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직
1. 개요
후직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인물로, 주나라의 시조이자 농업의 신으로 여겨진다. 제곡의 정비 강원의 아들로,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잉태되었다는 탄생 설화가 전해진다. 그는 농경에 능하여 순 임금을 섬기며 농사에 힘썼고, 후직이라는 직책을 받아 태에 봉해졌다. 후직은 주나라 왕실에서 존경받았으며, 후대의 농업 관련 인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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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신 -
호오리
호오리는 일본 신화에서 히코호호데미노 미코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신으로, 사냥꾼으로서 형과의 갈등, 류진의 딸 토요타마히메와의 사랑, 진무 천황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곡물의 신으로 숭배받고 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정치적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
음식의 신 -
호스세리노미코토
호스세리노미코토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니니기노미코토와 고노하나사쿠야히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호데리, 호오리와 함께 언급되고 호오리의 손자가 초대 진무 천황이다. -
산해경 -
구미호
구미호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 요괴로, 동아시아 설화에 등장하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상서로운 존재,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 악한 요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된다. -
산해경 -
봉래산
봉래산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영산으로, 불사신이 거주하는 곳이자 불로불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
농경의 남신 -
마르스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서 전쟁과 농업을 관장하는 신으로, 주피터와 유노의 아들이자 용기를 상징하는 네리오와 배우자 관계이며, 생명력과 야생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로 로마에서 숭배받았다. -
농경의 남신 -
신농
신농은 중국 신화에서 농업과 의학의 시조로 묘사되는 문화 영웅으로, 농업 기술과 약초 지식을 전파하고 한의학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동아시아에서 농업과 의학의 신으로 숭배받지만 역사적 실존 여부는 불분명하다.
2. 생애
후직의 본명은 기(棄)로, "버려졌다"는 뜻이다. 어머니 강원은 제곡의 정비였는데, 들판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그를 잉태했다. 강원은 아이를 여러 번 버렸으나, 짐승과 새들이 그를 보호하여 살아남았다. 이러한 탄생 설화는 부여의 건국 시조 동명왕의 이야기와도 매우 유사하다.
기는 성장하여 농경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순을 섬기며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순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후직'이라는 농업 담당 관직을 맡기고 태 지역에 봉했다. 이후 '후직'은 그의 이름이자 칭호가 되었다.
2.1. 탄생 설화
『사기』, 『산해경』, 『시경』 등에 따르면, 후직은 제곡의 정비(正妃) 강원의 아들로 전해진다. 강원은 들판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기(棄)를 잉태하였는데, 출산 후 아이를 여러 번 버렸으나 그때마다 짐승과 새들이 그를 보호하여 살아남았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서는 고신씨의 아들 중 하나로, 황제 혈통을 주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일본의 역사서 『위지』에는 부여의 건국 시조 동명왕 탄생 설화가 후직의 탄생 설화와 매우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 유사한 신화적 모티프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나이토 고난은 이러한 유사성이 부여족이 주나라의 설화를 차용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주변 민족의 전설이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2.2. 농업의 신
기는 성장하면서 농경을 좋아해 삼이나 콩을 심고 기뻐했다. 순을 섬기며 농사에 근무했다. 순 임금은 기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를 농업 담당 관직인 '후직'에 임명하고 태에 봉했다. 이후 '후직'은 그의 이름이자 칭호가 되었다. 그는 콩, 쌀, 삼, 호박, 여러 종류의 기장 등 다양한 작물의 풍작을 이끌었으며, 발효된 기장 맥주, 구운 양고기, 사철쑥을 이용한 봄 의례 희생을 도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3. 역사적 평가 및 의의
후직은 주나라 왕실의 조상으로 여겨져 시경에서 존경받았다. 주나라의 농업 대신들도 그를 기려 "후직"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사마천 같은 역사가들은 후직의 생애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했지만, 그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 풍성한 수확을 관장하는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3.1. 주나라의 시조
제곡의 정비 강원은 들에 나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1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강원은 갓난아이를 길에 버렸지만 소와 말이 밟으려 하지 않았고, 숲에 버리려 했지만 우연히 산림에 인파가 많아 실행하지 못했으며, 얼음 위에 버렸지만 새들이 갓난아이를 따뜻하게 해주는 등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자 아이를 기르기로 하고 기(弃)라고 이름 붙였다. 기는 기(棄)와 같은 의미의 글자이다. 『산해경』대강서경에 의하면 제준(帝俊, 제곡의 다른 이름으로 간주하는 설이 유력)의 아들로 여겨진다.
기는 성장하면서 농경을 좋아해 삼이나 콩을 심고 기뻐했다. 순을 섬기며 농사에 힘썼고, 후직이라는 직책을 맡아 태(邰)에 봉해졌다. 이후 후직이라고 불렸으며, 사후에는 아들 부줄이 뒤를 이었다.
후직은 주 왕실의 조상으로 여겨졌으며, 시경에서 존경받았다. "생민(生民)"은 시경 대아(大雅) 중 하나로 꼽힌다. 주나라의 농업 대신들도 그를 기려 "후직"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줄은 하 왕조에서 후직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부줄이 늙어감에 따라, 하 왕조는 우 임금(순(舜) 임금 아래에서 후직의 동료)의 후손으로 정치적으로 쇠퇴했고, 부줄은 그의 지위와 기장 농업을 버리고 서융과 북적 사이에서 살았다.
3.2. 문화적 영향
후직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 풍요와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후직의 생애를 비교적 합리적인 관점에서 서술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를 농업의 신으로 존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