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 나오노부
1. 개요
후지이 나오노부는 일본의 배구 선수로, 세터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미야기현 출신으로, 준텐도 대학 졸업 후 도레이 애로우즈에 입단하여 V.리그에서 활동했으며, 2016-17 시즌부터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2020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2017년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베스트 세터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23년 3월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일본 배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22-23 V.리그 디비전 1 남자부 파이널 경기 전 V 리그 특별상이 추서되었다.
| 이름 | 후지이 나오노부 |
|---|---|
| 로마자 표기 | Fujii Naonobu |
| 별칭 | 낙쿤 |
| 국적 | 일본 |
| 출생일 | 1992년 1월 5일 |
| 출생지 |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
| 사망일 | 2023년 3월 10일 (31세) |
| 신장 | 183cm |
| 체중 | 80kg |
| 혈액형 | O형 |
| 스파이크 높이 | 312cm |
| 블로킹 높이 | 297cm |
| 포지션 | 세터 |
| 손 | 오른손 |
| 소속 | 도레이 애로우즈 (2014–2022) |
|---|---|
| 등번호 | 클럽: #21 국가대표팀: #3 |
| 대학교 | 순천당대학교 |
|---|
| 국가대표팀 | 일본 (2017–2021) |
|---|
|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 | 금메달: 2017 그레시크 (팀) 은메달: 2021 지바/후나바시 (팀) 동메달: 2019 테헤란 (팀) |
|---|
-
일본의 남자 배구 선수 -
오쿠무라 와타루
오쿠무라 와타루는 일본의 배구 선수이며, 도쿄 베르디, 쓰쿠바 유나이티드 선 가이아, FC 도쿄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2014/15 V・챌린지 리그에서 스파이크상을 수상했다. -
일본의 남자 배구 선수 -
오기노 마사지
오기노 마사지는 일본의 배구 선수 및 지도자로, 산토리 선버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일본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출전,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에는 감독 및 배구 대사를 거쳐 대한민국 V리그 팀 감독으로 KOVO컵 우승을 달성했다. -
2023년 사망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미디어셋 설립, 포르차 이탈리아 창당, 친미 외교 정책, 탈세 및 성 스캔들 등 여러 법적 문제와 논란에 휘말렸다. -
2023년 사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위암으로 죽은 사람 -
이상화 (시인)
이상화는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작품을 통해 민족의 저항 의지를 표현했으며, 민족 시인으로서의 고뇌와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그의 작품과 정신은 현재에도 재평가되고 있다. -
위암으로 죽은 사람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7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2. 생애
후지이 나오노부는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가쓰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에는 스포츠 계열 부활동으로 배구부밖에 없어 배구부에 입부했다. 미야기현 후루카와 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준텐도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동일본 대지진으로 본가가 쓰나미 피해를 입어 가설주택을 전전했다. 가족이 실직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였지만, 대학의 학비 면제 등 구제 조치 덕분에 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후지이 나오노부는 준텐도 대학 재학 중이던 2013년 11월, V.프리미어 리그의 도레이 애로우즈에 내정 선수로 입단했다. 대학 졸업 후 정식으로 도레이 애로우즈에 합류하여 세터로 활동했다.
후지이 나오노부는 2016-17 시즌부터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등번호 3번으로 활약했다. 2017년 배구 월드 리그 포플라토 대회에서 시니어 국제 대회에 데뷔했으며, 2018년 배구 남자 세계 선수권 대회 예선 통과, 배구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베스트 세터 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2020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이 29년 만에 7위를 기록하는 데 공헌했다.
2021년 9월, 후지이 나오노부는 전 히타치 리바레 소속 배구 선수 사토 미야와 결혼했다. 2022년 2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위암 4기 진단을 받았으며 뇌 전이 사실을 공개했다. 투병 중에도 도레이 애로우즈 주장을 계속 맡는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치료비 모금 과정에서 관계자 간 조율 문제로 혼선이 빚어져 며칠 만에 중단되기도 했다.
2023년 3월 10일, 후지이는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일본 배구 협회(JVA)는 그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했으며, 일본 배구계는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2023년 4월 23일, 2022-23 V.리그 디비전 1 남자부 파이널 경기 전 시상식에서 V 리그 특별상이 추서되었다. 아내 사토 미야는 시상식에 참석하여 "지금까지 남편의 공적을 이런 형태로 기려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2.1. 유년 시절 및 학창 시절
후지이 나오노부는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가쓰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에는 스포츠 계열 부활동으로 배구부밖에 없어 배구부에 입부했다. 미야기현 후루카와 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준텐도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동일본 대지진으로 본가가 쓰나미 피해를 입어 가설주택을 전전했다. 가족이 실직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였지만, 대학의 학비 면제 등 구제 조치 덕분에 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2.2. 도레이 애로우즈 입단
후지이 나오노부는 준텐도 대학 재학 중이던 2013년 11월, V.프리미어 리그의 도레이 애로우즈에 내정 선수로 입단했다. 대학 졸업 후 정식으로 도레이 애로우즈에 합류하여 세터로 활동했다.
2.3. 국가대표 경력
후지이 나오노부는 2016-17 시즌부터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등번호 3번으로 활약했다. 2017년 배구 월드 리그 포플라토 대회에서 시니어 국제 대회에 데뷔했으며, 2018년 배구 남자 세계 선수권 대회 예선 통과, 배구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베스트 세터 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2020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이 29년 만에 7위를 기록하는 데 공헌했다.
2.4. 투병 및 사망
2021년 9월, 후지이 나오노부는 전 히타치 리바레 소속 배구 선수 사토 미야와 결혼했다. 2022년 2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위암 4기 진단을 받았으며 뇌 전이 사실을 공개했다. 투병 중에도 도레이 애로우즈 주장을 계속 맡는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치료비 모금 과정에서 관계자 간 조율 문제로 혼선이 빚어져 며칠 만에 중단되기도 했다.
2023년 3월 10일, 후지이는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일본 배구 협회(JVA)는 그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했으며, 일본 배구계는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2023년 4월 23일, 2022-23 V.리그 디비전 1 남자부 파이널 경기 전 시상식에서 V 리그 특별상이 추서되었다. 아내 사토 미야는 시상식에 참석하여 "지금까지 남편의 공적을 이런 형태로 기려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3. 선수 경력
후지이는 대학 졸업 후 세터로 도레이 애로우즈에 입단했다. 2016-17 시즌부터 그는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등번호 3번으로 활약했다. 2021년에는 202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팀은 29년 만에 7위로 대회를 마쳤다.
3.1. 클럽
후지이 나오노부는 대학 졸업 후 도레이 애로우즈에 세터로 입단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도레이 애로우즈에서 활동했다. 2016/17 V.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베스트 6에 선정되었다.
V.프리미어 리그 레귤러 라운드 개인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시즌 | 소속 | 출장 | 어택 | 블로킹 | 서브 | 리셉션 | 총 득점 | 비고 | |||||||||
|---|---|---|---|---|---|---|---|---|---|---|---|---|---|---|---|---|---|
| 경기 | 세트 | 타수 | 득점 | 결정률 | 효과율 | 결정 | /set | 타수 | 에이스 | 득점률 | 효과율 | 받은 횟수 | 성공률 | ||||
| 2014/15 | 도레이 | 21 | 72 | 13 | 9 | 69.2% | % | 15 | 0.21 | 251 | 3 | % | 10.1% | 6 | 0.0% | 27 | |
| 2015/16 | 21 | 72 | 23 | 9 | 41.2% | % | 20 | 0.28 | 226 | 5 | % | 9.5% | 4 | 0.0% | 37 | ||
| 2016/17 | 21 | 78 | 21 | 16 | 76.2% | % | 15 | 0.19 | 250 | 6 | % | 11.0% | 3 | 0.0% | 37 | ||
| 2017/18 | 21 | 80 | 9 | 6 | 66.7% | % | 12 | 0.15 | 299 | 13 | % | 7.7% | 6 | 0.0% | 31 | ||
| 2018/19 | % | % | % | % | % | ||||||||||||
3.2. 국가대표팀
후지이는 대학 졸업 후 세터로 도레이 애로우즈에 입단했다. 2016-17 시즌부터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등번호 3번으로 활약했다. 2017년에는 월드 리그와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에 출전했다. 2021년에는 202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팀은 29년 만에 7위로 대회를 마쳤다.
4. 수상 내역
* 개인
후지이 나오노부는 2017년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베스트 세터로 선정되었다. 2016/17 V・프리미어 리그 베스트 6에 선정되었고, 제19회 아시아 선수권 베스트 세터상을 수상했다. V.리그에서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 클럽
2016/2017 V.프리미어 리그 남자부에서 베스트 6에 선정되었으며, 토리 레이 애로우즈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4.1. 개인
후지이 나오노부는 2017년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베스트 세터로 선정되었다. 2016/17 V・프리미어 리그 베스트 6에 선정되었고, 제19회 아시아 선수권 베스트 세터상을 수상했다. V.리그에서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5. 플레이 스타일
후지이 나오노부는 미들 블로커를 활용한 빠른 공격 전개를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키가 컸기 때문에 공격적인 세터로 활약했다. 미들 블로커인 이하오와의 호흡이 잘 맞아 팬들이 뽑는 베스트 콤비로 선정되었으며, 2020/21 시즌과 2021/22 시즌에는 선수 간 투표에서 "공격수 & 세터 베스트 콤비 No.1"으로 선정되어 2년 연속 수상했다.
이전까지 사이드 공격 위주였던 일본 배구에 변화를 가져온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V리그에서도 퀵과 파이프 공격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배구의 흐름을 이끌었다. 특히 레프트로 보내는 토스의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6. 평가 및 영향
후지이 나오노부는 뛰어난 실력과 투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선수였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극복하고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미들 공격을 자주 사용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그전까지 사이드 공격이 주류였던 일본 배구를 바꾼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키가 컸기 때문에 공격적인 세터로 활약했다.
동레 애로우즈(東レアローズ)에 소속된 미들 블로커 이하오와의 호흡이 맞는 퀵으로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팬들이 뽑는 베스트 콤비로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동레 라인"이라고 불렸으며, 특기 공격은 세로 B 퀵이었다. 2020/21 시즌과 2021/22 시즌 선수 간 투표에서 "공격수 & 세터 베스트 콤비 No.1"으로 선정되어 2년 연속 수상했다.
V리그에서도 세로 퀵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퀵과 파이프 공격이 현대 배구의 주류가 된 가운데, 후지이는 양 사이드로의 토스, 특히 레프트로의 토스 정밀도를 높이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일본 배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배구의 흐름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업적과 정신은 일본 배구계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