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왕 (발해)
1. 개요
희왕은 발해의 제10대 국왕으로, 정왕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 812년 당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정왕의 죽음을 알렸으며, 연호를 주작으로 정했다. 당나라 내시 이중민이 발해를 방문했고, 당나라는 대언의를 발해 국왕으로 책봉했다. 재위 기간 동안 당나라와 빈번한 외교를 펼쳤으며, 불교를 장려하여 금은 불상을 당나라에 보내기도 했다. 또한 일본에도 사절단을 파견하여 문화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 발해사 정사 왕효렴의 시가 《문화수려집》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강왕의 아들이며, 정왕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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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년 사망 -
교황 스테파노 4세
스테파노 4세는 로마 귀족 출신으로 레오 3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어 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1세에게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여 교황의 권위를 높이고 교회 개혁에 힘썼다. -
817년 사망 -
이하 (당나라)
이하는 당나라 중기의 시인으로, 14세에 문학적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와 같은 발음의 글자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과거 시험에 불합격했으나, 독특한 시풍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발해 국왕 -
대현석
대현석은 대야발의 7대손이자 발해의 왕으로, 일본과 교역하고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
발해 국왕 -
대이진
대이진은 발해의 제11대 왕으로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문물 교류에 힘썼고, 중앙 집권적인 행정 제도를 확립하고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국가 체제를 강화하려 했다.
2. 생애
정왕의 아우이다. 812년 형인 정왕이 병으로 사망하자 권지국무(權知國務)로서 국정을 맡았고, 이후 정식으로 즉위하였다. 연호는 주작(朱雀)을 사용하였다. 재위 중 당나라 및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였고 불교를 장려하였다. 구체적인 왕위 계승 과정이나 각국과의 교류 내용, 불교 장려 정책 등은 하위 문단에서 상세히 다룬다.
2.1. 왕위 계승
정왕이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아들 대연진이 있었음에도 아우인 대언의가 왕위를 계승하여 국정을 맡았다. 정왕의 아들 대신 동생인 대언의가 왕위를 계승한 정확한 이유는 구당서, 신당서, 발해고 등 관련 사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명확히 알 수 없다.
대언의는 812년 1월 당나라에 사절단을 보내 선왕 정왕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후 즉위하여 연호를 주작(朱雀)으로 정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대언의는 당나라로부터 정식으로 발해 국왕에 책봉되기 전까지 권지국무(權知國務)의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 구당서 199권에는 813년 1월, 당나라가 정왕의 동생인 언의(대언의)를 권지국무로 삼고, 이후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도독, 발해국왕의 직책에 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당나라는 내시 이중민(李重旻)을 발해에 파견하였다.
희왕 대언의는 재위 기간 동안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주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때 파견된 사절단에는 왕족을 포함한 발해의 주요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시기 발해에서는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는데, 813년에는 고례진(高禮進) 등 37명을 당나라에 보내 금으로 만든 불상과 은으로 만든 불상 각 1구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깊이 귀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되며, 실제로 발해의 여러 유적에서는 많은 동불(銅佛)과 전불(塼佛)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일본과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경제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당시 발해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왕효렴(王孝廉)이 지은 한시는 일본의 시집인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2.2. 당나라와의 관계
정왕이 병으로 죽자, 아우인 대언의가 나랏일을 맡고, 812년 1월 당나라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해 선왕의 죽음을 알렸다. 정왕의 아들 대연진 대신 동생 대언의가 계승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후 즉위한 대언의는 연호를 주작(朱雀)으로 정하고, 다음 해 당나라의 내시인 이중민(李重旻)이 다녀갔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같은 달 당나라에서 발해왕으로 봉하기 전까지 권지국무(權知國務)였다 한다. 구당서 199권에 의하면 813년 1월 정왕의 동생 언의(言義)를 권지국무에 봉하고 나중에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도독, 발해국왕에 봉했다 한다. 그리고 당나라에서는 내시 이중민(李重旻)을 발해로 파견했다 한다.
희왕 재위 동안 당나라에 자주 사절단을 보냈다. 희왕 시대에 당나라와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져 빈번하게 사신을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신단에는 왕족을 포함한 고위 인사가 많이 포함되었다. 또한 이 시대 교류의 특징으로는 불교의 융성이 있다. 813년(주작 원년)에는 고례진(高禮進) 등 37명을 당나라에 입조하게 하여, 발해산 금은 불상 각 1체를 헌상했다. 이 일은 왕실의 불교 귀의를 방증하는 것이며, 실제로 발해의 유적에서는 다량의 동불(銅佛)과 전불(塼佛, 벽돌로 구운 불상)이 출토되고 있다.
2.3. 불교 장려
희왕 재위 기간에는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다. 813년에는 고례진(高禮進) 등 37명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발해에서 만든 금 불상과 은 불상 각 1구를 선물하였다. 이는 발해 황실이 불교에 귀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지며, 실제로 발해 유적에서는 다량의 동, 도제 불상이 출토되고 있다.
2.4. 일본과의 교류
희왕 대언의는 재위 기간 동안 일본에도 적극적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교류하였다. 이러한 교류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당시 발해사의 정사(正使)였던 왕효렴(王孝廉) 등이 지은 한시(漢詩)가 일본의 시문집인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실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3. 가계
* 부왕: 강왕
형 : 정왕
* 조카: 대연진
희왕
* 아들: 대연준
** 동생 : 간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