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벵가지 테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2012년 벵가지 테러는 2012년 9월 11일 리비아 벵가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미국 영사관과 CIA 별관이 공격을 받아 미국 대사 J. 크리스토퍼 스티븐스를 포함한 4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리비아 내전 이후 벵가지의 불안정한 치안 상황과 미국의 리비아 개입, 그리고 반이슬람 영화에 대한 반발 등 복합적인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 공격 이후 미국의 대응과 정치적 논란이 이어졌으며, 여러 차례의 진상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2년 벵가지 테러
개요
위치리비아 벵가지
목표미국 외교 공관 및 CIA 별관
날짜2012년 9월 11일–12일
시간21:40–04:15 EET
유형조직적인 공격, 무장 습격, 방화
무기로켓 추진 유탄, 수류탄, 돌격 소총, 14.5 mm 대공 기관총, 트럭 탑재 포병, 디젤 통, 박격포
사망자미국 대사 J.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USFS 숀 스미스; CIA 계약직 타이론 S. 우즈와 글렌 도허티; 알려지지 않은 수의 리비아 공격자
부상자미국인 3명, 리비아인 7명
가해자안사르 알-샤리아
알카에다 (추정)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상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2012년 9월 11일 밤 상황에 대한 대통령, 부통령 업데이트; 2012년 9월 12일, 장미 정원에서 성명 발표하는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장관; 정보 자유법(FOIA) 요청을 통해 공개된 두 장의 사진; 2013년 1월 23일 상원 위원회에서 증언하는 클린턴 국무장관; 공격에 대한 정보가 담긴 "수배" 포스터 부분.
배경
관련 분쟁리비아 내전
추가 정보
구글 지도 검색어벵가지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리비아 내전의 여파 - 93여단
    93여단은 106mm 대전차포를 포함한 중화기를 보유했으며, 2023년 5월 28일 기지 점령 당시 탱크와 BM-21 그라드 로켓 발사기 등 중장비를 획득했다.
  • 2012년 리비아 -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에 대한 반응
    2012년 영화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 공개 후 이슬람교와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시위와 폭력 사태, 각국 정부의 조치, 국제적 긴장 고조, 표현의 자유 논쟁을 야기했다.
  • 2012년 테러 사건 - 2012년 부르가스 버스 폭탄 테러
    2012년 부르가스 버스 폭탄 테러는 불가리아 부르가스 공항에서 이스라엘 관광객을 태운 버스를 대상으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테러범을 포함한 6명이 사망하고 최소 32명이 부상했으며,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이란의 지원을 받아 감행했다고 비난했으나 이란은 부인했고, 이후 레바논-프랑스 이중 국적자가 범인으로 확인되어 관련 남성 두 명이 부재자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 2012년 테러 사건 -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에 대한 반응
    2012년 영화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 공개 후 이슬람교와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시위와 폭력 사태, 각국 정부의 조치, 국제적 긴장 고조, 표현의 자유 논쟁을 야기했다.

2. 역사적 배경

2012년 벵가지 테러의 역사적 배경에는 리비아와 미국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리비아 내전 이후 벵가지의 불안정한 상황이 있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리비아와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으나, 2000년대 초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2011년 리비아 혁명 당시 J.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는 리비아 반군과의 연락관으로 임명되어 미국의 지지를 표명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벵가지 임무를 상설화하고자 했다.

미국은 리비아 내전 기간 동안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전쟁 이후에는 CIA와 국무부가 무기 회수 및 리비아 정보 기관 훈련을 지원했다. 벵가지는 정보 요원들의 핵심 거점이었으며, 안사르 알-샤리아와 알 카에다 이슬람 마그레브 등의 무장 단체를 감시했다.

2011년 리비아 내전 이후 벵가지는 치안이 매우 불안정했다. 2012년 4월부터 9월 테러 직전까지 미국 영사관을 겨냥한 IED 공격, 국제 적십자 위원회(ICRC) 사무실 공격, 영국 대사 암살 시도 등 다수의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2012년 6월에는 오마르 압델 라만 수감자 여단이 미국 영사관 정문 밖에서 폭발 장치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리비아 알 카에다 지도자 아부 야흐야 알 리비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무부는 벵가지 주재 임무에 대한 추가 보안 요청을 거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벵가지의 보안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보안 결정은 다른 사람에 의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2.1. 미국의 리비아 개입과 관계 변화

미국은 1972년 대사를 소환하고 1979년 리비아 미국 대사관 방화 사건 이후 대사관을 폐쇄하여 리비아와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2011년 리비아 혁명 발발 후, J.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는 리비아 반군과의 첫 연락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미국이 리비아의 새로운 민주주의 수립을 지지한다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벵가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벵가지 임무를 상설화하길 원했고, 연내 트리폴리 방문 중 그 내용을 발표하길 희망했다.

전쟁 중, 미국의 엘리트 대테러 요원인 델타 포스는 분석가로 리비아에 파견되어 반군에게 무기 및 전술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했다. 전쟁 종식 후, CIA와 미국 국무부는 전쟁 중 유입된 무기, 특히 카다피 정권의 무기고에서 빼돌린 어깨결속 미사일을 식별하고 수집하는 임무를 계속했다. 또한 리비아의 화학 무기 비축량을 확보하고 리비아의 새로운 정보 기관 훈련을 지원했다.

동부 리비아와 벵가지는 정보 요원들에게 핵심적인 정보 수집 거점이었다. 공격 전, CIA는 안사르 알-샤리아와 알 카에다 이슬람 마그레브의 용의자들을 감시하고, 다양한 민병대의 지도력과 충성심, 그리고 그들이 리비아 사회의 살라피 세력과의 관계를 정의하려고 시도했다.

2012년 여름, 미국의 합동 특수 작전 사령부(JSOC) 작전이 야신 알-수리의 알 카에다 네트워크와 연계된 리비아 민병대를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격 당시, 두 명의 JSOC 구성원을 포함한 미국 특수 작전 팀이 이미 CIA 및 국무부 작전과 별도로 임무를 수행하며 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벵가지의 외교 공관이 CIA에 의해 리비아에서 반 아사드 시리아 반군에게 무기를 밀수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근거 없는 추측이 있었다.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쉬는 익명의 전 국방부 정보 담당 고위 관계자를 인용하여 "영사관의 유일한 임무는 무기 이동을 은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제 정치적 역할이 없었다"고 말했다. 허쉬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 공격은 미국 개입을 종식시킨 것으로 추정되지만, 밀수는 멈추지 않았다.

2014년 1월, 미국 하원 정보 위원회는 "벵가지의 모든 CIA 활동은 합법적이고 승인되었다. 공식 증언에 따르면 CIA는 리비아에서 시리아로 무기를 보내거나, 리비아에서 시리아로 무기를 이전하는 다른 조직이나 국가를 지원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2.2. 벵가지의 불안정한 상황

2011년 리비아 내전 이후 벵가지는 무장 세력 간의 갈등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로 인해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2012년 4월부터 9월 벵가지 공격 직전까지 미국 영사관을 겨냥한 IED 공격, 국제 적십자 위원회(ICRC) 사무실 공격, 영국 대사 암살 시도 등 다수의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2012년 6월 6일에는 오마르 압델 라만 수감자 여단이 미국 영사관 정문 밖에서 폭발 장치를 터뜨려 경계벽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리비아 알 카에다 지도자 아부 야흐야 알 리비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하며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이러한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무부는 벵가지 주재 임무에 대한 추가 보안 요청을 거부하고 보안 경계를 낮게 유지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미국 보안 담당관 에릭 노르드스트롬은 국무부에 두 차례 보안 강화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벵가지의 보안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보안 결정은 다른 사람에 의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3. 벵가지 공격

2012년 9월 11일 오후 9시 40분경,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무장 세력이 여러 방향에서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을 공격했다. 이들은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에 대한 대응으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알려졌다. 공격자들은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 소총, RPG 등으로 무장하고 공관에 진입했다.

외교안보국(DSS) 요원은 보안 카메라를 통해 무장 괴한들이 공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경보를 울렸다.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와 정보 관리 담당관 숀 스미스는 안전 구역으로 대피했지만, 공격자들이 건물에 불을 질러 연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DSS 특수 요원 스콧 위클런드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으나, 스티븐스와 스미스는 탈출하지 못했다. 이후 요원들이 스미스의 시신은 발견했지만, 스티븐스는 찾지 못했다.

CIA 부속 시설의 GRS 팀은 영사관에 도착하여 경계를 확보하고 스티븐스 대사와 숀 스미스를 찾으려 시도했다. 외교 보안 요원 데이비드 우번은 스미스를 발견했고, 그는 의식이 없었고 나중에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팀은 연기로 가득 찬 건물에서 스티븐스를 찾을 수 없었다.

자정 직후, CIA 별관이 기관총, 로켓,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CIA 방어군은 아침까지 공격을 막아냈다. 같은 날 아침, 리비아 정부군과 글렌 도허티를 포함한 트리폴리에서 온 미국인 증원군이 합류했다. 이들은 트리폴리에서 30000USD를 주고 조종사를 강요하여 벵가지로 이동했다.

리비아군과 미국인들은 CIA 별관으로 가서 32명의 미국인을 공항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별관은 곧 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타이론 S. 우즈와 글렌 도허티가 박격포 공격으로 사망했다. 외교 안보국(Diplomatic Security Service) 특수 요원 데이비드 업벤과 CIA 계약자 마크 가이스트는 파편 부상과 골절상을 입었다.

미국인들은 공항으로 대피하면서 소화기 공격을 받았고, 국무부 요원 6명과 스미스의 시신을 포함한 30여 명이 대피했다. 당시 스티븐스 대사는 실종 상태였다.

이후 스티븐스 대사는 리비아인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연기 흡입으로 인한 질식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베니나 국제공항을 거쳐 트리폴리로, 다시 C-17(군용 수송기)을 통해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로 이송되었다.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내각 구성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공격 이후, 모든 외교 직원은 트리폴리로 이동했고, 중요하지 않은 인력은 리비아에서 철수했다. 미국과 협력하는 리비아인 명단, 석유 계약 관련 문서 등 중요 문서들이 분실되었다.

3.1. 영사관 공격

2012년 벵가지 공격 당시 미국 공관 및 부속 시설 지도
2012년 벵가지 공격 당시 미국 공관 및 부속 시설 지도

2012년 9월 11일 오후 9시 40분경,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다수의 무장 세력이 여러 방향에서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을 공격했다. 공격자들은 벽 너머로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 소총, RPG, 그리고 더 강력한 무기로 공관에 들어갔다. 미국을 위한 미디어 문제(Media Matters For America)에 따르면, 공격자들은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에 대한 대응으로 행동했다고 밝혔다.

외교안보국(DSS) 요원은 영사관의 보안 카메라를 통해 "다수의 무장한 남자들이 공관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경보를 울리고 확성기를 통해 "공격! 공격!"이라고 외쳤다.

외교안보국 특수 요원 스콧 위클런드는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와 정보 관리 담당관 숀 스미스를 주요 건물의 안전 구역에 대피시켰다. 공격자들은 건물에 진입하여 안전 구역으로 들어가려 했고, 방에 디젤 연료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스티븐스, 스미스, 위클런드는 연기에 질식하여 안전 구역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위클런드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지만, 스티븐스와 스미스는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위클런드는 여러 번 돌아왔지만 연기 속에서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세 명의 요원이 장갑차를 타고 주요 건물로 돌아와 스미스의 시신을 발견했지만, 스티븐스는 찾지 못했다.

CIA 부속 시설의 GRS 팀은 영사관에 도착하여 경계를 확보하고 대사와 숀 스미스를 찾으려 시도했다. 외교 보안 요원 데이비드 우번은 스미스를 발견했고, 그는 의식이 없었고 나중에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팀은 연기로 가득 찬 건물에서 스티븐스를 찾을 수 없었다.

3.2. CIA 별관 공격

자정 직후, CIA 별관이 기관총, 로켓,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CIA 방어군은 아침까지 공격을 막아냈다. 같은 날 아침, 리비아 정부군은 글렌 도허티를 포함한 트리폴리에서 온 증원군과 미국인 그룹과 만났다. 이 팀에는 현역 미국 특수작전사령부(JSOC) 요원 2명과 CIA 요원 5명이 포함되었으며, 트리폴리에서 조종사에게 30000USD를 지불하고 벵가지로 비행하도록 강요하여 소형 제트기를 징발했다.

몇 시간 동안 공항에 묶여 있다가, 리비아군과 새로 도착한 미국인들은 오전 5시경 CIA 별관으로 가서 별관에 있던 약 32명의 미국인을 공항으로 이송하여 대피를 도왔다. 그들이 문을 통과한 지 몇 분 만에, 별관은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전투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도허티는 친구 타이론 S. 우즈를 찾아 나섰고, 그가 옥상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옥상에서 다른 요원 2명과 함께 우즈를 발견했다. 그러자 박격포탄이 우즈의 위치를 강타하여 치명상을 입혔다. 도허티가 위치를 바꾸고 엄폐하려 하자, 두 번째 포탄이 그에게 떨어져 그를 죽였다. 외교 안보국(Diplomatic Security Service) 특수 요원 데이비드 업벤과 CIA 계약자 마크 가이스트는 박격포 공격으로 파편 부상과 골절상을 입었다.

즉시, 몇몇 요원들이 피해를 평가하고 부상자를 돕기 위해 옥상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JSOC 요원은 요청에 따라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US Africa Command)가 보낸 상공의 프레데터 드론에서 이미지를 표시하는 휴대용 장치를 사용하고 있었다. 방어군은 공항으로 대피하기로 합의했고, 이동 경로에서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 약 30명의 미국인 대피에는 국무부 요원 6명과 스미스의 시신이 포함되었다. 당시에는 스티븐스 대사를 찾을 수 없었다.

3.3. 공격 이후 상황

스티븐스 대사의 시신은 창문을 통해 방에 들어간 리비아인들이 발견했다. 이들은 스티븐스 대사의 신원을 알지 못했으며, 함께 있던 프리랜서 사진 작가 압델-카데르 파들은 AP통신에 스티븐스가 의식을 잃었고 "아마 머리를 한 번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22세의 예술 학생 아흐메드 샴스는 AP통신에 스티븐스를 살아있는 채로 발견하고 구출하려 했을 때 기뻤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비디오 작가 파흐드 알-바쿠쉬는 스티븐스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연기로 가득 찬 방에서 리비아인들이 대사를 꺼내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공개했다. 알-바쿠쉬에 따르면, 리비아인들은 스티븐스가 살아있고 숨을 쉬며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를 외국인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를 스티븐스로 알아보지 못했다.

오전 1시경, 스티븐스는 구급차가 없어 개인 차량으로 안사르 알-샤리아 민병대가 통제하는 병원인 벵가지 메디컬 센터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지아드 아부 자이드 박사가 90분 동안 심폐 소생술을 시행했다. 자이드 박사에 따르면, 스티븐스는 연기 흡입으로 인한 질식으로 사망했으며, 다른 명백한 부상은 없었다. 의사는 리비아 내무부 소속 요원들이 시신을 공항으로 이송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스티븐스를 병원으로 데려가거나 시신을 공항으로 이송하여 미국의 관리 하에 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시신은 베니나 국제공항으로 옮겨져 트리폴리로 공수되었고, 이후 C-17(군용 수송기)을 이용하여 독일의 람슈타인 공군기지로 이송되었다. 독일에서 4구의 시신은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내각 구성원들이 사망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을 거행했다.

공격 이후, 모든 외교 직원은 수도 트리폴리로 이동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인력은 리비아에서 철수할 예정이었다. 미국과 함께 일하는 리비아인들의 명단, 석유 계약과 관련된 문서 등 중요한 문서들이 분실되었다.

4. 미국의 대응과 논란

J.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를 포함해 4명의 미국인이 2012년 벵가지 테러로 사망했다. 이는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돌프 둡스 대사가 사망한 이후 미국 대사가 공격으로 사망한 첫 사례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 공격을 테러로 규정하고 전 세계 외교 시설에 대한 보안 강화를 지시했다. 그러나 초기 대응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수전 라이스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 공격이 반 이슬람 비디오에 대한 시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잘못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벵가지 사건은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으며,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밋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는 미국 하원 벵가지 특별 위원회를 포함해 총 10번의 조사를 실시했으나,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의 명백한 잘못은 밝혀내지 못했다. 하원 정보 위원회는 2년간의 조사 끝에 CIA와 군의 대응은 적절했으며,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들의 잘못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하원 정보 위원회 조사 결과 요약


이후 미국은 재외공관 보안을 강화하고 리비아 내 극단주의 단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4.1. 오바마 행정부의 초기 대응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는 2012년 9월 12일, 미국 외교 시설에 대한 "이 터무니없는 공격"을 규탄하며 "미국은 건국 이래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국가"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테러 행위도 이 위대한 국가의 결의를 흔들거나... 우리가 옹호하는 가치의 빛을 가리지 못할 것"이라며, "정의는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관련 시설에 대한 보안 강화를 명령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같은 날 성명을 발표, 가해자들을 "무장한 무장 세력"과 "작고 사나운 집단"으로 묘사했다. 그녀는 "종교적 관용"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하며, 일부 사람들이 공격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9월 1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 [벵가지 공격]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9월 16일,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CIA 메모를 바탕으로 "벵가지에서 발생한 시위는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발생한 시위에 의해 자발적으로 촉발"되었으며, "극단주의자들이 폭력 시위에 참여했다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10건의 벵가지 조사에서는 그녀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9월 20일,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벵가지에서 일어난 일은 테러 공격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바마 대통령은 "비디오에 대한 분노로 인해 발생한 자연스러운 시위가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핑계로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9월 25일, 유엔 총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벵가지에서 우리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을 "무슬림 세계 전역에 분노를 촉발시킨 조잡하고 역겨운 비디오"라고 언급하며, "미국 정부는 이 비디오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조사에서 "공격 전에 시위는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4.2. 정치적 논란과 비판

공화당(Republican Party)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가 2012년 벵가지 테러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밋 롬니(Mitt Romney)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기까지 14일이 걸렸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격 다음 날 로즈 가든에서 이 사건을 테러 행위로 언급했다고 반박했지만, 롬니는 행정부가 이 공격이 비디오와 관련된 자발적인 시위가 아니라고 결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늦추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벵가지 사건은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 의원(공화, 애리조나)은 이 사건이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심각한 "대규모 은폐이거나 무능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 발생 후에도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혐오스러운 비디오로 인한 자발적인 시위라고 계속 언급한 것을 지적했다.

하원 정보 위원회 위원장 마이크 로저스(Mike Rogers)(공화, 미시간)는 벵가지에서 시위가 전혀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공격이 사전에 계획된 테러 공격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2월 10일, 벵가지에 대한 하원 상설 정보 위원회 보고서가 출판되자 마이크 로저스(Mike Rogers) 위원장은 기고문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백악관 및 국무부의 행위가 무능함에서 선거 시즌에 정치적 조작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2014년 11월 21일 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되자 AP 통신은 위원회가 어떤 "정부 관리도 악의적으로 행동하거나 의도적으로 미국 국민을 오도했다고 결론짓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4.3. 진상 조사와 후속 조치

미국 의회는 벵가지 사건에 대해 미국 하원 벵가지 특별 위원회를 포함하여 총 10번의 조사를 실시했으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의 명백한 잘못은 밝혀내지 못했다.

공화당이 주도한 하원 정보 위원회의 2년간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국무부는 벵가지 사건 이후 재외공관 보안 강화를 위한 조치를 취했다. 또한 미국은 리비아 내 극단주의 단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리비아 정부의 특공대 훈련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