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총선 - 2006년 이탈리아 총선 2006년 이탈리아 총선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중도우파 '자유의 집'과 로마노 프로디의 중도좌파 '연합' 간 대결로, 경제 정책 등을 쟁점으로 치러져 '연합'의 승리로 로마노 프로디가 총리에 취임하며 이탈리아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온 선거이다.
이탈리아의 총선 - 1919년 이탈리아 총선 1919년 이탈리아 총선은 '비엔니오 로소' 시기에 치러져 이탈리아 사회당과 이탈리아 민중당이 약진하고 비례대표제 도입 및 유권자 기준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자유연합의 분열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베니토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Riforma elettorale italiana del 1912이탈리아어으로 유권자가 대폭 확대되었다. 육군이나 해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21세 이상 남성(나이 무관)과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30세 이상 남성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선거 유권자는 1909년 이탈리아 총선 당시 293만 명에서 844만 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선거제도 자체는 2차 투표에 소선거구제로 유지되었다.
이전까지 이탈리아 정계를 지배해 왔던 역사적 좌파(자유주의, 진보 성향)와 역사적 우파(보수주의, 왕당파 성향)는 조반니 졸리티의 지도력 하에 자유연합이라는 자유주의-중도주의 성향의 거대 정당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러한 세력 연합은 이른바 '트라스포르미스모'(Trasformismo)라 불렸으며, 원내 정파세력의 대결을 배제하고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자유주의 세력이 원내 압승을 거두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나의 연합으로 통합되었지만, 내부적으로 자유파와 보수파의 두 세력이 잔존했으며, 시드네이 소니노와 조반니 졸리티가 번갈아 가며 내각을 꾸렸다. 당시 언론에서는 총리가 카멜레온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자유연합은 이탈리아 급진당, 헌법민주당, 이탈리아 개혁사회당과 연립내각을 이루어 집권했다. 이에 반대하던 군소야당 세력으로는 바티칸계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의 이탈리아 가톨릭 선거연합과 이탈리아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성향의 극좌 세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