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공기 참사
1. 개요
1993년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공기 참사는 1993년 4월 27일,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태운 잠비아 공군 소속 항공기가 가봉 리브르빌 인근 해상에 추락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선수, 코칭 스태프, 관계자, 승무원 등 30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엔진 정지로 밝혀졌으며, 희생자 중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들과 1992년 잠비아 올해의 유망주 선수 등이 포함되었다. 사고 이후 잠비아는 199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재건 노력을 보였으며,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하여 희생자들을 기렸다.
| 사고 명칭 | 가봉 항공 참사(Gabon Air Disaster) |
|---|---|
| 발생 일시 | 1993년 4월 27일 |
| 사고 종류 | 비행 중 엔진 화재 후 추락 |
| 발생 위치 | 대서양, 가봉 리브르빌 해안 |
| 좌표 | 0.618135° N, 9.312716° E |
| 탑승자 | 30명 |
| 승객 | 25명 |
| 승무원 | 5명 |
| 사망자 | 30명 (전원) |
| 생존자 | 0명 |
| 기종 | 데 하빌랜드 캐나다 DHC-5D 버팔로 |
|---|---|
| 운영 주체 | 잠비아 공군 |
| 기체 번호 | AF-319 |
| 출발지 | 잠비아 루사카 |
| 경유지 | 콩고 공화국 브라자빌 가봉 리브르빌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
| 목적지 | 세네갈 다카르 |
| 원인 | 조종사 과실, 항공용 엔진 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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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건 | 축구 선수가 항공 사고로 사망한 사례로는 1949년 5월 4일에 토리노 FC의 선수 18명이 사망한 사고(스페르가의 비극), 1958년 2월 6일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선수 8명이 사망한 사고(뮌헨 비행기 참사), 1979년 8월 11일에 FC 파흐타코르 타슈켄트의 선수 17명이 사망한 사고(드니프로제르진스크 공중 충돌 사고), 1987년 12월에 알리안사 리마의 선수 19명이 사망한 사고(), 2016년 11월 28일에 아소시아상 샤페코엔시 지 푸테볼의 감독 및 선수 71명이 사망한 사고(라미아 항공 2933편 추락 사고) 등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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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항공 사고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 여객기가 태풍 속에서 목포공항 인근 운거산에 추락하여 116명 중 68명이 사망했으며, 조종사 과실과 목포공항의 열악한 환경이 원인으로 지목되어 무안국제공항 건설의 계기가 되었다. -
1993년 항공 사고 -
중화항공 605편 추락 사고
1993년 태풍 아이라의 영향으로 홍콩 카이탁 공항에 착륙하던 중화항공 605편 보잉 747-409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여 빅토리아 항에 추락, 탑승자 296명 중 23명이 경상을 입었고 조종사 과실과 미흡한 착륙 절차로 인해 발생한 사고로 기체는 전손 처리되었다. -
잠비아의 축구 -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29년 영국령 북로데시아 협회로 시작해 1964년 독립 후 현재의 모습을 갖춘 잠비아 대표팀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과 COSAFA컵 7회 우승 등 아프리카 지역 대회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
잠비아의 축구 -
잠비아 축구 협회
잠비아 축구 협회는 1929년에 설립되어 FIFA에 가입했으며, 잠비아 프리미어리그를 운영하고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며,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했다. -
1993년 4월 -
1993년 유럽 그랑프리
1993년 유럽 그랑프리는 일본 아시아 그랑프리 무산 후 영국 도닝턴 파크에서 8년 만에 개최된 포뮬러 원 시즌 세 번째 레이스로, 아일톤 세나가 궂은 날씨 속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세가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 소닉 더 헤지혹 트로피를 제작하는 등 대규모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
1993년 4월 -
다카라즈카 가극단 79기생
다카라즈카 가극단 79기생은 1993년 입학하여 1995년 졸업한 49명의 학생들로, 전 톱스타 미즈 나츠키, 오오토리 레이, 현 호시구미 조장 미키 치구사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조에서 남역과 여역으로 활약한 기수이다.
2. 사고 발생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4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세네갈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잠비아 공군 소속의 DHC-5 버팔로 수송기(AF-319)를 이용했다. 이 비행기는 브라자빌, 리브르빌, 아비장을 경유할 예정이었다.
첫 번째 기착지인 브라자빌에서 엔진 문제가 발견되었지만, 비행은 계속되었다. 리브르빌에서 이륙한 지 몇 분 후 왼쪽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여 고장났다. 조종사는 실수로 정상 작동하는 오른쪽 엔진을 꺼버렸고, 비행기는 리브르빌 공항에서 500m 떨어진 바다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잠비아 대표팀 선수 18명, 감독 및 스태프, 승무원 5명 등 탑승자 30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기는 군용기였기 때문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지 않아 가봉 공군의 조사는 난항을 겪었다.
2.1. 사고 원인
2003년 11월, 가봉 국방성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AF-319기의 왼쪽 엔진 결함을 지적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기체 상태 표시등의 노후화로 인한 조종사의 오조작이었다. 조종사는 고장난 경고등 때문에 실제로는 정상 작동하는 오른쪽 엔진을 정지시켜 비행기가 추력을 잃고 추락했다. 또한, 조종사는 비행 전날 모리셔스에서 귀환한 직후여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한편, 잠비아 정부는 항공 사고의 완전한 보고서를 공표하지 않았고, 유족들은 정부에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3. 희생자
1993년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공기 참사로 고드프리 치탈루 감독과 알렉스 촐라 코치를 포함한 코칭 스태프, 선수 18명, 승무원, 잠비아 축구 협회 회장 및 기자 등 30명 전원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를 4-0으로 꺾었던 골키퍼 데이비드 차발라와 미드필더 더비 마킨카를 포함한 6명의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992년 잠비아 올해의 유망주 선수였던 미드필더 모세스 치크왈라크왈라도 희생되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뛰고 있던 칼루샤 부왈야, R.S.C. 안데레흐트의 찰스 무손다, FC 뷜의 존슨 부왈야 등은 유럽 클럽에서 별도로 이동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참사를 피했다.
사고 후 수습된 시신은 24구였으나, 이 중 13구만 신원이 확인되었다.
3.1. 선수
| 선수 | 포지션 | 나이 |
|---|---|---|
| 데이비드 차발라 | GK | 33 |
| 리처드 음완자 | GK | 33 |
| 존 소코 | DF | 24 |
| 화이트선 창웨 | DF | 28 |
| 로버트 와티야케니 | DF | ? |
| 새뮤얼 촘바 | DF | 29 |
| 케난 시맘베 | DF | ? |
| 윈터 뭄바 | DF | ? |
| 에스턴 물렝가 | MF | 25 |
| 더비 마킨카 | MF | 27 |
| 모세스 치크왈라크왈라 | MF | 23 |
| 위스덤 뭄바 찬사 | MF | 29 |
| 눔바 음윌라 | MF | 30 |
| 고드프리 캉와 | MF | ? |
| 켈빈 무탈레 | FW | 23 |
| 티머시 음위트와 | FW | 24 |
| 모세스 마수와 | FW | 32 |
| 패트릭 반다 | FW | 19 |
이들 중 상당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여 이탈리아를 4-0으로 꺾는 등 잠비아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었다.
3.2. 코칭 스태프
| 이름 | 나이 | 직책 | 국적 |
|---|---|---|---|
| 고드프리 치탈루 | 45 | 감독 | Zambia영어 |
| 알렉스 촐라 | 36 | 코치 |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영어 |
| 윌슨 음통가 | 팀 닥터 | ||
| 윌슨 사카라 |
사고 당시 대표팀 감독은 고드프리 치탈루, 코치는 알렉스 촐라였다. 이들을 포함한 코칭 스태프 전원이 사고로 사망했다.
3.3. 승무원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군 수송기를 이용해 이동했기 때문에, 이 항공기의 승무원은 전원 군인이었다.
| 이름 | 직책 | 계급 |
|---|---|---|
| 펜턴 모네 | 기장 | 대령 |
| 빅터 무함바 | 조종사 | 중령 |
| 제임스 사치카 | 조종사 | 중령 |
| 에드워드 남보트 | 정비공 | 준위 |
| 톰슨 사카라 | 스튜어드 | 상병 |
이 사고로 승무원 5명을 포함한 탑승객 30명 전원이 사망했다.
3.4. 기타 희생자
| 이름 | 신분 | 비고 |
|---|---|---|
| 마이클 음와페 | 저널리스트, 기자 | F.A.Z지 사장 |
| 넬슨 심바 | 공무원 | 잠비아 축구 협회 소속 |
| 조지프 브왈라 셀림 | 저널리스트 |
4. 사고의 여파
이 사고로 1994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잠비아 대 세네갈전이 1993년 8월 7일로 연기되었다. 이 여파로 잠비아는 세네갈과의 원정 경기에서 비겨 모로코에 승점이 밀려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5. 추모
사고로 사망한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루사카에 있는 독립 경기장 바로 외곽에 있는 "영웅의 묘역"에 묻혔다.
2012년, 잠비아는 사고 현장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리브르빌에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했다. 이 승리는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헌정되었다. 잠비아는 연장전까지 0-0으로 경기를 마친 후 승부차기에서 코트디부아르를 8-7로 꺾었다.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은 가봉과 적도 기니 두 나라에서 개최되었으며, 잠비아 대표팀은 1994년 대회 이후 18년 만에 결승에 진출하여 코트디부아르 대표팀과 맞붙게 되었다. 2월 9일, 잠비아 축구 협회 회장인 칼루샤 부왈랴와 잠비아 대표팀 선수들은 사고 현장과 가까운 리브르빌 해변을 방문하여 희생자를 추모했다. 2월 12일에 열린 결승전은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 끝에 잠비아 대표팀이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꺾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사고는 2015년 스페인/잠비아 다큐멘터리 영화 Eighteam의 주제였으며, 후안 로드리게스-브리소 감독이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