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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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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환도는 한국에서 사용된 칼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 몽골 간섭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환도라는 명칭은 '둥근 칼'을 의미하며, 칼집을 허리에 매는 고리나 코등이의 둥근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외날을 가진 단병기를 모두 환도로 지칭했으며, 칼날이 휘어진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고려 전기에는 당나라의 횡도와 같은 형태였으나, 몽골의 영향을 받아 칼날이 휘어진 형태가 등장했다. 환도는 일본도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나, 칼날의 휘임각은 더 작다. 조선 전기의 환도는 길이가 짧았으나, 임진왜란 이후 길어지는 추세였다. 환도는 칼집에 끈을 꿰어 허리에 묶는 방식으로 패용되었으며, 휘어진 칼날 형태는 절삭력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 명칭

환도는 고려 후기 몽골 간섭기에 처음 등장한 둥근 칼이라는 뜻의 명칭이다. 조선시대에는 특정 칼을 지칭하기보다는, 외날을 가진 단병기(짧은 무기)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1]조선왕조실록》의 운검, 패도, 패검, 《무예도보통지》의 예도, 쌍수도, 쌍검, 심지어 왜검 수련에도 환도 한 종류만을 사용했으며, 왜검, 여진족 칼, 조선 말기 이양선에서 발견된 서양 도검까지도 《실록》에서는 모두 환도라 지칭하였다.[1]

2. 1. 어원

환도라는 이름이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 충렬왕 3년(1277년) 4월 정묘조에, 원나라 사신 유홍(劉弘) · 홀노(忽奴)가 오자 왕이 이장무(李藏茂)를 충주로 보내 환도 1천 자루를 함께 만들도록 했다는 것이 최초이다. 《원사(元史)》에도 세조 임자년에 대칸에게 환도를 바친 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등, 환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후기 몽골 간섭기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환도(環刀)라는 한자는 번역하면 (고리처럼) 둥근 칼이라는 뜻으로, 현존하는 환도 유물이나 기록에서 보이듯 휘어진 칼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기 쉬운데, 융원필비에는 칼집을 허리에 매는 고리에서 유래했다고 서술하였다. 코등이의 둥근 모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3. 칼의 형태

환도는 일본도와 비슷하게 휘어진 칼날을 가지고 있지만, 휘임각은 더 작아 거의 곧은 칼에 가깝다. 서긍의 《고려도경》에 따르면, 몽골 침략 직전 고려의 도검은 당나라 때부터 유래한 횡도(橫刀)와 같았으며, 고려 전기까지 이러한 형태가 유지되었다.[1]원사》에서는 횡도가 의도(儀刀)와 같고 칼날만 휘어 있다고 설명한다.[1] 이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칼날이 휘어진 횡도가 고려에 유입되어 환도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 환도는 크게 휘고 길이도 짧았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일본도보다 짧은 환도의 단점이 드러나 조선 후기에는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3. 1. 칼날

환도는 일본도와 비슷한 형태인데, 칼날의 휘임각은 일본도와 비교하면 더 작아 거의 곧은 칼에 가깝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몽골 침략 직전 고려의 도검에 대해 '''횡도(橫刀)와 같다'''고 기술하였으며, 이 '''횡도는 당나라 때부터 유래한 것'''으로 코등이가 둥글고 가죽 고름에 매어 겨드랑이 밑에 가로로 차게 되어 있는 형태의 칼이었다.[1] '''고려 전기까지 당의 횡도와 같은 형태의 도검이 사용되었다.'''[1]원사》에서는 횡도에 대한 설명으로 "횡도는 그 제도가 의도(儀刀)와 같고, 칼날만 휘어 있다."고 소개하였다.[1] 당나라 때부터 횡도는 직선이었으나, 몽골을 통해 유입된 중앙아시아 초원 유목민족의 사브르의 영향으로 칼날이 휘었고, 고려에도 이러한 형태의 횡도가 유입되어 환도의 모델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1]

3. 2. 길이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에 실린 조선 전기의 환도는 크게 휘었을 뿐 아니라 길이도 짧은 편이다. 《문종실록》에 기록된 환도의 칼날 길이 규정을 보면 보병용이 1.7자, 기병용이 1.6자, 자루 길이는 보병용 2권, 기병용 1권 3지였다.[1] 영조척으로 환산한 문종 대의 환도 규격은 당시 일반적인 길이를 재던 주척 기준으로 보병용이 전체 길이 55.63cm(칼날 길이 35.638cm), 기병용이 48.96cm(칼날 길이 32.96cm)로, 일본도에 비해 길이가 짧은 편이다. 칼자루의 길이는 1451년 기준으로 마병은 한 뼘 세 손가락이고, 보병은 두 뼘이다.[2] 함길도절제사 이징옥은 문종에게 "환도는 날이 곧고 짧아야 급할 때 쓰기 편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직선 형태의 짧은 칼날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조선 초기 갑사 채용 기준에는 갑옷에 활(1, 2장)과 화살(20여 대), 환도를 차고 3백 보를 달려갈 수 있느냐가 포함되어[3] 있었기 때문에 무인들은 되도록 가벼운 칼을 선호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일본도보다 짧은 환도로는 오히려 불편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에 따라 조선 후기의 환도는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추세가 되었다.

3. 3. 패용 방법

환도는 일본도와는 달리 칼집에 달린 두 개의 칼집고리에 끈을 꿰어 허리에 묶는 형태로 패용하였다.[1] 패용을 위해 소나 사슴 가죽으로 만든 띠가 따로 존재하였으며, 칼집은 어피로 싸서 검은색 또는 주황색을 칠하였다.[1] 칼자루 한가운데에는 구멍을 뚫어 홍조수아라는 끈을 드리웠고, 칼머리에는 두석을 장식했다.[1]

4. 절삭력

환도의 날-측면(휘어짐)과 단면(원내 각도)


압정의 원리와 형태처럼 칼날의 예리함(A)은 칼날의 휘어진 정도(F)에서 절삭력(P)을 극대화할 수 있다.

:${\displaystyle P={\frac {F}{A}}}$

인체 관절 등의 구조상 동작은 원 또는 타원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므로 칼날(측면)의 휘어진 정도가 이러한 최적의 절제된 동작에서 동선과 같아질 수 있어야 맞닿는 면적이 최소로 유지되는데 보다 유리하다. 한편 칼날(단면)의 각도는 안정된 절삭력의 지속 시간과 관련있으며 외날구조(단면)는 도끼에서처럼 절삭 대상의 강도에 따른 절단력을 유지하도록 보장해준다.

참조

[1] 문헌 문종실록 1451-02-25
[2] 웹인용 1451년 환도의 길이 논의 https://i.imgur.com/[...]
[3] 문헌 세종실록 144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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