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돌격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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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호 돌격전차(Sturmtiger)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이 개발한 중(重)보병 지원 차량이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시가전 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방어 시설 파괴를 위해 개발되었으며, 티거 I 전차를 기반으로 380mm 로켓 발사기를 장착했다. 1944년 8월부터 12월까지 총 18대가 생산되었으며, 주로 서부 전선에서 독일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현재 독일 뮌스터 전차 박물관과 러시아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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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돌격전차 | |
---|---|
개요 | |
![]() | |
종류 | 중(重)돌격포 |
원산지 | 나치 독일 |
사용 기간 | 1944년 8월–1945년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제원 | |
길이 | 6.28m |
폭 | 3.57m |
높이 | 2.85m |
무게 | 68톤 |
현가 장치 | 토션 바 |
속도 | 40km/h |
연료 용량 | 540L |
항속 거리 | 120km |
승무원 | 5명 (운전수, 무전수, 장전수, 2nd 장전수, 지휘관/포수) |
무장 | |
주무장 | 380mm RW 61 로켓 발사기 L/5.4 (14발) |
부무장 | 부무장 없음 |
장갑 | 최대 150mm (상부 구조 전면, 수직에서 47°), 최소 62mm |
엔진 | |
엔진 | 마이바흐 HL230 P45 V-12, 수냉식 가솔린 엔진 |
엔진 출력 | 700 PS (690 hp, 515 kW) |
마력당 무게비 | 10.77 PS/톤 |
생산 | |
설계 | 알케트 |
설계 시기 | 1943–1944년 |
제조사 | 알케트 |
생산 기간 | 1943년 10월 – 1945년 1월 |
생산 대수 | 18대 (재건된 티거 I 차체 사용) |
변형 | |
변형 | 해당사항 없음 |
2. 개발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격렬한 시가전 경험에서 독일군은 강력한 방어 시설이나 요새를 단 한 발로 파괴할 수 있는 중(重)보병 지원 차량의 필요성을 느꼈다.[1] 당시 독일 국방군은 33B 돌격 보병포와 4호 돌격전차 브룸베어 등을 운용하고 있었지만, 이들보다 더 강력한 화력과 방호력을 갖춘 차량이 요구되었다.[1]
는 후기형 티거 I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차체 전면부를 제거하고 로켓 발사기를 수용하는 새로운 고정식 포방(casemate) 스타일의 전투실을 만들었다.[2] 티거 I에 비해 전체적으로 짧고 낮았으며, 강력한 장갑을 갖춰 생존성을 높였다. 전면 장갑은 150mm, 측면 장갑은 82mm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중량은 티거 I보다 증가한 68톤에 달했다.
이에 따라, 티거 전차를 기반으로 210mm 곡사포를 장착한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포는 당시 사용할 수 없었고, 해군de의 폭뢰 발사기에서 개조된 380mm 로켓 발사기로 대체되었다.[1] 이 포는 원래 1940년대 초부터 연안 방어를 위해 독일 해군과 라인메탈사에 의해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562 장비로 1943년 초에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이후 독일 육군은 이 병기의 관할권을 가져왔다.
1943년 9월, 크루프는 슈투름티거를 위해 새로운 티거 I 장갑 차체를 제작할 계획을 세웠다.[1] 티거 I 차체는 섀시 조립을 위해 헨셸로 보내지고, 상부 구조를 장착하기 위해 알케트로 보내질 예정이었다.[1] 초기형 티거에서 개조된 첫 번째 시제 차량은 1943년 10월 20일, 아리스 훈련장에서 히틀러에게 제시되었고, 히틀러의 직접적인 심사를 받았다.[1]
히틀러는 이 제안에 강한 흥미를 보였지만, 기갑 총감 하인츠 구데리안은 충분한 시험을 거치지 않은 병기의 유효성과 제조 라인의 혼란을 우려하여 시제 차량을 먼저 1대 생산할 것을 제안했고, 히틀러는 이에 동의했다.
지연으로 인해 히틀러는 1944년 4월 19일까지 이 무기의 생산을 요청하지 않았다.[1] 1944년 4월 12일, 히틀러는 12대 이상의 돌격 박격포용 상부 차체와 포신을 준비하여, 전선에서 수리를 위해 회수된 티거 I의 차체에 탑재하도록 명령했다. 첫 세 대의 생산 모델은 1944년 8월 알케트에서 완성되었다.[1] 1944년 9월에 10대의 가 생산되었고, 1944년 12월에는 5대가 추가로 생산되었다.[1] 최종적으로 1944년 8월~12월에 18대가 완성되었고 제조 속도는 느렸지만, 이는 신규 생산이 아닌, 손상된 티거 I이 수리를 위해 후송될 때마다 1대씩 개조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의 특별한 사용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고, 매달 최소 300발의 탄약을 생산해야 한다고 믿었다.[1]
3. 설계
장갑 두께 위치 경사
(수직에서 각도)150 mm 차체 상부 전면 47° 150 mm
( 100 mm)차체 전면
(추가 장갑판 미장착 시)25° 82 mm 차체 상부 측면 및 후면
상부 차체 측면 및 후면20°
없음70 mm 차체 전면 상단 80° 62 mm 하부 차체 전면 65° 62 mm 하부 차체 측면
하부 차체 후면없음
48°28 mm 차체 바닥
3. 1. 무장
주무장은 380mm 61식 로켓 박격포(Raketen-Werferde 61 L/5.4)로, 후장식 포신을 가졌다.[19] 정식 명칭은 RW61이다. 38cm 로켓 고폭탄 4581(38cm 로켓 포탄 4581)은 전체 길이 1489mm(신관 결합 시), 동체 직경 380mm, 무게 345.5kg에 달했으며, 최대 5,900m(50℃ 기준)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26][25] 이 외에도 대전차 고폭탄 4592(38cm 성형 작약 유탄 4592)가 존재했으나, 콘크리트 진지 파괴용으로만 제한되었다.
로켓 박격포는 포신을 내통과 외통의 이중 구조로 하고, 환형의 환기 샤프트를 설치하여 로켓탄 발사 연기를 차외로 배출했다.[19] 포미는 오른쪽으로 열리는 간이 슬라이드식 폐쇄판으로 닫혔으며, 불완전 폐쇄 시 발사 레버가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17] 포탄 무게로 인한 불균형을 막기 위해 포구에 카운터 웨이트가 부착되었다.[20]
부피가 큰 로켓탄은 14발만 탑재 가능했으며, 전투실 후방 상부에 조립식 크레인을 설치하여 장전을 도왔다.[1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탄 장전에는 5명의 승무원 전원이 동원되어야 했다.[22]
근접 방어를 위해 전면에는 7.92mm MG34 기관총이, 전투실 상부 후부 해치에는 90mm NbK39 Nahverteidigungswaffede (근접 방어 무기)가 장착되었다.
4. 운용
슈투름티거는 중장갑 보병 지원 차량으로, 견고하게 요새화되거나 시가전 지역에 대한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슈투름티거가 준비되었을 때는 독일이 주도권을 상실하여, 국방군은 거의 전적으로 방어에 치중하고 공격 작전은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3]
슈투름티거를 운용하기 위해 세 개의 새로운 기갑 중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Panzer Sturmmörser Kompanien (PzStuMrKp)de ("기갑 돌격 박격포 중대") 1000, 1001, 1002였다. 원래 각 중대는 14대의 차량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각 중대는 두 개의 소대로 나뉘어 4대씩으로 축소되었다.[3]
''PzStuMrKp'' 1000은 1944년 8월 13일에 창설되어 바르샤바 봉기 동안 2대의 차량으로 전투에 참여했으며, 별도의 작전에서 프로토타입도 투입되었는데, 이는 슈투름티거가 의도된 역할을 수행한 유일한 사례일 수 있다. ''PzStuMrKp'' 1001(폰 고트베르크 대위 지휘)과 1002(지펠 중위 지휘)는 9월과 10월에 각각 창설되었다. ''PzStuMrKp'' 1000과 1001 모두 아르덴 대공세에 참전했으며, 총 7대의 슈투름티거가 투입되었다.[3]
이 공세 이후, 슈투름티거는 주로 서부 전선에서 독일 방어전에 투입되었다.[3]
레마겐 전투에서 독일군은 슈투름모르서코만파니de 1000과 1001 (총 7대)을 동원하여 전투에 참여시켰다. 슈투름티거는 원래 박격포를 사용하여 다리를 공격하도록 지시받았지만, 다리를 명중시킬 만큼의 정확도가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작전 동안, 슈투름모르서코만파니de 1001에 소속된 한 대의 슈투름티거가 뒤렌과 오이스키르헨 근처의 한 마을에서 정차해 있던 셔먼 전차 부대를 380mm 포탄으로 공격하여, 거의 모든 셔먼 전차를 파괴하고 승무원을 사상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슈투름티거가 기록된 유일한 전차 대 전차 전투였다.[3][4]
5. 현존 차량
독일 뮌스터 전차 박물관과 러시아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는 슈투름티거가 전시되어 있다. 뮌스터 전차 박물관에 있는 슈투름티거(차대 번호 250174)는 코블렌츠에 있는 독일 연방군 군사 기술 연구소에서 대여한 것이다. 쿠빙카 전차 박물관의 슈투름티거(차대 번호 20554)는 1945년 4월 엘베 지역에서 소련군에게 노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는 380mm 로켓 발사기가 소장되어 있다.
참조
[1]
서적
Jentz 1999
2010-09-01
[2]
서적
Livesey 2007
[3]
서적
Tiger: the History of a Legendary Weapon
1942-4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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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fant Jagdtiger Sturmtiger: Rarities of the Tiger Family
Schiffler Milit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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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PzKpfw VI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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