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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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흉갑은 가슴과 등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갑옷의 일종이다.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으며, 로마 시대부터 중세 유럽, 근세 및 현대 유럽, 일본 등 여러 문화권에서 사용되었다. 14세기 후반에는 판금 갑옷과 함께 널리 사용되었고, 이후 흉갑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다. 17세기에는 보병과 기병이 착용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중기병대의 퍼레이드 유니폼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4세기부터 흉갑이 제작되었으며, 사무라이 갑옷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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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로마 황제 갈바는 죽기 직전에 흉갑을 착용했다. 수에토니우스는 그의 저서 『12명의 황제 열전』에서 "갈바가 살해되기 전날 아침에 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점쟁이는 암살자들이 멀지 않으니 위험을 조심하라고 거듭 경고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오토가 진영을 장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기록했다.[2]
14세기 후반, 흉갑은 판금 갑옷과 함께 점차적으로 일반화되었고, 사슬 갑옷은 귀족 (예: 기사) 사이에서 점차 사라졌다. 흉갑은 갑옷의 한 형태로 수명 동안 거의 보편적으로 착용되었다.
15세기 초, 흉갑을 포함한 판금 갑옷은 외투 없이 착용하기 시작했지만, "타바드"라는 짧은 소매가 달린 외투가 갑옷 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15세기 중반, 흉갑은 두 부분으로 만들어졌고, 아래쪽은 위쪽과 겹쳐졌다. 15세기 후반에는 브리간딘 재킷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1550년경, 흉갑의 흉판은 ''타풀''이라는 수직 중앙 능선으로 특징지어졌다. 결국, 판의 윤곽은 완두콩과 비슷해져 완두콩 흉갑이라고 불렸다.[1] 잉글랜드 내전 (1642–1651) 동안에는 부유하고 강한 사람들만이 이러한 갑옷을 구입할 수 있었다.
17세기에 흉갑과 뒷판을 모두 갖춘 코슬릿은 보병이 착용했으며, 기병은 더 무겁고 강한 흉갑을 갖추었다. 흉갑은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중기병대는 퍼레이드 유니폼으로 흉갑을 착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전투에서 흉갑은 제거되었다. 워털루 전투 (1815) 이후, 런던 탑에 보관된 흉갑이 영국 육군의 근위 기병대와 블루스 앤 로열스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다.[1]
일본에서는 4세기부터 흉갑을 제작했다.[4] 헤이안 시대(794~1185) 말, 일본 흉갑은 사무라이 갑옷의 일부로 인식되었다. 1543년 총기 도입으로 단단한 철판 흉갑이 개발되었다. 사무라이 흉갑은 1860년대까지 사용되었으며, 국군이 창설되며 사라졌다.[6]
2. 1. 고대
헬레니즘 시대와 고대 로마 시대에는 남성 몸통의 근육을 본뜬 근육 흉갑[2]이 유행했다. 이는 "영웅 흉갑" (프랑스어로는 ''cuirasse esthétique'')이라고도 불렸으며, 아우구스투스 of Prima Porta와 같은 로마 조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부조 장식이 추가되기도 했다.[3] 고대 고전 시대에는 청동, 철 등 단단한 재질로 만든 흉갑과 코르셋이 실제 군사 장비로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 황제 갈바는 죽기 직전에 린넨 흉갑을 착용했다. 수에토니우스의 『12명의 황제 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갈바가 살해되기 전날 아침, 점쟁이는 암살 위험을 경고했다. 얼마 후 오토가 진영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략) 갈바는 많은 칼날로부터 거의 보호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했지만, 린넨 흉갑을 착용했다."
역사적인 흉갑은 현대 복제품과 달리 엉덩이까지 내려오지 않고, 복부 또는 배꼽 근처에서 끝났다. 이는 착용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허리 아래 부분은 사슬 갑옷이나 폴드로 보호했다.
2. 2. 중세 유럽
14세기 후반, 흉갑은 사지와 함께 사용되는 판금 갑옷과 함께 점차 일반화되었고, 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사슬 갑옷이 바시넷의 카마일과 호버크의 가장자리를 제외하고 귀족 (예: 기사) 사이에서 점차 사라졌다. 흉갑은 갑옷의 한 형태로 수명 동안 거의 보편적으로 착용되었다. 캔터베리 대성당에 있는 흑태자 에드워드의 조각상에서 흉갑과 호버크가 모두 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주퐁 (외투)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1]역사적인 흉갑은 현대 복제품과 달리 엉덩이에 닿지 않고, 복부 또는 배꼽 근처에서 멈추어 착용자의 충분한 움직임을 허용했다. 허리에서 끝나는 흉갑은 착용자가 앞, 뒤, 옆으로 기울이는 능력을 심각하게 제한하므로, 나머지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사슬 갑옷이나 폴드가 사용되었다.

15세기 초, 흉갑을 포함한 판금 갑옷은 외투 없이 착용하기 시작했지만, 세기의 마지막 분기에는 "타바드"로 알려진 짧은 소매가 달린 짧은 외투가 갑옷 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외투가 사라지는 동안,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작은 판 (항상 쌍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음, 즉, 칼을 든 팔의 판은 반대쪽 손의 판보다 작고 가벼움)은 어깨 앞쪽에 갑옷에 부착되어 판 갑옷 방어가 틈을 남겨 취약했던 부분을 방어했다.[1]
15세기 중반 쯤, 흉갑의 흉갑은 두 부분으로 만들어졌고, 아래쪽은 위쪽과 겹쳐지도록 조정되었고, 사슬 갑옷보다 판 갑옷이 가진 장점에 유연성을 더하기 위해 끈이나 슬라이딩 리벳으로 함께 고정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흉갑이 때때로 브리간딘 재킷, 즉 방탄복의 중세 선구자로 대체되었다. 브리간딘 재킷은 금속 판을 천 재킷에 꿰매어 제작되었으며, 천은 일반적으로 화려한 재료였다. 겉면에 스터드처럼 머리가 보이는 리벳으로 재킷에 부착된 금속 조각이 겹쳐져 안감을 이루고 있었다.[1]

1550년경, 흉갑의 흉판은 중앙에 돌출된 점이 있는 ''타풀''이라고 불리는 수직 중앙 능선으로 특징지어졌다. 약간 늦게, ''타풀''은 흉판 아래쪽으로 옮겨졌다. 결국, 판의 윤곽은 완두콩과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완두콩 흉갑이라고 불렸다.[1] 잉글랜드 내전 (1642–1651) 동안, 가장 부유하고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들만이 이러한 종류의 갑옷을 구입할 수 있었다.
흉갑과 뒷판을 모두 갖춘 코슬릿은 17세기에 보병이 착용했으며, 말을 탄 동료들은 더 무겁고 강한 흉갑을 갖추었다. 이러한 방어구는 다른 어떤 단일 갑옷보다 오래 사용되었다. 그 사용은 결코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으며, 현대 군대에서 중세 기사도 시대의 갑옷의 화려함을 어느 정도 모방한, 흉부 및 뒷판이 장착된 기병대가 사용되었다.[1]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중기병대는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퍼레이드 유니폼의 일부로 흉갑을 착용했다. 비록 분쟁 초기에 프랑스군은 여전히 전투에 흉갑을 착용했지만, 대부분 날씨로부터 보호하고 적의 시인성을 줄이기 위해 천 캔버스로 덮었으며, 그들의 화려한 신 로마 스타일 헬멧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모든 군대는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전투에서 흉갑을 제거했다.
워털루 전투 (1815) 몇 년 후, 런던 탑에 보관되어 있던 특정 역사적인 흉갑이 꺼내져 영국 육군의 근위 기병대와 블루스 앤 로열스가 의식용으로 사용하도록 개조되었다.[1]
퍼레이드용으로 프로이센 근위대 및 기타 군단은 화려하게 장식된 가죽 흉갑을 착용했다.[1] 교황 스위스 근위대는 여전히 서약식, 크리스마스 및 부활절에 흉갑을 착용한다.
2. 3. 근세 및 현대 유럽
14세기 후반, 흉갑은 사지와 함께 사용되는 판금 갑옷과 함께 점차 일반화되었고, 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사슬 갑옷이 바시넷의 카마일과 호버크의 가장자리를 제외하고 귀족(기사) 사이에서 점차 사라졌다. 흉갑은 갑옷의 한 형태로 수명 동안 거의 보편적으로 착용되었다. 캔터베리 대성당에 있는 흑태자 에드워드의 조각상에서 흉갑과 호버크가 모두 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주퐁(외투)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1]역사적인 흉갑은 현대 복제품과 달리 엉덩이에 닿지 않았다. 착용자의 충분한 움직임을 허용하기 위해 복부 또는 배꼽 근처에서 멈추었다. 허리에서 끝나는 흉갑은 착용자가 앞, 뒤, 옆으로 기울이는 능력을 심각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나머지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사슬 갑옷이나 폴드가 사용되었다.
15세기 초, 흉갑을 포함한 판금 갑옷은 외투 없이 착용하기 시작했지만, 15세기 말에는 "타바드"로 알려진 짧은 소매가 달린 짧은 외투가 갑옷 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외투가 사라지는 동안,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작은 판(항상 쌍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음. 칼을 든 팔의 판은 반대쪽 손의 판보다 작고 가벼움)이 어깨 앞쪽에 갑옷에 부착되어 판 갑옷 방어가 틈을 남겨 취약했던 부분을 방어했다.[1]
15세기 중반 쯤, 흉갑의 흉갑은 두 부분으로 만들어졌고, 아래쪽은 위쪽과 겹쳐지도록 조정되었고, 사슬 갑옷보다 판 갑옷이 가진 장점에 유연성을 더하기 위해 끈이나 슬라이딩 리벳으로 함께 고정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흉갑이 때때로 브리간딘 재킷(방탄복의 중세 선구자)으로 대체되었다. 브리간딘 재킷은 금속 판을 천 재킷에 꿰매어 제작되었다. 천은 일반적으로 화려한 재료였으며, 겉면에 스터드처럼 머리가 보이는 리벳으로 재킷에 부착된 금속 조각이 겹쳐져 안감을 이루고 있었다.[1]
1550년경, 흉갑의 흉판은 중앙에 돌출된 점이 있는 ''타풀''이라고 불리는 수직 중앙 능선으로 특징지어졌다. 약간 늦게, ''타풀''은 흉판 아래쪽으로 옮겨졌다. 결국, 판의 윤곽은 완두콩과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완두콩 흉갑이라고 불렸다.[1] 잉글랜드 내전(1642–1651) 동안, 가장 부유하고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들만이 이러한 종류의 갑옷을 구입할 수 있었다.
흉갑과 뒷판을 모두 갖춘 코슬릿은 17세기에 보병이 착용했으며, 말을 탄 동료들은 더 무겁고 강한 흉갑을 갖추었다. 이러한 방어구는 다른 어떤 단일 갑옷보다 오래 사용되었다. 그 사용은 결코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으며, 현대 군대에서 중세 기사도 시대의 갑옷의 화려함을 어느 정도 모방한, 흉부 및 뒷판이 장착된 기병대가 사용되었다.[1]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중기병대는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퍼레이드 유니폼의 일부로 흉갑을 착용했다. 비록 분쟁 초기에 프랑스군은 여전히 전투에 흉갑을 착용했지만, 대부분 날씨로부터 보호하고 적의 시인성을 줄이기 위해 천 캔버스로 덮었으며, 그들의 화려한 신 로마 스타일 헬멧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모든 군대는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전투에서 흉갑을 제거했다.
워털루 전투(1815) 몇 년 후, 런던 탑에 보관되어 있던 특정 역사적인 흉갑이 꺼내져 영국 육군의 근위 기병대와 블루스 앤 로열스가 의식용으로 사용하도록 개조되었다.[1]
퍼레이드용으로 프로이센 근위대 및 기타 군단은 화려하게 장식된 가죽 흉갑을 착용했다.[1] 교황 스위스 근위대는 여전히 서약식, 크리스마스 및 부활절에 흉갑을 착용한다.
2. 4. 일본
일본에서는 4세기부터 흉갑을 제작했다.[4] 보병이 착용한 단고와 기병이 착용한 케이코는 모두 초기 일본 흉갑의 전(前) 사무라이 형태였으며, 가죽 끈으로 연결된 철판으로 제작되었다. 헤이안 시대(794~1185)에 일본 갑옷 제작자들은 가죽을 재료로 사용하고 옻칠을 하여 내후성을 높였다.헤이안 시대 말기에 일본 흉갑은 상징적인 사무라이 갑옷의 일부로 인식되는 형태로 발전했다. 사무라이 갑옷은 실 끈으로 묶인 철과 가죽 비늘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5] 1543년 일본에 총기가 도입되면서 단단한 철판으로 제작된 흉갑이 개발되었다. 사무라이 흉갑은 1860년대까지 사용되었으며, 이때 일반적인 제복과 무기를 사용하는 국군이 창설되었다.[6] 사무라이 갑옷은 사쓰마 전쟁(1877)에서 마지막으로 전투에 착용되었다.[7]
참조
[1]
OED
cuirasse
[2]
서적
The Twelve Gods of Greece and Rome
Brill
1987
[3]
서적
The Nude: A Study in Ideal Form
1956
[4]
서적
Sacred Texts and Buried Treasures: Issues in the Historical Archaeology of Ancient Japa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8-06-03
[5]
서적
Oriental armour
https://books.google[...]
Courier Corporation
2017-06-03
[6]
서적
The Connoisseur's Book of Japanese Swords
https://books.google[...]
Kodansha International
1997-06-03
[7]
서적
Samurai: The Weapons and Spirit of the Japanese Warrior
https://books.google[...]
Globe Pequot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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