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경궁주
1. 개요
승경궁주는 고려 의종 때 궁주로 책봉된 인물이다. 1148년 덕녕궁주와 함께 궁주가 되었으며, 문종의 손자인 공화후 왕영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딸의 묘지명 기록을 통해 1158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인종과 어머니 공예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의종, 명종, 신종 등을 포함한 여러 형제자매가 있었다. 남편 공화후는 7촌 숙질간의 근친혼으로, 아들 광릉공은 의종의 딸과 혼인했다.
승경궁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고려 공주
| 작위 | 궁주 (공주) |
|---|---|
| 별칭 | 승경궁공주(承慶宮公主) |
| 봉호 | 승경궁(承慶宮) |
| 출생 | 미상 |
| 사망 | 1158년 이전 |
| 매장지 | 미상 |
| 국적 | 고려 |
가계
| 왕조 | 왕씨 (출생 및 혼인) |
|---|---|
| 아버지 | 인종 |
| 어머니 | 공예왕후 임씨 |
| 형제자매 | 의종, 명종, 신종, 희종(조카), 강종(조카) 등 다수 |
| 배우자 | 공화백 왕영; 이종사촌 형부 |
| 자녀 | 왕씨 (딸), 왕면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고려 인종 -
인종 (고려)
인종은 이자겸의 난을 진압 후 왕권 강화를 꾀하고 김부식에게 삼국사기 편찬을 명하는 등 문벌 귀족 중심의 정치를 펼치며 금과의 외교 관계 속에서 고려의 독립을 유지하려 노력한 고려의 제17대 왕이다. -
고려 인종 -
문경태후
문경태후는 고려 예종의 왕후이자 인종의 생모이며, 조선국공 이자겸의 딸로, 예종의 총애를 받아 인종을 낳았고 인종 즉위 후 문경왕태후로 추존되었으며, 그녀와 예종의 혼인은 이자겸의 권력 강화에 기여했으나 사후 이자겸의 난으로 가문이 몰락했다. -
고려의 왕녀 -
정녕원비
정녕원비는 고려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1274년 정녕궁주에 책봉되었고 종실 제안공 왕숙과 혼인한 인물이다. -
고려의 왕녀 -
명순원비
명순원비는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여 계양후 왕광을 낳았으며, 1320년에 사망한 고려의 왕족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생몰년은 명확하지 않으며, 의종 즉위 후인 1148년(의종 2년) 음력 11월 6일 동생 덕녕궁주와 함께 궁주로 책봉되어 승경궁주(承慶宮主)의 작호를 받았다. 승경궁주는 문종의 손자 강릉공 왕온의 아들 공화백 왕영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낳았다.
승경궁주의 딸 왕씨의 묘지명인 〈왕영녀왕씨묘지명(王瑛女王氏墓誌銘)〉에 '어머니는 승경궁공주 왕씨이며 (중략) 나이 7, 8세가 되기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승경궁주는 최소한 1158년 이전에 사망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