과 혼인한 인물이다. -
고려의 왕녀 -
명순원비
명순원비는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여 계양후 왕광을 낳았으며, 1320년에 사망한 고려의 왕족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무신정권 -
원종 (고려)
원종은 고려 고종의 장남으로 몽골과의 강화 조약을 위해 원나라에 갔다가 즉위하여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으며, 임연의 쿠데타와 삼별초의 항쟁을 겪고 개경으로 환도한 후 1274년에 사망했다. -
무신정권 -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의 항쟁은 최씨 무신정권의 군사조직인 삼별초가 원종의 친몽 정책과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1270년 강화도에서 시작, 배중손을 중심으로 왕족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며 진도와 제주도에서 3년간 고려-원 연합군에 맞서 싸웠으나 1273년 진압되어 고려의 몽골 지배 강화와 원의 제주도 직접 통치를 가져왔으며, 민족적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되지만 무신정권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다.
2. 생애
화순궁주는 의종과 장경왕후의 셋째 딸로, 명종, 신종의 조카이며, 희종과 강종 등과는 사촌 간이다. 어머니 장경왕후는 강릉공 왕온의 딸이며, 광정태후와 선정태후는 화순궁주에게 숙모이자 이모가 된다.
1157년(의종 11년) 음력 11월 21일, 두 언니와 함께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었는데, 《고려사》에는 화순궁주가 아닌 순화궁주(順和宮主)로 기록되어 있다. 의종은 딸들을 궁주로 책봉한 날, 대신들을 불러 연회를 열었다. 이후 화순궁주는 강릉공 왕온의 친손자인 광릉공 왕면과 혼인하였으나,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호는 화순궁주(和順宮主) 또는 순화궁주(順和宮主)이다.
2.1. 초기 생애
생몰년은 확실하지 않으며, 고려 제18대 왕 의종과 장경왕후의 셋째 딸이다. 명종, 신종의 조카이며, 희종과 강종 등과는 친사촌 간이다.
화순궁주의 모후 장경왕후는 강릉공 왕온의 딸이다. 한편 명종비 광정태후와 신종비 선정태후도 강릉공의 딸들로, 이들은 화순궁주에게 숙모이자 이모가 된다.
1157년(의종 11년) 음력 11월 21일 두 언니와 함께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었다. 다만 이 사실을 전하는 《고려사》의 기사는 화순궁주의 호를 순화궁주(順和宮主)라고 적고 있다.
2.2. 혼인
화순궁주는 1157년(의종 11년) 음력 11월 21일 두 언니와 함께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었다. 이 사실을 전하는 《고려사》의 기사는 화순궁주의 호를 순화궁주(順和宮主)라고 적고 있다. 의종은 세 딸을 궁주로 책봉한 이 날 여러 대신을 불러 천녕전에서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화순궁주는 종실 광릉공 왕면과 혼인하였으며, 혼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특별히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2.3. 혼인 이후의 삶
1157년(의종 11년) 음력 11월 21일, 화순궁주는 두 언니와 함께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었다. 이 사실을 전하는 《고려사》 기사에는 화순궁주의 호를 순화궁주(順和宮主)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종은 세 딸을 궁주로 책봉한 이날 여러 대신을 불러 천녕전에서 연회를 열었다. 이후 화순궁주는 종실 광릉공 왕면과 혼인하였으나, 혼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특별히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