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찬
1. 개요
황금찬은 1918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2017년 99세의 나이로 사망한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1953년 등단하여 시집 《현장》, 《오월나무》 등 다수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초기에는 향토색 짙은 시조적 발상에서, 후기에는 현실적인 서술 표현으로 시적 성과를 이루었다. 교직 생활을 하며 문인들을 길러냈고, 문학 원로로서 존경받았으며, 사후에는 문학관 건립이 추진되었다. 월탄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이름 | 황금찬 |
|---|---|
| 본명 | (알 수 없음) |
| 본관 | (알 수 없음) |
| 출생일 | 1918년 8월 10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강원도 양양군 |
| 사망일 | 2017년 4월 8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강원도 횡성군 |
| 사망 원인 | 노환 |
| 직업 | 시인 |
| 국적 | 대한민국 |
| 종교 | 개신교(한국기독교장로회) |
| 장르 | 시 |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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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 출신 -
이양수
이양수는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기업 대표를 거쳐 보수정당의 당직 및 정부직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강원도 속초시 등 지역구에서 제20대, 제21대, 제2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속초시 출신 -
신창현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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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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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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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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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1918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학교를 다니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해방 후 강원도로 내려와 1946년부터 9년간 강릉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1953년 《문예》로 문학계에 등단,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기고하며 등단했다. 1954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하여 초동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며 문학 세계에 기독교적 바탕을 다졌다.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시작으로, 《오월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1973) 등 수십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초기에는 시조적 향토색이 강했으나, 점차 현실적이고 서술적인 표현으로 아름다운 시구를 남겼다.
2016년 백수연 행사에서 제자들로부터 필사집을 헌정받았고, 문학관 건립이 추진되는 등 문학 원로로서 존경받았다. 2017년 4월 8일 강원도 횡성에서 향년 99세로 타계, 경기도 안성시 초동교회 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2.1. 유년 시절과 문학적 성장
1918년 8월 10일 강원도 속초(당시 양양군 도천면)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이생활>이란 청소년 잡지를 보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해방 후 함경북도 성진에서 강원도로 내려와 1946년부터 9년간 강릉에 살았다. 교직 생활을 보내면서도 문인들을 여럿 길러냈고, 1952년에는 시 동인지 <청포도>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이때의 활동은 강원도 문학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3년 《문예》로 문학계에 등단했으며, 1954년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한 후 돈화문로의 초동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고, 이때부터의 경험이 그의 문학 세계에 기독교적 바탕을 깔게 되었다.
2.2. 서울 이주와 문학 활동
1954년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한 후 돈화문로의 초동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고, 이때부터의 경험이 그의 문학 세계에 기독교적 바탕을 깔게 되었다.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내고 활발한 문학 활동을 벌였다. 이후 《오월나무》(1969)와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1973) 등의 시집을 출간하며 수십여 권의 시집을 냈다. 초창기 작품은 시조적 발상에서 비롯된 향토색이 많았다. 이후 현실성이 강해지며 서술적 표현을 통한 아름다운 시구를 남겼다.
2.3. 문학적 업적과 사회적 활동
1946년부터 9년간 강릉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여러 문인들을 길러냈고, 1952년에는 시 동인지 <청포도>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이때의 활동은 강원도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3년 '문예'로 등단,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기고하며 문학계에 등단했다.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출간한 후, 〈五월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 (1973) 등 수십여 권의 시집을 냈다. 초기 작품은 시조적 발상에서 비롯된 향토색이 짙었으나, 이후 현실성이 강해지며 서술적 표현을 통해 아름다운 시구를 남겼다.
문학 원로로서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선생이었으며, 2016년 백수연 행사에서 제자 김문중 시인 외 다수로부터 2018편의 필사집을 헌정받았다. 제자들을 중심으로 황금찬 문학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으며,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현재 황금찬 시비는 월간 시사문단사가 2007년 남양주 북한강 야외 공연장에 세웠고, 황금찬 시인이 '별이 뜨는 강마을'이라는 시를 헌시하여 새겨진 이 북한강문학비는 2017년 9월 고 황금찬 선생의 형상과 약력을 새겨 완성되었다. 2017년 11월 4일 남양주 북한강문학제에서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에 마경덕 시인의 <놀란흙>이 선정되었는데, 이는 황금찬 선생의 시 세계와 가장 밀접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이날 황금찬 선생의 유족인 둘째 아들 황도정 씨가 황금찬 시비 제막식에 참가하였다.
2.4. 타계와 추모
2017년 4월 8일 오전 4시 40분, 강원도 횡성의 자택에서 건강 악화로 향년 99세로 타계하였다. 41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4월 11일 발인을 거쳐 경기도 안성시 초동교회 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2007년 월간 시사문단사가 남양주시 북한강 야외 공연장에 황금찬 시비를 세웠다. 황금찬 시인이 헌시한 '별이 뜨는 강마을' 시가 새겨진 북한강문학비는 2017년 9월 고 황금찬 선생의 형상과 약력을 새겨 완성되었다. 2017년 11월 4일 남양주 북한강문학제에서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에 마경덕 시인이 선정되었고, 황금찬 선생과 시문학 세계가 가장 밀접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놀란흙>이 선정되었다. 이날 황금찬 선생의 유족인 둘째 아들 황도정 씨가 황금찬 시비 완료 제막식에 참가하였다.
3. 수상 경력
* 월탄문학상
* 대한민국 문학상
* 한국기독교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