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년
1. 개요
773년은 당나라, 신라, 발해 등 여러 국가에서 사용된 연호와 관련된 해이다. 주요 사건으로는 야마베 왕(후의 간무 천황)의 황태자 책봉, 상평의 법 제정, 발해 사신의 노토 도착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샤를마뉴의 롬바르드 원정, 작센 전쟁 등이 있었으며, 아라비아의 수학자들이 인도식 숫자 체계를 기반으로 0의 개념을 바그다드에 도입했다. 또한, 이 해에 급격한 방사성 탄소 증가가 관측되었다.
2. 연호
* 당(唐) 대력(大曆) 8년
* 일본(日本) 호키(호키/宝亀일본어) 4년
* 발해 대흥 36년
* 남조 장수 5년
* 신라 혜공왕 9년
* 간지 : 계축
* 황기 1433년
* 단기 3106년
3. 기년
* 당(唐) 대종(代宗) 대력 8년
* 신라(新羅) 혜공왕(惠恭王) 9년
* 발해(渤海) 문왕(文王) 대흥 36년
* 남조(南詔) 장수 5년
* 간지 : 계축
* 일본 보규 4년
4. 사건
* 1월 29일(보규 4년 1월 2일) - 야마베 왕(후의 제50대 천황·간무 천황)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 3월 - 상평(물가 조정)의 법을 제정하였다.
* 6월 - 발해 사신이 노토에 도착하였다.
* 콩테크차 왕이 10년의 통치 후 사망하였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메이테이어 문자가 처음 등장했다.
4.1. 유럽
여름 – 샤를마뉴 왕과 그의 삼촌인 샤를 마르텔의 아들 베르나르가 교황 아드리아노 1세의 요청으로 프랑크 원정군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다. 이탈리아 북부 수사 계곡 산기슭에서 프랑크 군은 롬바르드의 요새에 막힌다. 정찰 후, 샤를마뉴는 측면에서 방어군을 공격하여 롬바르드 군을 요새화된 수도 파비아로 후퇴하게 만든다.
파비아 공성전에서 샤를마뉴는 식량이 부족한 파비아를 포위한다. 데시데리우스 왕은 수도에 남아 아들 아달기스에게 게르베르가와 카를로만 1세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베로나를 방어하도록 명령한다. 단기간의 공성전 후, 아달기스는 콘스탄티노플로 도망가 콘스탄티노스 5세 황제에게 받아들여진다. 한편, 프랑크 군은 베로나와 모타라 도시를 점령한다.
작센 전쟁에서 작센 군은 이탈리아에 매달린 샤를마뉴의 상황을 이용하여 에레스부르크와 도르트문트 근처 지부르크를 탈환한다. 그들은 성 보니파티우스가 설립한 (723년 참조) 주교 중심지 뷔라부르크를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노섬브리아의 알프레드(Alhred of Northumbria) 왕이 샤를마뉴(Charlemagne)에게 우호 제스처를 취한다(대략적인 연도).
4.2. 동아시아
* 1월 29일(보규 4년 1월 2일) - 야마베 왕(후의 제50대 천황·간무 천황)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 3월 - 상평(물가 조정)의 법을 제정하였다.
* 6월 - 발해 사신이 노토에 도착하였다.
* 콩테크차 왕이 10년의 통치 후 사망하였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메이테이어 문자가 처음 등장했다.
5. 문화
773년에는 내용이 비어있어 문서를 추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