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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메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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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지메스탄은 '영웅의 장소'라는 뜻으로, 세르비아 코소보에 위치한 코소보 전투 기념 장소이다. 1919년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 건국 이후 기념 행사가 중요해졌으며, 1924년 기념 공원이 건설되었다. 198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가지메스탄 연설은 유고슬라비아 해체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1997년 세르비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부터 1999년까지의 코소보 전쟁 중에는 NATO 공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기념비가 경찰의 경비를 받고 있다. 기념비는 1953년 건설되었으며, 내부에는 코소보 전투에 관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또한 1402년 스테판 라자레비치가 새긴 코소보 전투에 대한 글귀가 기념물 옆에 있는 작은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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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메스탄
개요
가지메스탄 기념비
가지메스탄 기념비
위치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떨어진 곳
용도코소보 전투(1389년)에서 전사한 세르비아 병사 추모
상세 정보
종류기념물, 탑
재료석재
건축가알렉산다르 데로코
완공1953년
이름
세르비아어 (키릴 문자)Газиместан
세르비아어 (로마자)Gazimestan
알바니아어Gazimestani
기타

2. 명칭

'가지메스탄'이라는 명칭은 아랍어 단어 가지(영웅, 성스러운 전사)와 세르비아어 단어 에서 유래되었다.[1]

3. 역사

1389년 오스만 제국과 세르비아 연합군 간에 벌어진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의 중세 국가 멸망을 초래했지만, 세르비아 민족의 저항 정신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1989년 코소보 전투 600주년을 기념하여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이곳에서 가지메스탄 연설을 했다.[1]

3. 1. 20세기 이후

1919년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 건국 이후 가지메스탄에서 코소보 전투 기념 행사가 더욱 중요해졌다. 1924년 이후 기념 공원이 건설되었다.[1]

1953년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구성국) 정부는 알렉산다르 데로코가 설계한 가지메스탄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기념비는 중세 탑 형태로, 코소보 전투 관련 민요에서 발췌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1989년 코소보 전투 600주년을 기념하여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이곳에서 유명한 가지메스탄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유고슬라비아 해체를 촉발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1997년 가지메스탄 유적지는 세르비아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1]

코소보의 저주

3. 2. 코소보 전쟁과 그 이후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NATO 폭격 당시 가지메스탄 기념비가 표적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2001년 학자들의 조사 결과 관찰된 손상은 "공중 공격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코소보 전쟁 이후 기념비 내부 계단은 폭발물에 의해 손상된 것으로 알려졌다.[1]

비도브단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기념비에 모인다. 하지만 이러한 모임 중에 코소보 알바니아인 커뮤니티의 폭력적인 시위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1]

'''가지메스탄 돌기둥'''(Газиместан камен|가지메스탄 카멘sr)은 1389년 코소보 전투에 관한 기록으로, 라자르 공의 아들 스테판 라자레비치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문은 돌기둥에 새겨졌으며, 앙카라 전투 (1402년) 이후 전투가 벌어졌던 가지메스탄에 세워졌다. 오늘날 이 글귀는 가지메스탄 기념물 옆에 있는 작은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2]

4. 가지메스탄 기념비

가지메스탄 기념비는 알렉산다르 데로코가 설계하여 1953년 세르비아 공산주의 정부의 명령으로 건설되었다. 이 기념비는 세르비아 민족의 "투쟁 전통"을 공산주의 혁명의 현대적 승리와 연결했으며, 중세 탑의 형태로 설계되었다. 내부에는 코소보 전투에 관한 민요에서 발췌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민속학자 부크 카라지치가 기록한 코소보의 저주는 코소보에서 싸우지 않는 세르비아인에게 저주를 내리는 내용으로, 기념비에 키릴 문자로 새겨져 있다.[1]

이 기념비의 디자인은 건축 양식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작가 지보라드 스토이코비치를 대표하는 모더니스트 비평가들은 이 기념비를 시대와 맞지 않고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대에 선호되던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보았다.[1]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NATO 폭격 당시 NATO가 고의로 폭격하여 기념비가 손상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2001년 학자 안드라스 리들마이어와 앤드루 허셔의 조사 결과는 공중 공격으로 인한 손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념비 내부 계단은 코소보 전쟁 이후 폭발물에 의해 손상된 것으로 알려졌다.[1]

오늘날 이 기념비는 경찰의 끊임없는 경비를 받고 있으며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1]

4. 1. 사진


5. 스테판 라자레비치의 글귀

스테판 라자레비치는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라자르 공의 아들로, 1402년 앙카라 전투 이후 아버지와 코소보 전투에서 희생된 전사들을 기리는 글귀를 돌기둥에 새겼다. 이 글귀는 수사적인 찬사 시 형태로, 교회 시와 기사도 서사시의 영향을 보여준다.[2]

이 시는 세르비아 땅을 밟는 모든 이들에게 코소보 전투의 의미와 라자르 공의 용기, 그리고 세르비아 전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는 라자르 공을 인간 정신의 정점을 보여주는 용기 있고 영적인 인물로 찬양하며, 그의 백성을 화려한 꽃과 밝은 별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민속 서사시(시 '차르 라자르와 차리나 밀리차')와 현대 시(라키치의 시 '나 가제미스타누')에도 나타난다.[2]

세르비아어(키릴 문자) 원문과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세르비아어 원문 (키릴 문자)한국어 번역


참조

[1] 웹사이트 Gazimestan https://web.archive.[...] Republic of Serbia 2017-04-25
[2] 서적 History of Serbi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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