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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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燕)은 당나라 현종 시기 소그드인 출신 절도사 안록산이 양국충과의 대립으로 반란을 일으켜 건국한 왕조이다. 안록산은 낙양에서 황제를 칭하고 대연성무황제를 칭했으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안록산의 동맹자였던 사사명이 안경서를 멸하고 황제가 되었지만, 사사명 역시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하고 사조의가 자살하면서 멸망했다. 연은 안사의 난을 일으켜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중 하나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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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안사)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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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국명 | 연(燕) |
공식 국명 | 대연(大燕) |
일반 명칭 | 연(燕) |
존속 기간 | 756년 – 763년 |
성립 계기 | 안록산의 황제 자칭 (756년 2월 5일) |
멸망 계기 | 사조의의 자살 (763년) |
이전 국가 | 당나라 |
이후 국가 | 당나라 |
수도 | 뤄양(756년–757년) 예청(757년–759년) 판양(759년) 뤄양(759년–762년) |
공용어 | 중국어 |
종교 | 불교, 도교, 유교, 중국 민간 신앙 |
통화 | 중국 동전, 엽전 |
정치 | |
정치 체제 | 군주제 |
황제 | 안록산 (1대, 756년–757년) 안경서 (2대, 757년–759년) 사사명 (3대, 759년–761년) 사조의 (4대, 761년–763년)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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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가 | |
현재 국가 | 중국 |
2. 역사
당나라 현종 시기, 소그드인 출신 절도사 안록산은 재상 양국충과의 대립으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대연성무황제를 칭하며 나라를 세웠다. 안록산은 낙양을 도읍으로 삼았으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되었다.[2] 안경서 즉위 후, 안록산의 동맹이었던 사사명이 범양에서 독립, 낙양의 안경서를 멸하고 스스로 대연 황제가 되었으나, 761년에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한다. 762년 낙양에서 쫓겨난 사조의는 이듬해 자살하여 연은 멸망했다.[2]
2. 1. 건국 배경
당나라 현종 연간, 소그드인 출신 절도사 안록산은 재상 양국충과의 대립으로 인해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2] 755년 12월 16일, 안록산은 반란을 일으켜 동쪽 수도인 낙양에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대연성무황제라 하였다. 756년 7월에는 서쪽 수도인 장안을 점령했다. 안록산은 아마도 돌궐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반란은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중 하나를 초래했다.[2]안록산은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했지만, 안경서 역시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었다.[2] 이후 안록산의 부관이었던 사사명이 안경서의 뒤를 이었으나, 그 역시 아들에게 살해당했다.[2]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뒤를 이었지만, 이회선에게 낙양을 빼앗긴 후 자살했다.[2]
2. 2. 안록산의 집권과 죽음
안록산(703년 2월 10일 ~ 757년 1월 29일, 54세)[2]은 당나라 현종 치하에서 절도사로 있었으며, 755년 12월 16일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낙양에서 황제를 칭하고, 756년 7월에 장안을 점령했다. 안록산은 돌궐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가 일으킨 안사의 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된다. 안록산은 자신의 아들에게 살해되었다.개인 이름 | 재위 기간 | 연호 |
---|---|---|
안록산 | 756년 2월 5일 ~ 757년 1월 29일[1] | 성무(聖武) 756년 ~ 758년 |
안경서 | 757년 1월 30일 ~ 759년 4월 10일[1] |
당나라 현종 시기, 안록산은 재상 양국충과의 갈등 끝에 소그드인 출신 절도사로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대연성무황제를 칭하며 나라를 세웠다. 안록산은 낙양을 도읍으로 삼았으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했다.[2]
2. 3. 내분과 혼란
안록산은 당나라 현종 시기에 절도사로 있다가 755년 12월 16일에 반란을 일으켰다.[2] 그는 동쪽 수도인 낙양에서 황제를 칭하고, 756년 7월에는 서쪽 수도인 장안을 점령했다. 안록산은 돌궐 출신으로 추정되며, 그의 반란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살해되었다.[2]안록산의 아들 안경서가 그 뒤를 이었으나,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었다.[2] 이후 안록산의 부관이었던 사사명이 안경서의 뒤를 이었지만, 그 역시 아들에게 살해되었다.[2]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그 뒤를 이었으나, 이회선에게 낙양을 빼앗긴 후 자살했다.[2]
개인 이름 | 재위 기간 | 연호 |
---|---|---|
안록산 | 756년 2월 5일 – 757년 1월 29일[1] | 성무(聖武) 756–758 |
안경서 | 757년 1월 30일 – 759년 4월 10일[1] | * 현초(現初) 757 |
사사명 | 759년 5월 9일 – 761년 4월 18일[1] | 순천(順天) 759 (?) |
사조의 | 761년 4월 – 763년 2월[1] | 현성(顯聖) 761–763 |
당 현종 시기, 소그드인 출신 절도사 안록산은 재상 양국충과의 대립으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대연성무황제를 칭하며 나라를 세웠다. 안록산은 낙양을 수도로 정했으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했다. 안경서가 즉위한 후, 안록산의 동맹이었던 사사명이 범양에서 독립했다. 낙양의 안경서를 멸하고 스스로 대연 황제가 되었으나, 761년에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한다. 762년 낙양에서 쫓겨난 사조의는 이듬해 자살하여 연은 멸망했다.
2. 4. 대연의 멸망
안록산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대연성무황제를 칭하며 건국한 대연은, 낙양을 도읍으로 삼았으나, 761년 사조의가 자살하면서 멸망했다.[2]대연의 멸망 과정은 다음과 같다.
황제 | 재위 기간 | 연호 |
---|---|---|
안록산 | 756년 2월 5일 – 757년 1월 29일[1] | 성무(聖武) 756–758 |
안경서 | 757년 1월 30일 – 759년 4월 10일[1] | 현초(現初) 757, 천성(天成) 757–759 |
사사명 | 759년 5월 9일 – 761년 4월 18일[1] | 순천(順天) 759 (?) |
사조의 | 761년 4월 – 763년 2월[1] | 현성(顯聖) 761–763 |
- 안록산은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했다.[2]
- 안경서는 안록산의 동맹자였던 사사명에게 살해당했다.[2]
- 사사명은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했다.[2]
- 사조의는 762년 낙양을 이회선에게 빼앗긴 후 763년 자살했다.[2]
3. 역대 황제
(자왕<刺王>)
응천(應天) 7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