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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세묘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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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7 세묘르카는 1950년대 소련에서 개발된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다. 핵탄두 탑재를 목표로 개발되었으며, 1957년 시험 발사에 성공하여 스푸트니크 1호와 2호를 궤도에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 R-7은 2단 로켓으로, 액체 산소와 등유를 연료로 사용하며, 4개의 부스터와 중앙 엔진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미사일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발사 준비 태세에 돌입하기도 했으나, 운용상의 문제와 높은 비용으로 인해 1968년 퇴역했다. R-7의 기술은 보스토크, 몰니야, 소유즈 로켓 등 소련의 우주 발사체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소유즈 로켓은 현재까지도 우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

2. 개발

1953년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이끄는 OKB-1 설계국과 기타 부서에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 설계를 시작했다.[4] 초기 요구 사양은 무게 3,000kg의 분리형 탄두를 갖춘, 사정거리 8,000km의 170톤짜리 2단 미사일이었다. 같은 해 10월 3일, 세미팔라틴스크 실험장에서의 핵실험 결과에 따라 탄두 중량이 5,500kg으로 증가하면서 설계가 크게 변경되었다.[4] 1954년 5월 20일, 소련 각료 회의는 R-7 개발을 승인했다.[4]

1947년 미하일 티호프라보프가 다단계 미사일의 원리를 처음 제안했고, 1948년 코롤료프가 이 제안을 알게 되었다. 1951년 드미트리 오호침스키의 응용 수학부에서 이 원리가 더욱 개선되었고, 1952~53년 코롤료프의 OKB-1에 의해 확장되어 R-7이 사용한 핵심 및 4개의 부착 부스터 모델이 나오게 되었다.[2]

5.5톤의 탑재체를 들어 올리기 위해 기존 엔진의 재설계가 필요했다. 발렌틴 글루시코의 OKB-456은 단일 터보 펌프를 사용하여 4개의 연소실을 결합하여 단일 엔진보다 더 높은 추력을 제공했다. 중앙 코어 및 부착 부스터의 주요 엔진은 모두 4개의 연소실 구성을 사용했다. 4개의 부착 추진 엔진은 각각 83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하는 RD-107 엔진과 조향을 돕는 2개의 버니어 추력기로 구동되었다. 중앙 코어의 RD-108 엔진은 75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했으며 조향에 사용되는 4개의 버니어 엔진이 포함되었다.[3]

R-7 로켓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엔진 노즐 배기구에서 발생하는 저항을 증가시키는 제트 베인을 사용하는 대신, R-7은 조향을 위해 특수 제어 엔진을 사용했다. 이 동일한 엔진은 마지막 단계의 버니어 추력기 역할을 했다. 묶음 설계로 인해 각 부스터는 자체 추진제 탱크를 가지고 있었다. 설계 팀은 추진제 성분 소비 비율을 조절하고 부스터 간의 소비를 동기화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2]

R-7 프로토타입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은 독일의 로켓 기술자들을 흡수하여 R-7 개발에 참여시켰다.[9] 이들은 소유즈 로켓으로 이어지는 클러스터형 로켓 설계를 제안했으며, 이는 R-7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9]

1949년 4월 4일, 독일인 팀은 3000kg의 탄두를 장착하고 3000km의 사거리를 가진 G-4 로켓 개발에 착수했다.[9] 1949년 12월 7일, NII-88은 G-4와 코롤료프가 개발한 R-3의 설계를 심사하여 G-4가 우수하다고 평가했지만, G-4 계획은 보류되었다.[9] 독일 기술자들은 G-4의 개량형인 G-5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설계 성과는 소련 팀에게 전달되어 R-7 설계에 반영되었다.[9]

당초 단일 연소실을 갖춘 RD-105, RD-106 엔진을 개발했지만 연소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4개의 연소실을 갖춘 RD-107, RD-108 엔진으로 변경되었다.[9]

R-7 세묘르카의 엔진 개발은 발렌틴 글루시코가 이끄는 OKB-456 설계국에서 담당했다.[3] 이들은 기존의 RD-105 및 RD-106 엔진을 재설계하여, 5.5톤의 탑재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했다.[2] 글루시코는 단일 터보 펌프를 사용하여 4개의 연소실을 결합하는 방식을 채택, 단일 엔진보다 더 높은 추력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3] 이는 표준화를 통해 전체 엔진 무게를 줄이고 설계, 테스트, 제작을 간소화하는 장점도 있었다.[3]

중앙 코어 및 부착 부스터의 주요 엔진은 모두 4개의 연소실 구성을 사용했다.[3] 4개의 부착 추진 엔진은 각각 83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하는 RD-107 엔진과 조향을 돕는 2개의 버니어 추력기로 구동되었다.[3] 중앙 코어의 RD-108 엔진은 75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했으며, 조향에 사용되는 4개의 버니어 엔진이 포함되었다.[3] 당초 단일 연소실을 갖춘 RD-105, RD-106을 개발했지만 연소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4기의 연소실을 갖춘 RD-107, RD-108로 변경되었다[9]

1957년 3월, 최초의 R-7 미사일인 R-7 M1-5가 발사 준비 시설에 보내졌고, 같은 해 5월 5일 발사 시설로 이동되었다.[9] 8K71이라는 번호가 붙은 신형 미사일의 첫 번째 시험 발사는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1957년 5월 15일 오후 7시 1분(모스크바 시간)에 시작되었다.[9] 그러나 발사 후 400km 떨어진 곳에서 부착형 부스터 배관에서의 연료 누출로 인한 추력 감소로 인해 미사일은 안정성을 잃고 추락했다.[9]

6월 11일에 예정되었던 발사 시험은 부스터B 산소 배관 밸브가 어는 문제로 인해 중단되었다.[9] 세 번째 발사 시험은 발사 직전 연료 계통 고장으로 중단되었고, 로켓은 발사대에서 내려져 재점검을 받았다.[9] 7월 12일에 세 번째 시험 발사가 재개되었지만, 발사 33초 후 제어 회로 고장으로 로켓이 안정성을 잃고 추락했다.[9]

8월 21일에 이루어진 네 번째 시험 발사에서 R-7은 처음으로 6,000km 장거리 비행에 성공했다.[9] 이 성공은 8월 26일 이타르타스 통신에 의해 보도되었다.[9] 5일 후, 타스 통신은 소련이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4]

8K71을 개조한 8K71PS인 스푸트니크 로켓은 1957년 10월 4일에 스푸트니크 1호를, 11월 3일에 스푸트니크 2호를 궤도에 쏘아 올려, 세계 최초의 위성 발사 로켓이 되었다.[9]

이후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1957년 10월부터 1958년까지 노바야제믈랴 제도에서 탄두 시험이 이루어져 2.9Mt의 위력을 보였다.[9] R-7은 31기가 발사되어 그 중 11기가 실패했고, R-7A는 21기가 발사되어 3기가 실패했다.

2. 1. 초기 설계 및 요구 사항

1953년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이끄는 OKB-1 설계국과 기타 부서에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 설계를 시작했다.[4] 초기 요구 사양은 무게 3,000kg의 분리형 탄두를 갖춘, 사정거리 8,000km의 170톤짜리 2단 미사일이었다. 같은 해 10월 3일, 세미팔라틴스크 실험장에서의 핵실험 결과에 따라 탄두 중량이 5,500kg으로 증가하면서 설계가 크게 변경되었다.[4] 1954년 5월 20일, 소련 각료 회의는 R-7 개발을 승인했다.[4]

1947년 미하일 티호프라보프가 다단계 미사일의 원리를 처음 제안했고, 1948년 코롤료프가 이 제안을 알게 되었다. 1951년 드미트리 오호침스키의 응용 수학부에서 이 원리가 더욱 개선되었고, 1952~53년 코롤료프의 OKB-1에 의해 확장되어 R-7이 사용한 핵심 및 4개의 부착 부스터 모델이 나오게 되었다.[2]

5.5톤의 탑재체를 들어 올리기 위해 기존 엔진의 재설계가 필요했다. 발렌틴 글루시코의 OKB-456은 단일 터보 펌프를 사용하여 4개의 연소실을 결합하여 단일 엔진보다 더 높은 추력을 제공했다. 중앙 코어 및 부착 부스터의 주요 엔진은 모두 4개의 연소실 구성을 사용했다. 4개의 부착 추진 엔진은 각각 83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하는 RD-107 엔진과 조향을 돕는 2개의 버니어 추력기로 구동되었다. 중앙 코어의 RD-108 엔진은 75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했으며 조향에 사용되는 4개의 버니어 엔진이 포함되었다.[3]

R-7 로켓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엔진 노즐 배기구에서 발생하는 저항을 증가시키는 제트 베인을 사용하는 대신, R-7은 조향을 위해 특수 제어 엔진을 사용했다. 이 동일한 엔진은 마지막 단계의 버니어 추력기 역할을 했다. 묶음 설계로 인해 각 부스터는 자체 추진제 탱크를 가지고 있었다. 설계 팀은 추진제 성분 소비 비율을 조절하고 부스터 간의 소비를 동기화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2]

2. 2. 독일 기술자들의 기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은 독일의 로켓 기술자들을 흡수하여 R-7 개발에 참여시켰다.[9] 이들은 소유즈 로켓으로 이어지는 클러스터형 로켓 설계를 제안했으며, 이는 R-7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9]

1949년 4월 4일, 독일인 팀은 3000kg의 탄두를 장착하고 3000km의 사거리를 가진 G-4 로켓 개발에 착수했다.[9] 1949년 12월 7일, NII-88은 G-4와 코롤료프가 개발한 R-3의 설계를 심사하여 G-4가 우수하다고 평가했지만, G-4 계획은 보류되었다.[9] 독일 기술자들은 G-4의 개량형인 G-5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설계 성과는 소련 팀에게 전달되어 R-7 설계에 반영되었다.[9]

당초 단일 연소실을 갖춘 RD-105, RD-106 엔진을 개발했지만 연소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4개의 연소실을 갖춘 RD-107, RD-108 엔진으로 변경되었다.[9]

2. 3. 엔진 개발

R-7 세묘르카의 엔진 개발은 발렌틴 글루시코가 이끄는 OKB-456 설계국에서 담당했다.[3] 이들은 기존의 RD-105 및 RD-106 엔진을 재설계하여, 5.5톤의 탑재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했다.[2] 글루시코는 단일 터보 펌프를 사용하여 4개의 연소실을 결합하는 방식을 채택, 단일 엔진보다 더 높은 추력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3] 이는 표준화를 통해 전체 엔진 무게를 줄이고 설계, 테스트, 제작을 간소화하는 장점도 있었다.[3]

중앙 코어 및 부착 부스터의 주요 엔진은 모두 4개의 연소실 구성을 사용했다.[3] 4개의 부착 추진 엔진은 각각 83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하는 RD-107 엔진과 조향을 돕는 2개의 버니어 추력기로 구동되었다.[3] 중앙 코어의 RD-108 엔진은 75톤의 해수면 추력을 제공했으며, 조향에 사용되는 4개의 버니어 엔진이 포함되었다.[3] 당초 단일 연소실을 갖춘 RD-105, RD-106을 개발했지만 연소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4기의 연소실을 갖춘 RD-107, RD-108로 변경되었다[9]

2. 4. 시험 발사

1957년 3월, 최초의 R-7 미사일인 R-7 M1-5가 발사 준비 시설에 보내졌고, 같은 해 5월 5일 발사 시설로 이동되었다.[9] 8K71이라는 번호가 붙은 신형 미사일의 첫 번째 시험 발사는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1957년 5월 15일 오후 7시 1분(모스크바 시간)에 시작되었다.[9] 그러나 발사 후 400km 떨어진 곳에서 부착형 부스터 배관에서의 연료 누출로 인한 추력 감소로 인해 미사일은 안정성을 잃고 추락했다.[9]

6월 11일에 예정되었던 발사 시험은 부스터B 산소 배관 밸브가 어는 문제로 인해 중단되었다.[9] 세 번째 발사 시험은 발사 직전 연료 계통 고장으로 중단되었고, 로켓은 발사대에서 내려져 재점검을 받았다.[9] 7월 12일에 세 번째 시험 발사가 재개되었지만, 발사 33초 후 제어 회로 고장으로 로켓이 안정성을 잃고 추락했다.[9]

8월 21일에 이루어진 네 번째 시험 발사에서 R-7은 처음으로 6,000km 장거리 비행에 성공했다.[9] 이 성공은 8월 26일 이타르타스 통신에 의해 보도되었다.[9] 5일 후, 타스 통신은 소련이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4]

8K71을 개조한 8K71PS인 스푸트니크 로켓은 1957년 10월 4일에 스푸트니크 1호를, 11월 3일에 스푸트니크 2호를 궤도에 쏘아 올려, 세계 최초의 위성 발사 로켓이 되었다.[9]

이후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1957년 10월부터 1958년까지 노바야제믈랴 제도에서 탄두 시험이 이루어져 2.9Mt의 위력을 보였다.[9] R-7은 31기가 발사되어 그 중 11기가 실패했고, R-7A는 21기가 발사되어 3기가 실패했다.

3. 구조 및 특징

R-7은 길이 34m, 직경 3m, 발사 중량 280톤의 2단 로켓이다. 액체 산소등유로켓 연료로 사용하며, 사거리는 8,800km, 원형 공산 오차(CEP)는 5km이다. R-7A는 길이가 28m로 짧아졌지만 사거리는 9,500km로 늘어났다.

발사 초기에는 4개의 RD-107 부착형 부스터와 중앙의 RD-108 메인 엔진, 총 5개의 엔진으로 가속된다. RD-107과 RD-108은 발렌틴 글류스코가 이끄는 설계국인 OKB-456에서 설계된, 기본적으로 동일한 엔진이다. 엔진 크기는 철도 수송을 고려하여 결정되었다. 하나의 연료 펌프가 네 개의 연소실/노즐에 연료를 보내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연소실 대형화와 진동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2단 RD-108 엔진은 4개의 노즐과 4개의 자세 제어용 버니어 노즐을, 1단 RD-107 부스터는 4개의 노즐과 2개의 버니어 노즐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RD-108 로켓 주위에 4개의 부스터가 연결되며, 각 부스터의 버니어 노즐은 바깥쪽을 향한다. 각 부스터는 원뿔 모양이어서, 미사일은 중간부터 아래로 넓어지는 독특한 모양을 갖는다.

소유스 로켓 엔진


|thumb|2004년 러시아 우표에 등장한 R-7 세묘르카]]

유도 시스템은 R-5R (SS-3 Shyster) 무선 사령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버니어 로켓 제어 기능 관성을 유도했다.[1]

경량화 때문에 부스터 무게를 로켓 본체가 지탱할 수 없어, 서방 국가의 미사일과 달리 R-7 로켓은 중간 부분에서 트러스 구조의 튼튼한 기둥에 매달려 발사된다. 이 방식은 튤립(Tyulpan) 발사 방식으로 불리며 레닌그라드 금속 주조 공장에서 설계되었다. 로켓 엔진 점화 후 출력이 로켓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되면, 기둥을 꽃이 피는 것처럼 사방으로 분리한다.

3. 1. 엔진 및 추진 시스템

R-7 세묘르카는 1단에 RD-107 엔진 4기, 중앙 코어에 RD-108 엔진 1기를 사용한다. 각 엔진은 발렌틴 글류스코가 이끄는 설계국인 OKB-456에서 설계되었으며, 철도 수송을 고려하여 크기가 결정되었다. 하나의 연료 펌프가 네 개의 연소실과 노즐에 연료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연소실 대형화와 진동을 피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RD-107과 RD-108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엔진이다. 2단에 해당하는 RD-108 엔진은 4개의 노즐과 4개의 자세 제어용 버니어 노즐을 갖추고 있으며, 1단에 해당하는 RD-107 부스터는 4개의 노즐과 2개의 버니어 노즐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RD-108 엔진 주위에 4개의 RD-107 부스터가 연결되며, 각 부스터의 버니어 노즐은 바깥쪽을 향한다. 각 부스터는 원뿔 모양이어서 미사일은 중간부터 아래로 넓어지는 독특한 모양을 가진다.

R-7은 액체 산소등유(케로신)를 로켓 연료로 사용한다.

3. 2. 유도 시스템

R-7 세묘르카의 유도 시스템은 R-5R (SS-3 Shyster)의 무선 사령 시스템을 기반으로 개량되었으며, 버니어 로켓 제어 방식의 관성 유도 방식을 사용한다. 1단에 해당하는 RD-107 부스터는 4개의 노즐과 2개의 버니어 노즐을 갖추고 있었으며, 2단에 해당하는 RD-108 엔진은 4개의 노즐과 4개의 자세 제어용 버니어 노즐을 갖추고 있었다.

3. 3. 독특한 발사 방식

R-7은 경량화 설계로 인해 로켓 본체가 부스터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자립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서방 국가의 미사일과는 달리, 발사 시 트러스 구조물에 매달린 상태에서 점화되었다. 이 방식은 '튤립(Тюльпан, Tyulpan)' 발사 방식으로 불리며, 레닌그라드 금속 주조 공장에서 설계되었다. 엔진 출력이 로켓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해지면, 지지대가 꽃이 피는 것처럼 사방으로 분리된다. 이러한 독특한 발사 방식은 소련과 러시아 로켓 발사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다.

4. 운용 및 배치

최초의 전략 미사일 부대는 1959년 2월 9일 러시아 서부의 플레세츠크에서 운용을 시작했다. 1959년 12월 15일, 플레세츠크에 건설된 최초의 발사대 LC41에서 R-7A 미사일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다. 플레세츠크에는 4기(LC41, LC16, LC43, ?), 긴급 대체 기지인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는 2기(LC1, LC31) 등 총 6기의 발사 기지가 운용되었고, 크라스노야르스크 기지는 계획 단계에 머물렀다. 플레세츠크에는 두 개의 R-7A 미사일 연대가 배치되었으며, 각 미사일은 뉴욕,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시카고를 목표로 했다.

R-7은 발사 준비에 약 20시간이 소요되었고, 극저온 연료 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에 연료를 주입한 채 며칠 이상 경계 태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5] 또한 거대한 R-7 발사 기지는 U-2 정찰기에 의한 고고도 정찰에 쉽게 노출되어 핵전쟁 발발 시 신속하게 파괴될 위험이 높았다.[5] 이러한 운용상의 약점으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군은 항구적인 경계 태세를 유지할 수 없었고, 이는 미사일 발사 전에 파괴될 가능성을 높였다.[5]

R-7 발사 기지 건설 비용은 매우 막대하여, 각 발사 기지 건설에 당시 소련 국방 예산의 5%에 달하는 5억 루블이 투입되었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은 1세대 미사일 개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였으며, 미국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고, 영국은 블루 스트리크 미사일 개발 계획을 포기하기도 했다.

4. 1.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R-7은 실제 핵탄두를 탑재하고 플레세츠크 우주 기지의 LC41 발사대에서 발사 준비 태세에 돌입하기도 했다.[5] 그러나 당시 소련의 ICBM 전력은 미국에 비해 열세였다. 미국은 100기 이상의 아틀라스, 타이탄 I, 미니트맨 I을 배치하고, 영국에 60여 기의 토르, 터키와 이탈리아에 45기의 주피터를 배치하여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반면 소련은 최초의 양산형 ICBM인 R-16(SS-7) 배치를 시작한 상황이었고, 쿠바에 배치된 40기의 R-12를 더해도 미사일 전력은 소련에 불리했다.

R-7은 발사 준비에 약 20시간이 소요되고, 극저온 연료 시스템 때문에 장기간 경계 태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5] 또한 거대한 R-7 발사기지는 U-2 정찰기에 쉽게 노출되어 핵전쟁 발발 시 신속하게 파괴될 위험이 있었다.[5] 이러한 운용상의 약점과 막대한 발사장 건설 비용은 소련이 2세대 ICBM 개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6]

R-7 패밀리

4. 2. 퇴역 및 우주 발사체로의 전환

R-7은 1968년에 ICBM으로서의 운용을 종료했지만,[7] 개량형 (8K71PS)은 1957년 10월 4일 바이코누르에서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여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렸고, 이후 스푸트니크 2호, 스푸트니크 3호 발사에도 사용되었다. R-7은 보스토크 계열 발사체, 몰니야 및 소유스 계열 발사체를 포함한 일련의 소련 일회용 우주 발사체의 기반이 되었다.[7]

R-7 미사일은 발사 준비에 약 20시간이 소요되고 극저온 연료 시스템 때문에 장기간 경계 태세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발사 기지가 U-2 정찰기에 쉽게 노출되어 핵전쟁 발발 시 신속하게 파괴될 위험이 있었다.[5] 또한, 발사 기지 건설 비용이 막대하여 소련 국방 예산의 5%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러한 운용상의 문제점과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R-7은 1968년에 퇴역하게 되었다.[6][7]

하지만 R-7의 기술은 우주 개발에 활용되어 8K72K 보스토크 우주선과 11A511 소유스 우주선의 기초가 되었고, 소련의 우주 개발을 이끌었다. R-7에서 파생된 기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우주왕복선 퇴역 후 국제 우주 정거장(ISS)으로의 인원 및 물자 수송은 R-7의 직계 후손인 소유스와 프로그레스 보급선이 담당하고 있다. , 개조 및 현대화된 버전(소유스 2 및 부스터가 없는 2.1v 변형)이 1,840회 이상 발사되면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50년 이상 운용되며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우주 발사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8]

5. 파생형 및 영향

R-7은 다양한 파생형을 낳았는데, 가장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운반한 스푸트니크가 있다. 다음으로는 보스토크 1호부터 보스토크 6호까지를 운반했고, 보스호드 2호의 최초 우주 유영으로 잘 알려진 보스토크가 있다. 그 다음은 퇴역으로 인해 덜 알려진 모닐야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용되고 있는 소유즈가 있으며, 이는 러시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로켓이다.

R-7의 직계 후손인 소유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국제우주정거장으로의 인원 및 물자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00년대 초반 러시아와의 우주 기술 협력을 통해 소유스 로켓 기술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았으며, 이는 한국의 우주 발사체 기술 자립에 기여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기술 협력이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5. 1. 소유스 로켓과 한국의 우주 개발

R-7의 직계 후손인 소유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의 인원 및 물자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00년대 초반 러시아와의 우주 기술 협력을 통해 소유스 로켓 기술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았으며, 이는 한국의 우주 발사체 기술 자립에 기여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기술 협력이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6. 평가

참조

[1] 웹사이트 Rocket R-7 https://web.archive.[...] S.P.Korolev RSC Energia 2003-02-02
[2] 서적 Korolev: How One Man Masterminded the Soviet Drive to Beat America to the Moon John Wiley & Sons 1997
[3] 서적 Soviet Robots in The Solar System: Mission Technologies and Discoveries https://books.google[...] Praxis Publishing
[4] 웹사이트 The Military Rockets that Launched the Space Age https://airandspace.[...] 2023-08-09
[5] 웹사이트 Launch facilities for R-7-based rockets in Plesetsk https://www.russians[...] 2023-12-28
[6] 웹사이트 R-16 https://www.russians[...] 2023-12-26
[7] 웹사이트 R-7 History https://www.worldspa[...] 2023-12-26
[8] 웹사이트 Russian Rockets and Space Launchers https://historicspac[...] 2023-12-26
[9] 웹사이트 НЕМЕЦКИЕ КОРНИ РАКЕТЫ "СОЮЗ" http://www.rks.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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