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언해
1. 개요
훈민정음 언해는 훈민정음의 내용을 한문과 함께 한글로 풀이한 것으로, 15장으로 구성된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주요 판본으로는 월인석보본, 박승빈 소장본 등이 있으며, 훈민정음의 한문 원문, 각 글자에 대한 풀이, 한글 번역을 함께 제시하여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훈민정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서문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배경과 목적을 담고 있으며, 현대 한국어와 비교했을 때 닿소리, 홀소리, 표기 방식, 발음, 문법, 낱말의 의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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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본 -
두시언해
두시언해는 두보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 조선 성종 때 초간본이 간행되었으며, 한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총 52부로 구성되어 있다. -
언해본 -
내훈
내훈은 1475년 조선 성종 때 인수대비가 여성들을 위해 저술한 지침서로, 중국 고전에서 여성 규범의 핵심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되었으며,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와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현존하는 한국 여성 작가의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
한글 -
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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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체포하고 탄압한 사건으로, 이윤재, 최현배 등이 고문과 옥사를 당했으며, 한국어 사전 편찬에 차질을 빚었으나 광복 후 『조선어대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한국어 발전과 민족 문화 수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
훈민정음 -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언어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세조 즉위 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외교와 국방에 기여했으며, 《해동제국기》, 《동국정운》 등의 저술을 남기고 영의정을 지냈다. -
훈민정음 -
정인지
정인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고려사 등을 편찬했으며,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영의정을 역임했으나 단종 폐위에 가담한 행적으로 비판받았다.
2. 판본
훈민정음 언해는 대개 15장으로 되어 있다. 판본은 몇 가지가 전하고 있으며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월인석보》 1권의 책머리에 실려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으로 합본된 월인석보본과 박승빈이 가지고 있다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육당문고에 소장된 판본이 주로 활용되는 판본이다. 일본 궁내성과 일본인 학자가 가지고 있는 판본도 있다. 박승빈이 소장했던 언해본은 단행본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정밀한 조사에 의하면 『월인석보』 책머리 부분을 따로 제책한 것이다.
월인석보본은 두 가지 판본이 전하고 있다. 하나는 서강대학교에 소장하고 있는 판본인데, 이것이 원간본으로 보이며 예의 부분에 치두음과 정치음에 관한 규정이 새로 첨가되어 있다. 또 하나는 1572년(선조 5년) 경상북도 영주시 희방사(喜方寺)의 복각본(覆刻本)이며 이는 서강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보다 후세에 만들어진 듯하다. 서강대학교에 소장하고 있는 판본에서 새로 첨가된 부분이 있는 것은 중국의 한자음을 정리하기 위해 훈민정음 창제 이후 일부 규정을 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3. 표기
훈민정음 언해는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의 본문을 먼저 쓰고, 그 아래 한글로 협주를 단 뒤 한글로 새로이 한문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에 쓰인 한문을 읽은 뒤 그 한문의 각 글자 풀이를 읽고, 한글로 번역된 부분을 읽게 되는 것이다. 곧 한문을 모르더라도 훈민정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國之語音이"로 먼저 한문을 제시한 뒤, "國은 나라이다. 之는 입겿(어조사)이다."하는 식으로 한문의 각 글자에 대한 풀이를 하고 있다. 물론 각 글자에 대한 풀이로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 없는 경우 한자로 된 단어를 통째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자에 대한 풀이 후 "나라의 말이"로 완성된 번역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각 한자에는 아래에 작은 글자로 해당 한자의 소리를 적어놓고 있다. 간혹 한자만을 적거나 한글을 크게 적고 아래에 한자를 작게 적는 방식으로 표기한 문헌이 발견되지만 대개 이러한 방식이 훈민정음 이래 많은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한자어의 아래 작은 글자로 표기된 한글의 표기 방식은 동국정운식 표기로 불리는 것인데, 중국에서 사용되는 실제 중국 발음과 유사하게 적기 위한 표기라든지 초성, 중성, 종성이 모두 들어가야 하는 성음법을 지키고 있어 실제 사용되는 현실음의 표기와 다른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표기로 인해 고유어의 표기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4. 서문
| 한문 | 중세 한국어 | 현대 한국어 |
|---|---|---|
| 國之語音중국어이 異乎中國중국어ᄒᆞ야 與文字중국어로 不相流通중국어ᄒᆞᆯᄊᆡ〮 故중국어로〮 愚民중국어이〮 有所欲言중국어ᄒᆞ〮야도〮 而終不得伸其情者중국어ㅣ 多矣중국어라〮 予중국어ㅣ 爲此憫然중국어ᄒᆞ〮야〮 新制二十八字중국어ᄒᆞ〮노니〮 欲使人人중국어ᄋᆞ〮로〮 易習중국어ᄒᆞ〮야〮 便於日用耳중국어니라〮。 | 나랏〮말〯ᄊᆞ미〮 中國ko-KR에〮달아〮 文字ko-KR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 百姓ko-KR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 ᄒᆞᇙ 노〮미〮 하니〮라〮 내〮 이〮ᄅᆞᆯ〮 爲ko-KRᄒᆞ〮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字ko-KR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 사〯람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메〮 便安ko-KR킈〮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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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 한국어와 비교하기
훈민정음 언해본은 현대 한국어와 비교했을 때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문자의 사용, 표기 방식, 발음, 문법, 그리고 낱말의 의미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난다.
| 항목 | 훈민정음 언해 | 현대 한국어 |
|---|---|---|
| 문자의 차이 | ||
| 표기의 차이 | ||
| 발음의 차이 | ||
| 문법의 차이 | ||
| 낱말의 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