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애철황후
1. 개요
효애철황후는 명나라 천계제의 황후로, 위충현의 횡포 속에서도 천계제에게 간언을 올리는 등 올곧은 모습을 보였다. 천계제가 후사 없이 죽자 숭정제를 옹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숭정제로부터 '의안황후'라는 존호를 받았다. 이자성의 난으로 북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자결했다. 이후 청나라 순치제에 의해 주황후와 함께 명나라 황후의 예로 장례가 치러졌고, 남명 홍광제로부터 '효애자정공혜온정해천협성철황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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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장씨 (張氏) |
|---|---|
| 시호 | 효애자정공혜온정해천협성철황후 (孝哀慈靖恭惠溫貞偕天協聖悊皇后) |
| 존호 | 懿安皇后 (의안황후) |
| 능묘 | 덕릉 (德陵) |
| 출생 | 만력(萬曆) 34년 (1606년) |
| 출생지 |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부 상부현(祥符縣) (현재의 개봉(開封)) |
| 사망 | 숭정(崇禎) 17년 4월 24일 (1644년 4월 24일) |
| 아버지 | 태강후(太康侯) 장국기(張國紀) |
|---|---|
| 배우자 | 천계제(天啓帝) |
| 자녀 | 회충태자(懷沖太子) 주자연(朱慈燃) |
| 책봉 | 천계 원년 (1621년) 황후로 책봉 |
|---|---|
| 섭정 | 숭정제(崇禎帝) 즉위 후, 황후로서 섭정 |
| 최후 | 이자성(李自成)의 난으로 자금성(紫禁城) 함락 시 사망 |
| 황후 | 1621년 - 1627년 |
|---|---|
| 황태후 | 1627년 - 164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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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출생 -
마리아 아나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 (1610년)
마리아 아나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은 페르디난트 2세의 딸로 태어나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여 바이에른 선제후비가 되었으며, 남편 사후 아들의 섭정을 맡아 바이에른 정치에 참여하다가 뮌헨에서 사망했다. -
1610년 출생 -
페르디난도 2세 데 메디치
페르디난도 2세 데 메디치는 1621년부터 1670년까지 토스카나 대공으로 재위했으며, 과학과 예술을 후원하고 과학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과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뇌졸중과 수종으로 사망하여 산 로렌초 성당에 안치되었다. -
중국사 인물 -
서태후
서태후는 함풍제의 후궁으로 동치제를 낳았으며, 수렴청정을 통해 청나라 말기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양무 운동 추진 및 의화단 지원 등 다양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
중국사 인물 -
초한전쟁
초한전쟁은 진나라 멸망 후 항우와 유방 세력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유방의 승리로 끝나 한나라가 건국되었으며, 신분 질서의 변화와 민본주의 정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
명나라의 황후 -
효숙황후
효숙황후는 명나라 영종의 후궁이자 성화제의 생모로, 후궁 시녀 출신으로 빈이 되었고 아들 성화제 즉위 후 황태후, 손자 홍치제 즉위 후 태황태후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명나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력 남용 논란 등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명나라의 황후 -
인효문황후
명나라 영락제의 황후 인효문황후는 서달의 딸로 학문을 좋아했으며, 정난의 변 당시 베이징을 지키고 황후가 된 후 문화 사업에 힘쓰며 불교 관련 사업을 지원했다.
2. 생애
천계 원년(1621년), 장씨는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녀(淑女)로 책봉되었고, 얼마 안 돼서 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 장씨는 아버지 장국기(張國紀)는 딸이 황후가 되면서 태강의 백(伯)으로 추증되었다. 명나라 황제으로서는 드물게, 부모의 허락을 거치지 않고 황제 자신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천계제가 즉위할 당시에는 환관인 위충현(魏忠賢)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황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으나, 황후 장씨는 천계제에게 "소인배(간신)를 멀리하고, 현인(충신)을 가까이하여라"(遠小人,近賢人)라고 간청하기도 하였다. 장 황후는 진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혐의를 받는 환관 조고에 위충현을 비유하여 은근히 비판하기도 하였다.
황후는 평소 책 읽기를 좋아했고, 짙은 녹색 옷을 즐겨 입었다. 황후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지만 초연하고 고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번은 객씨 부인을 불러 매질을 명령했지만, 황제가 나타나 처벌을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위충현과 객씨는 천계제의 신임을 받아 후궁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었고, 황후와 그들은 앙숙이 되었다. 위충현은 황제의 후궁들에게 유산을 유도했으며, 객씨 부인은 일부 여성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전해진다. 천계 3년(1623년) 10월, 아들 주자연을 임신했으나, 곧 요절하였다. 황후 자신도 1623년에 임신했지만, 객씨 부인과 일부 궁녀들의 음모로 유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위충현과 객씨 부인은 장 황후를 직접 공격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아버지에게 해적 혐의를 씌워 그녀를 몰락시키려 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그녀를 범죄자의 딸로 지목하여 황후로서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그녀의 지위를 훼손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음모는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천계 연간에 황후로 간택된 장황후는 위충현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천계제에게 간언을 올리는 등 올곧은 모습을 보였다. 천계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위충현은 황위 찬탈을 꾀했으나 장황후는 이를 막고 선제의 동생(이후 숭정제)에게 황위를 넘기도록 하였다. 숭정제는 이러한 장황후를 존중하여 '의안황후'라는 존호를 바치고 황태후 급으로 예우하였다. 숭정제가 즉위하자, 황형수(황제의 형수)인 의안황후로 칭해졌고, 자경궁에 입주했다. 또한 숭정 3년(1630년), 장국기는 태강백이 되었다. 숭정 15년(1642년), 인수궁(선제 비빈의 거소)으로 옮겨졌다.
숭정 17년(1644년), 이자성의 난으로 북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숭정제는 마지막 조회를 열고 가족들에게 자결을 명했다. 숭정제는 직접 원귀비와 곤의공주를 칼로 살해하고, 장평공주의 팔을 잘랐다. 주황후는 숭정제의 명에 따라 목을 매 자결했고, 장황후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청나라 순치제의 명으로 장황후는 주씨와 함께 명나라 황후의 예로 장례가 치러져 순천부에 안장되었다. 남명 홍광제는 장황후에게 효애자정공혜온정해천협성철황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2.1. 황후 책봉과 위충현, 객씨와의 갈등
천계 원년(1621년), 장씨는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녀(淑女)로 책봉되었고, 얼마 안 돼서 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 장씨는 아버지 장국기(張國紀)는 딸이 황후가 되면서 태강의 백(伯)으로 추증되었다. 명나라 황제으로서는 드물게, 부모의 허락을 거치지 않고 황제 자신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천계제가 즉위할 당시에는 환관인 위충현(魏忠賢)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황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으나, 황후 장씨는 천계제에게 "소인배(간신)를 멀리하고, 현인(충신)을 가까이하여라"(遠小人,近賢人)라고 간청하기도 하였다. 장 황후는 진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혐의를 받는 환관 조고에 위충현을 비유하여 은근히 비판하기도 하였다.
황후는 평소 책 읽기를 좋아했고, 짙은 녹색 옷을 즐겨 입었다. 황후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지만 초연하고 고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번은 객씨 부인을 불러 매질을 명령했지만, 황제가 나타나 처벌을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위충현과 객씨는 천계제의 신임을 받아 후궁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었고, 황후와 그들은 앙숙이 되었다. 위충현은 황제의 후궁들에게 유산을 유도했으며, 객씨 부인은 일부 여성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전해진다. 천계 3년(1623년) 10월, 아들 주자연을 임신했으나, 곧 요절하였다. 황후 자신도 1623년에 임신했지만, 객씨 부인과 일부 궁녀들의 음모로 유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위충현과 객씨 부인은 장 황후를 직접 공격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아버지에게 해적 혐의를 씌워 그녀를 몰락시키려 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그녀를 범죄자의 딸로 지목하여 황후로서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그녀의 지위를 훼손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음모는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천계제 사후에 숭정제(崇禎帝)는 황후 장씨에게 존호를 가상하여, 황태후 급으로 정성스럽게 모셨다. 숭정제가 즉위하자, 황형수(황제의 형수)인 의안황후로 칭해졌고, 자경궁에 입주했다. 또한 숭정 3년(1630년), 장국기는 태강백이 되었다. 숭정 15년(1642년), 인수궁(선제 비빈의 거소)으로 옮겨졌다.
2.2. 숭정제 즉위와 최후
천계 연간에 황후로 간택된 장황후는 위충현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천계제에게 간언을 올리는 등 올곧은 모습을 보였다. 천계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위충현은 황위 찬탈을 꾀했으나 장황후는 이를 막고 선제의 동생(이후 숭정제)에게 황위를 넘기도록 하였다. 숭정제는 이러한 장황후를 존중하여 '의안황후'라는 존호를 바치고 황태후 급으로 예우하였다.
숭정 17년(1644년), 이자성의 난으로 북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숭정제는 마지막 조회를 열고 가족들에게 자결을 명했다. 숭정제는 직접 원귀비와 곤의공주를 칼로 살해하고, 장평공주의 팔을 잘랐다. 주황후는 숭정제의 명에 따라 목을 매 자결했고, 장황후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청나라 순치제의 명으로 장황후는 주씨와 함께 명나라 황후의 예로 장례가 치러져 순천부에 안장되었다. 남명 홍광제는 장황후에게 효애자정공혜온정해천협성철황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3. 사후
천계제가 붕어하고 숭정제가 즉위한 후에 의안황후(懿安皇后)라는 존호를 받았다.
명나라가 멸망한 후, 남명의 홍광제는 효애자정공혜온정해천협성철황후(孝哀慈靖恭惠溫貞偕天協聖悊皇后)로 추존하였으나, 청나라에서는 남명을 인정하지 않아 존호인 의안황후로 통용되었다. 능호는 덕릉(德陵)이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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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 이름 |
|---|---|
| 아들 | 주자연 (유산, 회충태자의 시호가 추증) |
5. 평가
6. 기타
* 황후로서:
** 회충황태자 주자연(1623년 11월 4일), 천계제의 첫째 아들
== 등장 작품 ==
* 명주유룡(2012년, 일본 미공개, 중국) - 출연: 오징이/吴静一중국어
* 환락무쌍 ~사랑하는 사건첩~(2014년, 중국) - 출연: 류옌
* 원숭환(2018년, 일본 미공개, 중국) - 출연: 채림 (배우)
== 시호, 존호, 능호 ==
천계제가 붕어하고 숭정제가 즉위한 후에 의안황후(懿安皇后)라는 존호를 받았다.
사후 명나라가 멸망한 후에, 남명의 홍광제에 의하여, 효애자정공혜온정해천협성철황후(孝哀慈靖恭惠溫貞偕天協聖悊皇后)로 추존되었고, 청나라에서는 남명을 인정하지 않아, 존호인 의안황후로 통용되었다. 능호는 덕릉(德陵)이다.
6.1. 등장 작품
* 명주유룡(2012년, 일본 미공개, 중국) - 출연: 오징이/吴静一중국어
* 환락무쌍 ~사랑하는 사건첩~(2014년, 중국) - 출연: 류옌
* 원숭환(2018년, 일본 미공개, 중국) - 출연: 채림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