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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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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계형철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이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OB 베어스에서 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0년대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코치로 전향하여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등 여러 팀을 거쳤으며, 2018년부터 고양 위너스 감독을 역임했다. 통산 10시즌 동안 69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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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형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명계형철 (桂瀅鐵)
원어명桂瀅鐵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신장183cm
체중75kg
수비 위치투수
투구
타석
프로 입단 연도1982년
드래프트 순위1982년 원년 멤버 (OB 베어스)
첫 출장KBO / 1982년 3월 31일
구덕 대 롯데전
마지막 경기KBO / 1991년 9월 13일
잠실 대 LG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2. 선수 시절

계형철은 1982년 한국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OB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아마추어 시절 에이스급 투수였으나, 프로야구 창설 당시에는 30살의 노장이었기 때문에 프로야구 진출과 은퇴를 놓고 갈등하기도 했다.[1]

1982년 팀의 원년 우승 멤버로 박철순, 박상열 등과 함께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84년에는 방어율 2위, 다승 6위(14승), WHIP 5위(1.13)를 기록하며 박철순이 부상으로 빠진 후 팀의 에이스 역할을 완수했고, 당시 삼성 김일융과 함께 공동 선발승 2위(13선발승)를 기록했다.[1] 1985년(11승(9선발승) 11패, 2점대 평균자책점)과 1988년(10승(8선발승) 12패, 3점대 평균자책점)에도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는 등 1980년대 말까지 베어스의 에이스급 투수로 활약했다.[1]

젊을 때부터 볼은 빠르지만 제구력이 형편없는 장단점이 뚜렷한 투수였으나, 프로에 들어와서는 구속을 늦추고 제구력을 향상시키면서 기교파에 가깝게 변신해 당시 투수로는 드물게 38세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1] 1991년 시즌에는 만 38세 5개월의 나이로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투승을 기록해 한화 이글스 송진우2005년에 기록을 깨기 전까지 국내파 선수 최고령 완투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1]

2. 1. OB 베어스 시절

1982년 한국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OB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에이스급 투수였으나, 프로야구 창설 당시에는 30살의 노장이었기 때문에 프로야구 진출과 은퇴를 놓고 갈등하기도 했다.[1]

1982년 팀의 원년 우승 멤버로 박철순, 박상열 등과 함께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성기는 1984년으로 이 해 방어율 2위, 다승 6위(14승), WHIP 5위(1.13)를 기록하며 박철순이 부상으로 빠진 후 팀의 에이스 역할을 완수했는데, 당시 삼성 김일융과 함께 공동 선발승 2위(13선발승)를 기록했다.[1] 1985년(11승(9선발승) 11패, 2점대 평균자책점)과 1988년(10승(8선발승) 12패, 3점대 평균자책점)에도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으며 1980년대 말까지 베어스의 에이스급 투수로 활약했다.[1]

젊을 때부터 볼은 빠르지만 제구력이 형편없는 장단점이 뚜렷한 투수였으나 프로에 들어와서는 구속을 늦추고 제구력을 향상시키면서 기교파에 가깝게 변신해 당시 투수로는 드물게 38세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1] 1991년 시즌에는 만 38세 5개월의 나이로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투승을 기록해 한화 이글스송진우2005년에 기록을 깨기 전까지 국내파 선수 최고령 완투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1]

3. 야구선수 은퇴 후

1992년 신용균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부임하자 桂烱鐵중국어은 투수코치를 맡았다.[1] 신용균은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한동화 수석코치와 불화를 겪어 1년 만에 해임되었고,[2] 한동화가 감독으로 승격되자 2군 감독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4년 6월 13일 김우열 전 OB 베어스 코치의 쌍방울 레이더스 타격코치 부임으로 생긴 보직 변경에 따라[4]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한동화김인식처럼[5] 이용일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아 1995년 시즌 중도 하차했다.[6]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2군 감독을 맡았다. 김성근의 최측근으로, 2010년 6월 이만수와 자리를 맞바꿔 2개월간 수석코치를 맡았다가 다시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1] 2011년 이만수가 2군 감독이 되면서 재활코치로 활동하는 등 코칭 스태프에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다.[1] 김성근 경질 후, 구단을 떠날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결국 이홍범, 박상열, 김정준, 강성인, 홍남일과 함께 팀을 떠났다.[1]

2012년 시즌 후 LG 트윈스로 이적해 잔류 책임코치를 맡았으나,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기간 중 2군 코치 개편 과정에서 해임되었다.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해임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근 사단의 일원으로, 2014년 11월 3일 한화 이글스의 고양 원더스 메인 투수코치 박상열 영입과 대대적인 코치 영입 과정에서 이홍범과 함께 합류했다.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순회코치를 맡았으며, 2015년 시즌부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17년 시즌에는 엔트리 등록 없이 외국인 투수 알렉시 오간도,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배영수를 전담 지도했다. 2017년 5월 22일 김성근 사임 후, 김광수와 함께 동반 사의를 표명했다.

2018년부터 고양 위너스 감독으로 활동했다.

3. 1. 한화 이글스 시절

1992년 시즌 후 신용균이 3년 계약으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부임하자[1] 桂烱鐵중국어은 투수코치를 맡았다. 신용균은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한동화 수석코치와 불화를 보여[2] 1년 만에 해임됐고, 한동화가 2년 계약으로[3] 감독으로 승격하자 2군 감독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4년 6월 13일 김우열 전 OB 베어스 코치가 쌍방울 레이더스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생긴 보직 변경에 따라[4] 투수코치로 돌아왔는데, 한동화김인식처럼[5] 이용일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국 1995년 시즌 연패를 반복해 중도 하차했다.[6]

3. 2. SK 와이번스 시절

김성근이 2007년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적하며 2군 감독을 맡았다. 김성근의 최측근 인맥으로 2010년 6월에 당시 수석코치였던 이만수와 자리를 맞바꿔 2개월간 수석코치를 맡았다가 다시 자리를 바꾸며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1]

2011년에는 이만수가 다시 2군 감독이 되면서 그는 재활코치로 활동하는 등 코칭 스태프에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다.[1] 이후 김성근이 경질되자 최측근이었던 그는 구단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고, 결국 이홍범, 박상열, 김정준, 강성인, 홍남일과 함께 팀을 떠났다.[1]

3. 3. LG 트윈스 시절

2012년 시즌 후 이적해 잔류 책임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2014년 시즌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2군 코치 개편 과정에서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가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어 해임 결정에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3. 4. 한화 이글스 복귀

김성근 사단의 일원이라 김성근을 따라 이적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2014년 11월 3일 팀에서 고양 원더스의 메인 투수코치였던 박상열을 영입하고, 대대적인 코치 영입 과정 속에서 이홍범과 함께 합류했다. 보직은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순회코치였으며, 2015년 시즌부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17년 시즌에는 엔트리 등록없이 외국인 투수 알렉시 오간도,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배영수를 전담 지도했다. 이날 선수단 미팅을 마치고 떠나는 김성근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2017년 5월 22일 김성근이 사임하자 김광수와 함께 동반 사의를 표명했다.

3. 5. 고양 위너스 시절

2018년부터 감독으로 활동했다.

4. 출신 학교

5. 통산 기록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1982OB4.88213144000.50041690 1/3736762425949
19833.442993912000.429816193 1/3190117213869774
19842.062961144000.778701174 2/31358637924440
19852.7834801111200.50078919416517637847160
19863.16223157000.417452111948502474839
19872.612550812000.400633148 1/31223746535943
19883.7533201012200.455558129 2/31217622485954
19893.59201158200.38537587 2/3885351384035
19905.422701213200.133510114 2/31237595437469
19915.86142016100.14320443561211143528
통산10시즌3.432543986989900.43754541286 2/311677357546547586491


참조

[1] 뉴스 스포츠 게시판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2020-07-08
[2] 뉴스 "[시공초월 라이벌]쌍방울 VS 한화, 만년 꼴찌 탈출기" https://sports.news.[...] 스포츠서울 2020-07-08
[3] 뉴스 “쌍방울 10연패 부진 책임져라” http://www.joongdo.c[...] 중도일보 2020-07-08
[4] 뉴스 쌍방울,김우열코치 영입 http://211.43.216.33[...] 문화일보 2020-07-08
[5] 뉴스 " 한국체육 이대로 좋은가 (58) 프로선수 빛과 그늘〈9〉툭하면 해임'파리목숨'감독" https://newslibrary.[...] 한겨레신문 2020-07-08
[6] 뉴스 “쌍방울 10연패 부진 책임져라” http://www.joongdo.c[...] 중도일보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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