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
1. 개요
1998년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은 케냐가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대회로, 필립 보이트 한 명의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스키 종목에 출전했다. 보이트는 나이키의 후원을 받아 육상 선수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훈련받았으며, 경기 중 폭우와 젖은 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노르웨이의 비에른 데일리가 그를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모습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보이트는 92위로 경기를 마쳤으며, 이후 케냐의 유명 인사가 되어 두 번의 동계 올림픽에 더 참가했다.
| NOC | KEN |
|---|---|
| NOC 명칭 | 케냐 올림픽 위원회 |
| 대회 | 동계 올림픽 |
| 연도 | 1998 |
| 개최지 | 나가노 |
| 참가 선수 | 1명 |
| 참가 종목 | 1개 |
| 기수 | 필립 보잇 |
| 금메달 | 0 |
| 은메달 | 0 |
| 동메달 | 0 |
| 하계 올림픽 참가 횟수 | 자동 계산 |
| 동계 올림픽 참가 횟수 | 자동 계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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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케냐 -
1998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98년 8월 7일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미국 대사관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며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국제 테러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 -
2018년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케냐는 알파인 스키 여자 종목에 사브리나 시마더, 남자 알파인 스키 종목에 사브리노 마르골리니를 파견했으며, 특히 시마더는 케냐 동계 올림픽 스키 종목 첫 참가 선수였다. -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 -
2006년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
2006년 동계 올림픽 케냐 선수단은 케냐가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 것으로, 남자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필립 보이트가 참가하여 15km 클래식 크로스컨트리 스키 경기에서 91위를 기록하고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기수를 맡았다. -
1998년 동계 올림픽 선수단 -
1998년 동계 올림픽 버뮤다 선수단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버뮤다 선수단은 남자 루지 선수 패트릭 싱글턴 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는 루지 남자 싱글 경기에서 27위를 기록했다. -
1998년 동계 올림픽 선수단 -
1998년 동계 올림픽 중화인민공화국 선수단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중화인민공화국 선수단은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천루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총 1개의 메달을 획득했고, 남자 싱글과 페어 종목에서도 각각 8위와 5위를 기록했다.
2. 배경
케냐는 1956년 멜버른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후 9번의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1998년 동계 올림픽은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케냐의 첫 동계 올림픽 참가였다. 케냐는 이 대회에 유일한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필립 보이트를 파견했다.
2.1. 필립 보이트의 선발 과정
필립 보이트와 헨리 비토크는 모두 미국의 스포츠 용품 회사인 나이키가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훈련시키고자 스카우트한 육상 선수였다. 보이트는 스카우트된 후, 이전에 눈을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케냐에서 처음에는 롤러 스키로 훈련을 받았다.
그 후 핀란드로 이동하여 눈 위에서 훈련을 했다. 보이트는 나중에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다. 평생 그렇게 추운 날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고, 스키를 신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설명했다. 나이키의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는데, 일부는 이 이야기를 1988년 동계 올림픽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 이야기에 비유했고, 반면 디트로이트 뉴스의 밥 보이노스키는 "이들은 자금력이 있는 홍보 담당자들이 지원하는 마케팅 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보이트와 비토크에 대한 후원은 핀란드에서 그들의 훈련, 숙박 및 장비를 위해 200000USD로 구성되었다. 나이키가 핀란드 육상 선수를 케냐로 보내 훈련을 시켰으니,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훈련 후, 두 선수 모두 동계 올림픽 출전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케냐는 보이트를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시키기 위해 자동 출전권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올림픽 직전, 보이트는 위장 문제로 입원하여 2주 동안 훈련을 놓쳤다.
3.1. 크로스컨트리 스키
필립 보잇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10km 클래식 경기에 출전한 유일한 케냐 선수였다. 2월 12일 나가노현 하쿠바의 스노우 하프 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보잇은 경기 시작 당시 폭우로 인해 젖은 눈에서 경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여러 번 넘어졌다.
노르웨이의 비에른 데일리가 금메달을 땄지만, 보잇이 아직 경주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영했다. 보잇은 47분 25.25초로 92위를 기록했다. 데일리는 보이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보잇은 귀국 후 케냐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 경기 | 선수 | 경기 | |
|---|---|---|---|
| 시간 | 순위 | ||
| 남자 10 km 클래식 | 필립 보잇 | 47:25.25 | 92 |
4. 1998년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경기 결과
케냐의 유일한 선수였던 필립 보잇는 남자 10km 클래식 크로스컨트리 스키 경기에 출전했다. 경기는 2월 12일 나가노현 하쿠바의 스노 하프 경기장에서 열렸는데, 경기 시작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보잇는 젖은 눈에서의 경주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이후 여러 번 넘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덕을 오르면서 스키에 눈이 뭉쳤다. 마치 하이힐을 신은 것 같았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4.1. 비에른 데일리와의 만남
남자 10km 클래식 크로스컨트리 스키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노르웨이의 비에른 데일리는 시상대에 오르기 직전, 케냐의 필립 보이트 선수가 아직 경주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데일리는 보이트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환영했다. 보이트는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관중들의 반응에 대해 "마치 내가 마지막이었지만 메달을 따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데일리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약 20분 후, 데일리는 보이트를 껴안았다. 보이트는 즉시 데일리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데일리는 보이트가 다음 올림픽에서 자신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데일리는 보이트에 대해 "그는 격려받을 자격이 있다. 그에게는 어려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보이트는 귀국 후 케냐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고, 2011년까지 프로 스키 선수로 활동하며 두 번의 동계 올림픽에 더 참가했고, 데일리와 계속 친구로 지냈다. 1998년 올림픽 직후, 보이트의 첫 아이가 태어났고, 케냐 출신인 그는 아들의 이름을 데일리 보이트라고 지었다.
5. 올림픽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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