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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인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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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트인의 왕은 고트족의 역사와 중세 유럽 왕국의 칭호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에는 4세기 이전 고트족의 전설적인 왕들, 베릭, 필리머, 크니바 등이 등장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스웨덴과 덴마크 왕들이 '고트인의 왕' 칭호를 사용했는데, 스웨덴에서는 마그누스 라둘로스가 처음 사용했으며, 덴마크에서는 발데마르 4세가 1362년에 처음 사용한 후 1972년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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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인의 왕
고트인의 왕
유형칭호
관할 구역고트족
거주지크림 반도, 다키아, 이탈리아 반도, 히스파니아
임명 방식세습, 선출
역사
시작3세기
마지막711년
참고
관련 칭호스웨덴의 왕, 반달족의 왕, 알란족의 왕

2. 고트족의 이동과 분열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에는 스칸자에서 오이움으로 이동할 당시 고트족의 지도자였던 베릭, 가다릭의 아들 필리머 등 4세기 이전의 전설적인 왕들이 등장한다.[1]

크니바라는 고트족 지도자는 250년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기록되었다.[1]

훈족의 아틸라는 스스로를 "위대한 님로드의 후손인 아틸라. 엔가디에서 양육됨. 신의 은총으로, 훈족, 고트족, 데인족, 그리고 메디아의 왕. 세상의 공포"라고 칭했다.[1]

2. 1. 초기 이동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에는 4세기 이전의 고트족의 전설적인 왕들이 여럿 등장한다. 예를 들어, 스칸자에서 오이움으로 이동할 당시 고트족의 지도자였던 베릭, 가다릭의 아들 필리머 (베릭 이후 다섯 번째)가 있었다.[1]

크니바라는 고트족 지도자는 250년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기록되었다.[1]

2. 2. 4세기 이전의 왕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에는 4세기 이전의 고트족의 전설적인 왕들이 여럿 등장한다. 예를 들어, 스칸자에서 오이움으로 이동할 당시 고트족의 지도자였던 베릭, 가다릭의 아들 필리머 ("베릭 이후 다섯 번째") 등이 있다. 크니바라는 고트족 지도자는 250년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기록되었다.[1]

2. 3. 훈족과의 관계

아틸라는 스스로를 "위대한 님로드의 후손인 아틸라. 엔가디에서 양육됨. 신의 은총으로, 훈족, 고트족, 데인족, 그리고 메디아의 왕. 세상의 공포"라고 칭했다.[1]

3. 중세 유럽 왕국의 칭호

중세 유럽 왕국들은 다양한 칭호를 사용했는데, 그중 '고트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스웨덴덴마크 왕국에서 사용되었다. 이 칭호는 각 왕국에서 다른 의미와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스웨덴과 덴마크 왕국의 칭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3. 1. 스웨덴 왕국의 칭호

1100년경 교황의 서한은 잉에 1세와 할스텐 또는 호칸 뢰데를 서고트인의 왕이라고 지칭했는데, 이는 그들이 베스트라예틀란드만 통치하고 나머지 지역에 대한 통제력은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164년 9월 5일자 교황 서한에서는 칼 스베르케르손 왕(1130–67; 재위 1161–1167)을 '스웨덴인과 고트인의 왕'으로 칭했다.

마그누스 라둘로스 왕은 이 칭호를 정기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스웨덴 왕이었으며, 특히 1278년 폐위된 형제 발데마르를 상대로 마지막 승리를 거둔 후였다. 발데마르는 이전까지 베스트라예틀란드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구스타브 바사 통치 말까지 '스베리에스 오흐 예테스 코눙'(Sveriges och Götes Konung)을 사용했고, 그 후에는 '스베리에스, 예테스 오흐 벤데스 코눙'(Sveriges, Götes och Vendes Konung)을 공식 문서에 사용했다. 1814년과 1905년 사이에는 노르웨이를 추가하여 '스베리에스, 노르예스, 예테스 오흐 벤데스 코눙'(Sveriges, Norges, Götes och Vendes Konung)을 사용했다. '스베리에스, 예테스 오흐 벤데스 코눙'은 1905년부터 1973년 칼 16세 구스타프가 즉위할 때까지 다시 사용되었는데, 그는 공식적으로 '스베리에스 코눙'("스웨덴의 왕")으로만 선포된 최초의 군주였다.

3. 2. 덴마크 왕국의 칭호



이 칭호를 처음 사용한 덴마크 국왕은 1361년에 고틀란드를 정복한 후 1362년에 이를 채택한 발데마르 4세(재위 1340년~1375년)였다.[3] 덴마크 국왕들은 이후 600년 동안 이 칭호를 사용했으며,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즉위한 1972년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오늘날의 왕실 호칭인 '덴마크 여왕'을 제외한 모든 선임자들의 칭호 사용을 폐지했다.

1449년에 처음 문서화된[3], 덴마크 군주의 문장은 1972년까지 '고트인의 왕' 칭호를 나타내는 하위 문장을 포함했다. 금색 바탕에 9개의 붉은 심장 위에 파란색 문장학 표범이 그려져 있다. 원래 할란트 공작의 문장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다시 덴마크 문장에서 유래되었다. 이 상징은 고틀란드의 문장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어린 양과는 관련이 없지만, 후자의 상징 역시 과거 덴마크의 문장에 표현되었다.

참조

[1] 서적 Fifteen Decisive Battles of the World from Marathon to Waterloo Heritage Press/BiblioLife
[2] 웹사이트 Om Jydske Dragonregiment http://forsvaret.dk/[...] 2021-12-11
[3] 간행물 Det danske Rigsvåben og Kongevåben Odens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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